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맛 향토음식의 산업화] (51)세계음식 스시와 김밥

'일본 스시' 처럼 우리 김밥도 고급화해서 '세계 음식' 만들자

엄마김밥 대표 김정옥 씨가 스시를 능가할 수 있는 고품격 김밥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치즈김밥과 누드김밥, 충무김밥을 만들어 접시에 예쁘게 담아냈다.
엄마김밥 대표 김정옥 씨가 스시를 능가할 수 있는 고품격 김밥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치즈김밥과 누드김밥, 충무김밥을 만들어 접시에 예쁘게 담아냈다.
일본 규수지방 전통 스시는 밥덩이가 푹 덮이도록 생선살을 큼지막하게 썰어 놓은 게 특징이다
일본 규수지방 전통 스시는 밥덩이가 푹 덮이도록 생선살을 큼지막하게 썰어 놓은 게 특징이다

뭉친 밥에다 와사비(고추냉이)를 붙이고 생선살을 얹은 게 전부인 일본 음식 스시. 이 간단한 음식이 어떻게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을까.

스시는 일본 에도시대에 식사시간까지 아껴가며 바쁘게 장사를 해야만 했던 당시 상인들이 간편음식으로 고안한 게 출발이라고 한다. 처음엔 생선회 한 조각을 붙인 한입 거리 정도의 간단한 주먹밥 형태였다. 점심때도 물건을 사러 오는 손님들을 맞기 위해 가게를 들락날락하며 틈나는 대로 간장을 찍어 슬쩍슬쩍 입에 넣고 점심을 때우기 위해서였다.

그 스시가 다양한 재료와 어울리면서 화려하고 감각적으로 진화해 일본 대표음식으로 자리를 굳힌 다음 미국으로 건너가 날생선을 좋아하지 않는 미국인들의 입맛에 맞게 변형된다. 그게 다시 일본으로 되돌아오고 더욱 진화해 또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를 반복하면서 눈을 즐겁게 하고 혀를 자극하는 세계인의 음식으로 사랑받게 됐다. 정갈하고 위생적인 포장에다 맛의 세계화를 이뤄낸 스시를 살펴보고 우리 김밥의 세계화를 가늠해 본다.

◆맛의 현지화보다 세계화 이룬 스시

부산에서 뱃길로 3시간인 후쿠오카 시내에는 유명한 스시 전문점이 여럿 있다. 그 중에도 일본인보다 한국인 단골이 더 많은 하카다 스시(대표 모리야마·66)는 '맛이 귀에까지 들린다'고 할 정도로 소문난 집이다. 후쿠오카에서 번역일을 하고 있는 스시 마니아인 일본인 히로부미(47) 씨의 안내로 식당문을 들어서니 주방장 오오기(38) 씨가 정겹게 웃으며 손님을 맞는다. 큰 덩치에 "아리가토 고자이 마쓰"를 연방 반복하며 허리를 굽실대는 모습이 귀엽기까지 하다. 일본 전통 스타일의 식당 내부에 걸맞은 주방장 복장이 40년의 스시집 역사를 말해 주듯 눈길을 끈다.

생선이 빨리 상하지 않도록 식초와 고추냉이를 쓰는 것은 알려진 대로다. 고등어와 꽁치 등 등푸른생선도 특별한 방법으로 손질해 알레르기 등 부작용을 최소화한다고 걱정 말라는 눈치다. 오오기 씨는 바쁘게 스시를 만들면서도 스시가 오랜 역사를 갖고 진화해 오늘에 이른다는 설명을 곁들인다. 스시 전문 주방장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스시용 밥은 고시히카리 쌀만 쓴다. 쫀득쫀득하고 밥이 식어도 윤기가 반들반들해 맛도 맛이지만 찰기가 좋아 가장 적당하다고. 미소 간장으로 만든 소스는 맛이 미끈하면서도 일본 특유의 음식향을 그대로 연출한다.

오오기 주방장이 만드는 스시 중 가장 비싼 건 참치뱃살 스시다. 스시 두 개에 무려 1만5천원. 참치살의 감미로움과 고시히카리 밥맛이 입안에서 착착 어우러진다. 생새우살이 그대로 살아 있는 새우 스시, 경쾌한 입감을 자랑하는 청어알 스시, 고등어 등살 스시 등 종류가 무려 50가지나 된다. 새우, 돔, 고등어 스시가 8천원에서 1만원이고 연어알, 청어알 스시가 5천원. 가장 싼 계란 스시도 2개에 3천원이다. 히로부미 씨는 "스시는 일본이든 파리든 뉴욕이든 맛이 거의 통일돼 있다"며 "맛의 현지화보다 일본 맛의 세계화를 이뤄낸 게 더 자랑스럽다"고 했다. 스시의 세계화는 일본 정부 차원에서 추진한 것도 일조했지만 가공은 물론 양념과 향신료를 거의 쓰지 않고 천연재료 그대로 음식을 만든 것도 세계화에 성공한 또 하나의 요인이다.

