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무더위를 날려줄 얼음공장이다!"
2010 남아공 월드컵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그 열기에 묻혀 잠시 쉬었던 '기자와 함께' 코너가 얼음공장에서 다시 체험을 시작한다. 특집팀 기자들이 몸을 던져 망가지는 걸 독자들이 원한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야 그 분야에서 고생하는 이들의 생생한 이야기들을 전해줄 수 있기 때문.
이번 주는 무더위가 본격화하는 7월을 맞아 얼음공장을 찾았다. '메뚜기도 한철'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얼음공장은 지금이 가장 바쁠 때가 아닐까 생각하며 지역에서 제법 큰 얼음공장을 물색해 보니, 대구시 서구 중리동에 위치한 '태평냉동 얼음공장'이 검색됐다. 대구경북뿐 아니라 경남 일부 지역까지 얼음을 공급하고 있는 업체였다. 직접 체험해보고 싶다고 요청하니 "바쁘지만 일단 와보라"고 했다.
◆얼음 옮기는 데만 땀이 한 바가지
얼음공장에 도착하자마자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헐거운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에 장화만 신으면 바로 현장 투입이다. 차 한 잔 마실 여가도 없었다. 이날 하루 처리할 물량이 너무 많아 전체 공정을 안내받으며 체험하기는 어려운 상황. 기자가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공정 하나하나를 체험할 도리밖에 없었다.
첫눈에 띈 일은 135㎏의 큰 얼음덩어리를 쇄빙기계에 올려놓는 일. 얼음덩어리는 쇄빙기계를 거쳐 작게 분쇄한 뒤, 자루에 담아 냉동차로 얼음을 주문한 곳에 배달한다.
가로 140㎝ 세로 56㎝의 이 큰 얼음덩어리를 움직이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큰 집게를 이용해 일단 얼음을 찍은 뒤, 방향조절을 하며 밀고 나가야 한다. 앞으로 향할 때는 집게로 찍은 뒤 집게 중심축을 앞쪽으로 밀어 움직이고, 뒤로 갈 때는 중심축을 반대 방향으로 향하게 한 뒤 끌어야 했다.
말은 간단하지만 직접 해 보니 쉽지 않았다. 특히 쇄빙기계 쪽에 큰 얼음덩어리를 올려놓는 일은 방향을 정확히 맞춘 뒤 순간적으로 힘을 줘 밀어야 하기 때문에 조금만 잘못하면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설명을 들어도 실수의 연속이었다. 바쁜데 방해가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얼음덩어리가 뒤로 밀리면 허벅지로 받치는 등 미숙한 모습을 연발하며 용을 써야 했지만 다들 너무 바쁜 탓인지 도움의 손길은 없었다. 혼자서 이리저리 얼음덩어리를 끌다 보니 땀이 줄줄 흘렀다. '와~따! 보기와 다르게 장난이 아니네.'
◆135㎏의 직사각형 얼음은 어떻게 만들까
제빙실에 들어서니 깜짝 놀랄 정도였다. 공장 시설비만 20억원이 들었다고 한다. 135㎏의 직사각형 대형 얼음덩어리가 500여 개나 들어가는 대형 냉동고가 두 줄로 쫙 갈려 있었다. 오른쪽·왼쪽 각각 28줄. 한 줄당 얼음덩어리 8개가 나란히 들어가 있었다. 주요한 일은 모두 자동화된 기계가 하고 있지만 사람 손이 순간순간 필요할 때가 많았다.
44, 45시간 동안 얼려진 이 얼음박스(135㎏짜리 8개 들이)는 크레인에 올려져 박스와 얼음을 분리시키기 위해 물에 한 번 담근다. 박스를 기울이면 한꺼번에 8개의 얼음덩어리가 미끄러지듯 나온다. 42년 동안 얼음에 인생을 바친 김광원(64) 대표가 이곳을 책임지고 있었다. 기자에게 크레인을 한 번 조작해 보라고 해 설명을 들어가며 움직여 보니 신기했다. 얼음이 꽁꽁 언 줄은 크레인으로 들어 제빙실 밖으로 출고하고, 빈 줄에는 다시 물을 채워넣고 뚜껑을 닫아 얼리는 작업을 반복해야 했다.
문제가 터졌다. 크레인을 조작하는 김 대표에게 기자가 자꾸 말을 시킨 탓인지 크레인 고리가 박스에 잘못 걸려 강철로 된 고리가 휘어진 것. 고리를 망치로 두드려 다시 직각으로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30여 분을 두드리고 두드려 겨우 고리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렇지 않아도 바쁜데 기자 때문인가 싶어 미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우리는 얼음공장 가족'
김광원·곽순자 씨 부부와 성진·형기 형제 등 가족 4명이 모두 이 공장 직원이다. 김 대표가 외길 인생으로 걸어온 40여 년의 얼음일을 이제는 큰 공장으로 일궈 가족이 함께하는 곳으로 만든 것. 전자동화된 대형 얼음공장은 3년 전 지어졌다. 부인 곽 씨는 먹을 수 있는 작은 각얼음을 만드는 곳에서 종일 일한다. 마치 고춧가루를 빻는 방앗간처럼 생긴 이곳에는 곽 씨를 비롯해 4명이 더 있는데 소음이 너무 심해 말을 걸기조차 힘든 곳이었다.
두 아들은 밖에서 저빙실에 얼음을 저장·관리하는 일과 135㎏의 큰 얼음덩어리를 쇄빙기계로 가져가 분쇄한 뒤, 자루에 담아 각 공급처에 배달될 냉동차량에 싣는 일을 하고 있었다. 공장 부장인 형 성진(34) 씨는 "밖에서는 그저 얼음을 얼리는 단순한 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공정이 많고 복잡하다"며 "특히 지금부터 8월 중순까지는 가장 바쁜 시기라 눈코 뜰 새 없다"고 말했다.
쉬는 시간은 오전·오후 한 번씩. 이날은 오후 4시쯤 잠시 콩국수와 수박을 먹으며 땀을 식혔다. 힘들게 일하고 잠시 쉬는 것이라 새참은 꿀맛 같았다. 김 대표 가족 4명을 비롯한 직원 6명은 여름철이면 잠시도 숨 돌릴 겨를이 없다.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때로는 밤에도 휴일에도 일한다. 요즘은 겨울에도 공장이 돌아가지만 여름 한철 매상이 공장의 1년 매출을 결정하기 때문에 몸도 마음도 온전히 일에만 매인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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