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발생한 이른바 '김수철 사건'은 충격 그 자체였다. 김수철은 오전 9시부터 서울의 한 초등학교를 배회했고 1시간 가량 뒤 A양을 흉기로 위협해 자신의 집으로 납치, 성폭행했다. 당시 학교 내에 CCTV가 작동했지만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학부모들은 대낮에, 그것도 교내 CCTV가 설치돼 있는데도 버젓이 정문을 통과해 범행을 저지른 김수철의 대담함과 함께 CCTV가 범죄 예방에 별 효과가 없다는 사실에 불안해하고 있다. 일곱 살 딸을 두고 있는 박수진(34·여·대구 수성구 두산동) 씨는 "뉴스를 통해 아동 성폭행 사건을 접할 때마다 소름이 끼친다. 내년에 우리 아이도 초등학교에 보내는데 걱정이 태산이다"라고 말했다. 학교 CCTV 설치와 관리 실태를 들여다봤다.
◆CCTV 설치는 대구 모범적, 경북은 아직…
대구는 CCTV 설치에서 전국 시·도 가운데 가장 모범적이다. 교육과학기술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대구는 437개 초·중·고교 가운데 429개교에 CCTV가 설치돼(98.2%) 전국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대구 다음으로 부산 97.0%, 울산 93%, 서울 92.5% 등의 순이다. 설치 대수도 3천119대로 한 학교당 평균 7대 이상의 CCTV가 설치됐다. 이는 2008년 대구 한 초교에서 집단성폭행 사건이 터지면서 시교육청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CCTV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반면 경북은 전국 시·도 가운데 가장 낮은 설치 비율을 보였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975개교 가운데 191개교에만 설치해 19.6%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경북도교육청 체육건강과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는 큰 학교 위주로 한번에 10대씩 설치하다 보니 설치율이 낮았다. 올해는 예산을 우선적으로 배정해 6월 현재 65.7%까지 설치비율을 올렸고 연말까지 100%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했다.
학교 내 CCTV는 인권 문제로 인해 주로 사각지대에 설치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시교육청 중등교육과 김태헌 장학사는 "보통 화장실 뒤편이나 발길이 드문 곳 등에 설치하는데 요즘은 워낙 성폭행 사건이 많이 발생하다 보니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설치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고 말했다. 시교육청은 녹화기 1대당 최대 16대까지 CCTV를 모니터할 수 있어 앞으로 예산이 확보되는 대로 CCTV를 추가 설치할 계획이다.
◆모니터링에는 허점
하드웨어가 아무리 잘 갖춰져 있어도 운용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CCTV가 학교 내에 아무리 많이 설치돼 있더라도 모니터링이 부실하면 제 2, 제 3의 김수철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참교육학부모회 대구지회 김정금 정책실장은 "학부모들은 교내 CCTV 관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모니터링이 얼마나 잘 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CCTV가 설치돼 있다고 해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학교 내 모니터링 시스템은 체계적이지 못하다. 지난달 교과부가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에게 제출한 'CCTV와 배움터 지킴이 운영 실태조사 보고서'에는 "CCTV 모니터가 숙직실에 있는 경우가 많고 실시간 확인이 어렵기 때문에 예방효과는 다소 있으나 사안 해결이나 즉각적인 상황 대처 효과는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담당 교사가 CCTV 성능과 작동 방법을 숙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형식적인 담당자로 지정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최근에 설치되는 CCTV 모니터는 교무실과 숙직실 2곳에 설치하도록 해 혹시 한쪽에서 보지 못하더라도 다른 쪽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지침에는 교장이 교사나 행정 직원 가운데 담당자를 지정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담당자로 지정돼도 주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관심을 기울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일반 회사나 관공서처럼 전문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인력이 없기 때문에 모니터링 시스템에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러 보완책 필요
아동 대상 성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CCTV 확충과 함께 여러 가지 보완책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김태헌 장학사는 "교내 CCTV와 학교 주변의 CCTV를 연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학교 밖의 CCTV에서 수상한 사람이 발견되면 학교에 연락하도록 해 서로 보완하면 범죄 예방에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금 실장은 "여러 가지 이유로 수위를 보는 아저씨가 없어진 학교가 많은데 비용이 다소 들더라도 수위실을 만들어 학교 안팎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사람을 두면 학생들의 안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초교 주변을 아동보호 절대구역으로 지정하라는 목소리도 있다. 성범죄자들은 주로 학교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어린이들을 범죄의 대상으로 삼는데 학교 경계선으로부터 직선거리 50m 이내로 설정돼 있는 절대정화구역 내 청소년 유해시설을 철저히 이전하도록 해 유해환경을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50m 이내로 돼 있는 절대정화구역을 100m 이내로 확장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무조건적인 학교 개방을 재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학교 담장 허물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일출~일몰 사이 수업이 없는 때는 주민들에게 개방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요즘은 누구나 학교를 들락거릴 수 있다. 이 같은 학교 개방이 분명 좋은 점은 있지만 학생 보호라는 보완책이 전혀 없는 건 문제라는 것이다.
최근 초교생 납치 성폭행을 막기 위해 서울시가 추진 중인 'U-시티 어린이 안전시스템'도 참고할 만하다. 이는 초등학교 주변의 CCTV와 센서로 어린이의 등·하교 상황과 집, 학원 출입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해 예정된 경로를 벗어나면 부모와 교사 등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통보해주는 방식이다. 또 어린이가 지닌 휴대전화나 목걸이 또는 팔찌형 전자태그로 위치정보를 주기적으로 파악해 주며, 괴한의 공격을 받는 등 비상시에는 어린이가 긴급 장치로 경찰에 즉시 신고할 수도 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사진·우태욱기자 w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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