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마도는 한국 땅"…허무맹랑한 억지 아니다

대마도에서 만나는 '우리 땅'의 흔적들

바다인데도 마치 호수처럼 고요한 아소만.
바다인데도 마치 호수처럼 고요한 아소만.
맑은 날에는 부산항이 훤히 보이는 한국전망대.
맑은 날에는 부산항이 훤히 보이는 한국전망대.
일본 화가 우키다 잇케이가 1818년 조선인 표류민들의 내용을 담아 그렸던
일본 화가 우키다 잇케이가 1818년 조선인 표류민들의 내용을 담아 그렸던 '조선표객도'. 사진제공:동국대 출판부
1756년 제작된
1756년 제작된 '대마여지도'에는 대마도가 우리나라 땅으로 분명히 표기돼 있다. 사진제공:부산외대 김문길 교수

김해공항에서 비행기가 뜨고 잠시 몽실몽실 퍼져 있는 구름을 감상하니 어느새 도착이다. 실제 비행기로 가는 거리는 10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고도 관계로 25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부산에서 그야말로 지척인 49.5㎞. 하지만 엄연히 일본 땅으로 인식되는 곳. 대마도(對馬島·쓰시마섬)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부산에 대마도연구센터가 만들어지고 국회의원들이 중심이 돼 대마도역사연구회를 결성하는 등 연구도 활발하다.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것은 단순한 억지나 허무맹랑한 주장이 아니다. 여러 가지 역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는 사실이며 이제부터라도 역사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고문서 등에서 속속 드러나

"우리나라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고 우리 땅이라는 역사적 자료가 풍부한데도 일본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계속 우기잖아요. 우리도 마찬가지로 대마도를 보자는 것입니다. 일본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지만 명백한 우리나라 땅이었으니 체계적인 연구를 하자는 것입니다."(대마도연구센터 김두성 교수)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관련 고문서나 고지도들이 잇따라 공개되고 있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은 지난달 초 조선시대 현정 스님의 '일본표해록'를 공개했다. 이 책에서 현정 스님은 "대마도 사람들은 대부분 조선어가 능한 조선인이라고 했다. 평소 언어는 조선어와 일본어였으며 한번도 일본을 본국이라 말한 적이 없었다"며 "우리나라에 도착한 후 동래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대마도는 본래 우리 땅이며 그 사람들도 우리나라의 자손이라고 하였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에는 대마도가 조선 땅으로 표기된 옛 지도 2점이 공개됐다. 1756년 제작된 '대마여지도'(對馬輿地圖)와 1834년에 만들어진 '청구도 동래부 기장현' 지도 사본이 지난해 열린 '대마도 고지도 전시회'에서 전시된 것. 부산외대 김문길 교수는 "조선팔도총경과 황명홍지지도, 조선팔도지도 등 조선시대에 제작된 많은 지도에서 대마도는 조선 땅으로 표기돼 있고 각종 고서적에서도 이를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대마도에 대한 역사 의식을 고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나라당 허태열 최고위원은 최근 일본 교과서 독도 영유권 표기와 관련, 우리도 대마도의 영유권을 교과서에 싣는 문제를 거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 위원은 "결의안이 통과되면 우리 교과서에도 대마도가 옛날에는 한국땅이었다는 방식으로 실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마도가 우리 땅이었다는 근거가 충분하더라도 이를 외교적인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우리나라가 대마도를 몇 차례 정벌했지만 농사가 힘든 땅이라 버려둔 땅이었다는 것이다. 전북대 하우봉 교수는 "대마도는 1천500년 이상 일본이 실질적으로 지배해 온 지역이라 현실적으로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수용될 수 없다"며 "오히려 교류 확대를 통해 대마도를 경제·문화적으로 우리의 영향권 안으로 포섭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책"이라고 했다.

◆일본에서는 가장 변두리

대마도의 인구는 3만6천 명가량이다. 반면 한국 관광객은 해마다 늘어 지난 한 해 4만6천여 명이 이곳을 찾았다. 어업 외에는 먹고 살 것이 없었던 대마도 주민들에게 한국 관광객들은 없어서는 안 될 소득원이다. 이 때문에 대마도는 점차 한국과 가까워지고 있다. 민박집을 운영하는 한국인 박모(52) 씨는 "대마도 사람들이 과거에는 한국인을 싫어하는 면이 있었지만 이제는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차별 없이 대한다"고 말했다.

대마도가 부산에서 불과 49.5㎞ 떨어지다 보니 가끔 웃지 못할 일도 발생한다. 일본 땅인데도 로밍 없이 한국 휴대폰이 터지는 것이다. 대마도 항공투어 배희준 대표는 "한때 대마도 북서쪽에 위치한 한국전망대 근처에 가면 휴대폰이 터졌는데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본에서 전파 방해를 쏘아 지금은 안 터진다. 그러나 대마도 서쪽 해변에서 낚시를 하면 아직도 종종 휴대폰이 터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맑은 날에는 대마도에서 부산이 훤히 보이기도 한다.

이에 반해 일본에서의 대마도는 가장 오지 중 하나로 취급받는다. 일본 본토에서 대마도와 가장 가까운 후쿠오카까지의 거리가 147㎞나 된다. 이 때문에 정서적 거리도 상당하다. 박 씨는 "도쿄 사람들의 90% 정도는 대마도가 어디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관심 밖이고 정부의 지원도 많지 않다"며 "일본 본토에서는 대마도인을 순수 일본인이 아니고 한국인의 피가 절반 정도 흐르는 것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자신들의 조상을 한국인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대마도에는 우리 역사와 관련된 유적이 많다. 대부분의 한국 관련 유적은 이즈하라 시내에 몰려 있다. 백제 승려가 창건했다고 알려진 수선사(修善寺)와 대한제국 말기 의병을 일으켰다가 순국한 최익현 선생 순국 기념비, 구한말 비운의 덕혜옹주 결혼기념비, 조선통신사 행렬이 지나갔던 자리에 세워진 고려문과 조선통신사 행렬을 기념하기 위한 조선통신사비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고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유적은 거의 없다. 미즈시마(美津島) 흑뢰성산(黑瀨城山) 꼭대기의 금전성(金田城·가네타노키) 등이 그나마 한국인이 대거 이곳에서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금전성은 일본의 전통적인 성이 아닌 한국식 산성이다. 백제가 망하고 백제부흥군과 한반도에서 퇴각한 백제 유민들이 나당연합군의 공격에 대비해 쌓은 성으로 대마도에는 금전성 외에 이즈하라(嚴原)의 유명산(有明山) 꼭대기에도 한국식 산성의 흔적이 있다. 이는 백제계 유민들이 대거 대마도로 이주해 왔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에 대해 박 씨는 일본이 의도적으로 없앴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한다. 박 씨는 "일제시대 이곳에 5천 명가량의 한국인이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에 대한 흔적이 전혀 없다"고 했다.

일본은 최근 한국과 대마도 사이의 교류가 활발해지는 데 대해 경계하고 있다. 일본의 극우단체와 언론은 지난해 대마도에서 "조센징은 돌아가"라며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한국 자본이 대마도를 잠식한다는 억지보도를 하는 등 반발하고 있다. 이 같은 일본 내 움직임은 최근 우리나라의 대마도 반환운동과 활발한 민간 교류에 대해 불안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대마도에서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사진 제공:대마도 부산사무소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