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행-경북을 걷다] (28)영양 맹동산

길의 태어남과 죽음…낙동정맥 고개'울치재'에서 보았네

▲울치재 고갯마루에서 영양군청 김상수(왼쪽) 씨가 정창기 화백에게 옛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울치재 고갯마루에서 영양군청 김상수(왼쪽) 씨가 정창기 화백에게 옛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햇살이 따갑지 않은 날에는 이 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가슴이 탁 트이는 청량감을 맛볼 수 있다.
▲햇살이 따갑지 않은 날에는 이 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가슴이 탁 트이는 청량감을 맛볼 수 있다.

길을 걸으며 문득 궁금해졌다. 길도 태어나고 죽는 것일까? 영양 맹동산에 올라 낙동정맥을 걸으며 그것을 목격했다. 한때 길은 수단이었지만 이제 길 자체가 목적이 된 세상이 됐다. 길이 있기에 걷고, 걷지 않기에 사라지는 길. 동쪽 저 멀리 동해가 아른거리고, 서쪽으로 첩첩이 봉우리가 앞다퉈 사라지는 그곳에 서서 길의 탄생과 사망을 보았고, 인간의 이기심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한반도의 등뼈를 이루는 낙동정맥. 태백산맥 매봉산에서 부산 다대포 몰운대까지 400여㎞를 달리는 산맥이다. 특히 영양을 남북으로 가르는 구간은 경북에서 가장 높은 지형을 이루며, 잘 보존된 원시림에다 빼어난 경관까지 갖춘 매혹적인 곳이다.

##낙동정맥 중 가장 높은 구간

마치 물길이 굽이치듯 영양을 남북으로 출렁이며 내달리는 낙동정맥은 6가지 구간으로 나뉜다. 특히 제5구간은 좌우로 잠시 굽이침을 눈감아준다면 거의 일직선으로 남쪽으로 쭉 뻗어가는 곳이다. 이 산줄기는 영양 석보면과 영덕군 영해, 창수면을 나눈다. 제5구간 산줄기를 중심에 놓고 지도를 펼쳐보면 서쪽에 석보가, 동쪽에 영해가 마치 줄자로 동서를 연결한 듯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조선시대 영양땅의 중심은 석보였고, 영덕땅의 중심은 영해였다. 두들마을로 유명한 석보에 고택들이 즐비하고, 고을 원님이 머물렀다는 뜻에서 '원리'라는 지명이 남아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석보면 원리리에서 동쪽으로 5㎞쯤 가면 요원리가 나온다. 허리 '요'(腰)자를 썼는데, 그 옛날 석보에서 영해로 이어지는 고개를 넘기 전에 쉬어가던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요원리를 통과하면 917번 지방도를 만나는데 거기서 왼쪽으로 길을 잡아 잠시만 가면 양구리가 나온다. 낙동정맥 고갯길인 '울치재' 입구다.

사람과 물자가 모이던 두 고을 석보와 영해를 잇던 고개였으니 수많은 사람이 오갔을 터. 하지만 지금은 기억 속에 남아있는 길이 됐다. 석보보다 북쪽에 있는 영양읍과 창수, 영해를 연결하는 918번 지방도가 뚫리면서 이 길은 역사의 뒤안길로 내쳐졌다. 길 안내를 맡은 영양군청 김상수 씨는 "낙동정맥 종주구간은 남북으로, 석보~영해길은 동서로 이어지며 바로 이곳 울치재에서 만난다"며 "지금은 낙동정맥의 여러 고개 중 그저 하나로 남아있지만 신작로가 뚫리기 전만 해도 사람과 물자가 오가던 요긴한 길이었다"고 했다.

어른 손가락 끝마디만한 산딸기가 지천으로 깔린 그 고갯마루에 서서 동쪽을 내려다봤다. 굽이치는 길은 아스라히 옅은 안개가 낀 산자락으로 사라지고, 그 옆으로 창수저수지가 눈에 담긴다. 울치재를 알리는 낡은 나무기둥에는 'OK목장 3㎞'라는 안내도 보인다. 낙동정맥 능선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반대편은 제5구간 출발점인 창수고개로 향한다. 산딸기를 실컷 따먹고 길을 서둘렀다.