◆김밥의 세계화는 고급화가 첫걸음

"좋은 재료가 최고의 김밥을 만듭니다.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요."

체인점 형태의 김밥 전문점을 제외하고 안동시내에서 김밥으로 가장 소문난 곳 중 하나가 대안극장 옆 엄마김밥(대표 김정옥·51·안동시 광석동)이다. 김정옥 씨는 줄이어 김밥을 사러 오는 손님들을 언제나 신바람나게 맞이한다. 김밥은 먼저 밥을 잘 해야 한다. 고시히카리를 쓰는 것은 후쿠오카 하카다 스시집 오오기 주방장과 마찬가지다. 밥에 섞는 김밥 소스도 직접 만든다. 이 비법의 소스로 밥을 비벼 놓으면 몇 시간이 지나도 부드러운 밥맛이 유지된다고 한다.

"김밥을 마는 데도 요령이 있어요. 꾹꾹 눌러 마는 것은 금물이에요. 슬쩍슬쩍 김이 밥알에 붙어 있을 정도로 그냥 둘둘 말아야 하지요." 밥이 눌리면 김밥이 다져져서 딱딱하게 굳기 때문에 밥이 부드럽게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썰 때도 마찬가지. 짓누르면 안 된다. 잘 드는 칼로 썩둑썩둑 썰어야 밥알이 그대로 살아 있다는 것.

밥에 식초를 약간 뿌려두는 것도 일본 스시와 닮았다. 맛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개당 900원짜리인 즉석김밥을 월 평균 5만 개씩 판다. 지난 20년을 따져 보면 말아낸 김밥이 1천만 개.

고급화를 추진하지만 시장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통조림 참치, 김치, 소고기, 멸치, 샐러드, 날치알, 모듬, 고추김밥은 개당 2천500원. 김씨는 스시처럼 개당 1만원짜리 고급김밥을 개발하기 위해 고급 재료가 눈에 띌 때마다 수시로 시도하고 있다.

"최근 농촌진흥청이 김밥용 쌀을 개발했다는 뉴스가 참 반가웠습니다. 김밥 세계화의 청신호 같아요. 먼저 동남아시아로 진출해 거리음식 그대로 선보이면서 현지 주민들의 반응을 보고 싶어요."

◆김밥은 스시와 한 조상, 세계음식 가능성 높아

후쿠오카 하카다 스시와 안동 엄마김밥을 함께 접하고 나니 김밥과 스시는 너무 닮았다. 뿌리가 같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김밥을 영양 고른 간편식품으로 개발할 가능성에 대해 스시 마니아 히로부미 씨도 매우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하카다 스시 단골로 20년 전 한국김치를 규슈지방에 처음 상륙시킨 후쿠오카 한국식품 대표 강진구(48) 씨도 "식재료의 고급화와 표준화를 이뤄 내고 한식의 정체성을 부가해 전통 음식점 메뉴로 개발한다면 김밥도 스시처럼 한식 세계화의 일익을 담당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1만5천원짜리 참치뱃살 김밥을 왜 못 만들겠느냐며 "오히려 간장 소스와 고추냉이 등도 김밥 속에 함께 넣을 수 있어 간편한 음식을 연출하는 데 더 유리하다"고 이구동성이었다.

삼각김밥이나 충무김밥은 김밥의 세계화 가능성을 보여 주는 사례. 상품 개발과 정책적 뒷받침만 기대할 게 아니라 당당하게 스시와 맞서 고급 김밥을 개발해 내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동해안 지방에서 전해오는 가자미식해 등도 따지고 보면 생선과 밥을 섞어 함께 발효시켜 낸 스시와 같은 뿌리에서 파생된 음식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김밥에 어패류를 부가한다면 스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연구관 한귀정 박사는 "원래 스시는 식초로 간을 한 밥에다 생선 조개를 곁들인 요리에서 출발했다"며 "이는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 중국 등 아시아 쌀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고대 음식유형"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향토음식산업화특별취재팀 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 프리랜서 강병두 pimnb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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