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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고갯길의 재발견…'고개 마케팅' 뜬다

경북 시·군들이 사계절 색다른 관광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경북 시·군들이 사계절 색다른 관광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고개 마케팅'을 적극 펼치고 있다. 사진은 죽령옛길.
대구와 청도를 가르는 팔조령.
대구와 청도를 가르는 팔조령.
영덕과 영양을 잇는 창수령
영덕과 영양을 잇는 창수령
경주 왕의 길
경주 왕의 길

퀴즈 하나. 우리 조상들이 평생에 걸쳐 가장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 하얀 쌀밥에 고깃국을 먹는 것과 함께 고개를 '잘 넘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민요 '강원도아리랑'에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란 가사가 나왔을까.

산이 국토의 70%나 되는 탓에 고개는 우리 선조들의 삶을 고단하게 하는 장애물이었다. 높은 고개를 넘어야만 다른 곳과의 이동은 물론 소통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숨을 헐떡이며 넘는 게 고개이다 보니 고개는 고달픈 인생에 곧잘 비유되기도 했다. 춘궁기 가족 모두가 배곯으며 지내야 했던 '보릿고개'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고개는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을 이어주는 실핏줄과 같은 역할을 했다. 고개마다 수많은 사람의 발자국과 함께 삶과 정, 문화가 깃들어 있다. 과거길에 고개를 넘어가며 청운의 꿈을 품었고, 일제 강점기 징병으로 끌려가는 아들을 바라보며 어머니가 눈물 짓던 곳도 고갯마루였다. 고개에 민초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다.

옛 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가득 밴 추억 속의 고개가 다시 뜨고 있다. 문경새재나 죽령 등 익히 알려진 고개들이 관광상품으로 각광받는 것을 계기로 경북 23개 시·군마다 고개를 관광명소로 만들려는 '고개 마케팅'이 활발하다. 옛것을 그리워하고 걷기, 사색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고개가 새로운 관광상품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고개 마케팅 시대' 활짝!

이문열의 소설 '젊은 날의 초상'에 등장해 유명해진 영덕군과 영양군을 잇는 창수령. 영양이 고향인 이문열 씨는 "해발 700m인 창수령을 넘는 세 시간 동안 세계 어디에서도 못 느낀 감동을 느꼈다"고 극찬한 바 있다.

하지만 창수령의 옛 정취를 이제는 찾아 보기 어렵다. 15년 전 고갯길이 아스팔트로 포장되면서 오솔길 대부분이 사라진 탓이다. 이에 영덕군은 창수령 복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윤점락 영덕군 창수면장은 "2억원을 들여 창수령 고갯길 도로 옆 넓은 공간 4곳을 확보해 이문열 소설의 중요 대목을 접목시켜 관광 전시판을 만들 것"이라며 "앞으로 오솔길 일부 구간을 복원할 계획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와 청도를 가르는 팔조령은 지난 1998년 터널이 개통되면서 팔조령 옛길은 드라이브족에게 자리를 내줬다. 정상 아래 휴게소를 24년째 운영하는 정영식(60) 씨는 "청도 방면 야경과 새벽 안개 낀 전경이 일품"이라며 "서늘한 산바람 아래 편안히 쉬어가는 길로 변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도 이서면 한 관계자는 "한적한 팔조령을 찾아 악기를 배우거나 그림을 그리려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귀띔했다.

청도군은 팔조령 곳곳에 가로등을 설치하고 길 양쪽에 감나무 200그루를 심고 공터에는 꽃밭을 조성하는 등 여행객에게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정상 아래에는 팔조령 소공원도 조성했다. 이중근 청도군수는 "청도지역 영남대로 복원과 관련해 팔조령 주막과 서낭당 등 옛길 유적 19곳에 대한 정비계획과 안내판 설치 등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청송과 영천을 잇는 국도 35호선 노귀재의 경우 터널이 내년에 뚫리면 고갯길 이용객이 줄어들 전망이다. 하지만 청송군은 노귀재와 연계한 청소년 수련원과 산약초타운 조성, 풍력발전단지 조성 등을 적극 추진하는 등 노귀재를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영양군 소계재도 마찬가지. 터널공사가 2013년 3월쯤 완공되면 영양군은 석보면 원리 이문열 생가가 있는 두들마을과 음식디미방을 연계한 관광벨트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경주시는 월성에서 모차골~기림사~문무왕릉에 이르는 34㎞ 구간에 문화생태탐방로를 조성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길은 석탈해가 신라로 잠입했던 길이며, 문무왕의 장례길이며, 신문왕이 옥대와 만파식적을 얻기 위해 행차했던 길이기도 하다. 경주시에 따르면 무궁무진한 스토리가 담길 이 문화생태탐방로는 일곱 가지의 테마길로 조성된다.

◆등산객·탐방객 모아주는 '효자' 고개!

문경시 문경읍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 사이에 있는 문경새재는 과거길이라는 역사성과 자연을 간직한 길이라는 덕분에 연간 100만 명 이상이 찾는 '국민관광지'로 떠올랐다.

문경시는 지난해 문경새재 입구에 길을 주제로 한 옛길박물관을 만들고 자연생태공원을 조성해 '고갯길 마케팅'에 적극적이다. 문경시는 문경새재라는 브랜드를 활용해 찻사발축제와 사과축제, 각종 걷기대회, 달빛사랑여행 등 다양한 축제와 이벤트를 개최해 관광객 유치 효과를 톡톡히 거두고 있다.

중앙고속도로 개통 이후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던 소백산 죽령도 영주시의 죽령옛길 복원사업에다 선현들의 발자취를 밟아보려는 방문객들의 호기심으로 옛 영화를 되찾고 있다.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에서 충북 단양군 대강면을 넘어가는 아흔아홉 굽이의 험준한 고갯길인 죽령은 영남에서 충청이나 경기도로 통하는 중요한 관문이었다. 하지만 2001년 12월 국내 최장 길이를 자랑하는 죽령터널(4.5㎞)이 뚫리면서 한적한 길이 됐다.

그랬던 죽령이 다시 부활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제주도 올레길처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생태관광지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 경상북도는 올해 10억원을 들여 소수서원~초암사~달밭골~죽령 옛길을 잇는 40㎞ 구간을 생태탐방로로 조성하기로 했다.

12년째 죽령주막을 운영해오고 있는 안정자(51·여)씨는 "죽령터널이 개통된 뒤 이곳을 지나는 차량들과 길손은 셀 수 있을 정도로 줄었지만 최근 죽령옛길 복원으로 등산객과 탐방객들이 다시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경북도 박순보 관광산업국장은 "경북의 고갯길은 훌륭한 관광상품"이라면서 "고갯길은 저마다 다른 역사와 유래, 전설 등을 갖고 있어 관광상품으로 개발할 가치가 충분한 데다 평범한 것을 거부하는 요즘의 관광 패턴에도 꼭 맞는 게 고개"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노진규·김경돈·마경대·이채수·박진홍·고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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