예전에는 목장이 가장 주요한 이정표였지만 지금은 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섰다. 오르고 내리기를 거듭하며 산이 내뿜는 정취에 한껏 취할 무렵, 난데없이 숲은 끊어지고 거대한 풍력발전기 무리가 압도하듯 눈 앞을 막아선다. 이곳에 들어선 풍력발전기는 무려 41기. 이곳 1차 단지에만 10기가 추가로 들어설 예정이고, 2차 단지에 24기, 3차 단지에 30기가 순차적으로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친환경 에너지를 얻기 위해 환경을 파괴할 수밖에 없는 현실. 이곳에 풍력발전단지를 조성한 스페인의 신재생에너지 전문기업 악시오나는 청송에도 72기 규모의 발전단지를 조성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2012년까지 이들 사업이 순차적으로 완료되면 영양과 청송에만 177기의 풍력발전설비가 들어선다. 연간 발전량은 모두 합쳐 69만1천MW. 20만 가구가 1년간 쓸 수 있는 전력량이다.

##풍력발전기 41기가 가로막아

조성 당시 멸종위기 2급 식물인 노랑무늬붓꽃과 날다람쥐, 담비 등 동식물의 서식지를 파괴한다며 환경단체와 날 선 대립을 하던 곳. 이제는 파헤쳐진 발전기 터가 하루속히 복구뒤기를 바랄 뿐 그 생채기를 되돌릴 방법은 없다.

풍력발전기는 거대하다. 날개 하나 길이만 40여m에 이른다고 한다. 마침 고공크레인을 설치해놓고 발전기 날개를 손 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날개 끝에 붙은 사람이 마치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곤충처럼 작게 보일 정도다. 단지 중간 쯤에 잘려나간 산자락이 보인다.

김상수 씨는 산자락 끝을 가리키며, "저 곳이 맹동산 정상"이라고 했다. 산 정상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초라한 모습이다. 자그마한 나무 기둥에 애처롭게 쓰여진 '맹동산' 세 글자가 한 때 이곳이 산 정상부였음을 짐작하게 할 따름이다. 영양군이 제공한 지명유래집에 따르면, 원래 맹동산의 이름은 '민둥산'이었다. 다른 산보다 높고 특히 바람이 거세서 나무들이 잘 자라지 못하고 풀들만 자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민둥이 맨둥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맹동산으로 굳어졌다는 것. 이제 맹동산은 진짜 민둥산이 돼 버리고 말았다.

바람이 세다. 산 아래에는 잎사귀조차 숨을 멈출 만큼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하건만 이곳에는 지치지도 않는 듯 바람이 몰아친다. 햇살을 피할 나무 그늘만 있다면 한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다. 언젠가 풍력단지가 생태공원으로 바뀔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길을 재촉했다. 이 곳 능선에 비가 내려서 동쪽으로 흐르면 동해가 되고, 서쪽으로 흐르면 낙동강이 된다.

진짜 민둥산이 된 '맹동산'

지금은 '삼의농장'으로 바뀐 'OK목장'이 풍력단지 옆으로 끝 없이 펼쳐지고, 철망 안쪽에는 황소들이 떼를 지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목장을 지나 임도네거리까지 내달으면 그 아래 하얗게 꽃을 피운 감자밭이 펼쳐진다. 풍력단지 끝에는 다시 낙동정맥 종주구간이 이어진다. 새로 난 길 때문에 숲길을 찾기가 쉽잖다. 하지만 산악회 리본들이 빼곡히 매달린 나무를 찾아 올라가면 봉수대로 가는 종주로를 다시 만날 수 있다. 여기서 계속 길을 달리면 남쪽으로 명동산을 지나 포도산으로 이어진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하삼의쪽으로 내려선다. 천마 밭을 지나 산길을 내려서면 삼의계곡이 나온다. 원래 삼의골은 산밑골이었다. 한자로 고쳐쓰며 삼의(三宜)가 된 것. 유래집에는 다른 이야기도 나온다. 옛날 이곳에 4대 독자인 김 부자가 살았는데, 결혼 후 삼형제를 얻었더란다. 아들 이름을 의남(宜男)으로 지었고, 삼형제를 모두 귀히 여겨 삼의라 불렀다는 것. 세 아들은 장성한 뒤 각자 살림이 났는데, 맏이가 상삼의, 가운데는 중삼의, 막내는 하삼의라 불렀고, 지금도 그 이름이 마을 이름으로 남아있다는 이야기다. 하삼의로 내려와 만나는 917번 지방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가면 다시 요원리로 갈 수 있다. 울치재~풍력단지를 제외하고는 차량 이용이 가능하다.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도움말=영양군청 공보계 김상수 054)680-6061

전시장소 협찬=대백프라자 갤러리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