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원태의 시와 함께] 검은 맛 / 박지영

영혼이 깃든 맛이 있다면 그건 쓴맛일거다

오래전 엄마 젖꼭지에 묻었던 금계랍

겁나게 검은 맛

어른이 되는 건

쓴맛의 깊이를 알게 되는 것

깊이 잠자고 있던

덤불 속 새떼들 날아오르듯

뒤늦게 맛들인 쓴맛

어떤 맛으로도 바꿀 수 없는데

엄마는 쓴 나물을 맛있다 했었지

씁쓰레한 건 몸의 맛이고 탄생의 맛,

그걸 잊지 못해 나도 자꾸 쓴 나물에 손이 가는데

영혼이 깃든 검은 맛을 본 순간

암 것도 모르고 그 때 이미

인생의 쓴맛 알아버렸는지 모르겠다

"어른이 되는 건/ 쓴맛의 깊이를 알게 되는 것"이라는 경구 한마디가 모든 걸 말해준다. 한마디로, 삶의 '쓴맛'을 알아가는 게 인생이다! 쓴맛은 "영혼이 깃든 검은 맛"이어서, 우리는 그걸 통해 존재의 깊이에 가 닿게 된다. 사랑의 쓴맛, 조직의 쓴맛, 실패의 쓴맛, 고통의 쓴맛, 배신의 쓴맛 등등, 비록 종류는 다양할지언정 쓴맛은 한결같이 우리의 영혼을 일깨우는 부분이 있다. 위대한 인류의 문화/예술 걸작품들은 모두 '단맛'보다는 제대로 '인생의 쓴맛'을 질료 혹은 거름삼아 태어난 것들이다. 어릴 땐 쓰다고 뱉어내던 씀바귀나 머위 잎을 나이 들어가면서 그 '참맛'을 알고 즐기게 되듯, '몸의 맛'이자 생멸(生滅)의 근원적인 맛인 쓴맛! 그 쓴맛의 참맛을 알아가고 이해해 가는 게 인생이 아닐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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