여대생 납치·살해 사건 수사 과정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간부가 피해자의 집에서 술을 마신 것으로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다. 경찰은 또 사건 발생 8일 만에 이뤄진 현장검증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아 유족들과 관계자들의 반발을 샀다.
◆음주에 낮잠
납치 살해된 여대생 L(26)씨의 어머니(50)는 1일 경남 거창군 거창읍 당동마을 입구에서 열렸던 현장검증을 참관한 뒤 기자들에게 처음 납치사건 발생 당시 수사를 하던 대구 수성경찰서 C경위가 집에서 잠을 자고 술을 마셨다고 말했다.
L씨의 어머니는 "지난달 23일 오전 11시쯤 전날 야간 근무를 했다며 집에서 태연하게 잠을 자더라"며 "이어 오후 4시쯤 일어나서는 여경에게 5만원권 1장을 주고 소주 1병과 맥주 1병, 컵라면, 담배 등을 사오게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에 대해 C경위는 "오후 8시쯤부터 3시간가량 술을 마셨고 L씨 아버지와 각각 소주 3, 4잔씩을 마셨다. 오후 11시쯤 어머니가 휴식을 권하자 후속 근무자를 기다리며 20여 분간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잤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우리를 진정시키려고 술을 마셨다지만 술은 C경위가 다 마셨다"며 "예의상 잔을 받아만 뒀을 뿐 우리는 마시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대구경찰청은 해명자료를 내고 "유족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조치였으나 음주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며 "C경위가 유족들에게 사죄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현장검증까지 부실
1일 오전 오전 10시 15분 경남 거창군 거창읍 당동마을 입구에서 40여 명의 경찰과 유족들은 범행을 재연하는 K씨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봤다. K씨는 자신의 승용차 뒷좌석에서 끈으로 이씨의 목을 조르려다 이씨가 완강히 저항하자 발로 목 부위를 마구 눌러 살해하는 장면을 재연했다.
K씨가 태연히 범행 당시 상황을 재연하자 유족들은 경찰에 "범인 얼굴을 보여달라"며 거칠게 항의했다. 10여 분의 현장검증이 끝나고 K씨가 호송차량에 탑승하려 하자 유족들은 또다시 폴리스라인을 뚫고 K씨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를 제지하는 경찰과 몸싸움이 일어났지만 호송차량은 재빨리 사체 유기 장소로 이동했다. 뒤이어 뛰어가던 유족들은 '우릴 두고 어디 가느냐'며 황급히 차량에 탑승해 호송차량을 따랐다.
오전 10시 40분 거창군 남하면 남하1교 사체 유기 장소에 도착한 취재진과 유족들은 현장검증을 볼 수 없었다. 뒤따르던 유족과 취재진을 떨어뜨려 놓은 채 경찰이 먼저 도착해 현장검증을 하고 떠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경찰은 "차로가 하나밖에 없는 고속도로에서 많은 차량과 사람이 있을 경우 안전사고 발생 우려가 있어 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결국 뒤늦게 도착한 유족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L씨의 사체가 버려진 낭떠러지에 주저앉았다.
이곳에서 L씨 아버지는 "대구에서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까지 와서 범행을 저지르고 집에 돌아갈 때까지 경찰이 한 게 뭐냐"며 "수사도 제대로 못하면서 현장검증도 대충하고 그냥 떠난 것 아니냐"며 경찰을 비난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노경석 인턴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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