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님이 물러나시면 저희로서는 정말 큰일입니다. 이제 어디에다 상의하고 고민을 호소하겠습니까?"
대구사회의 한 지도층 인사는 최근 사석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며 걱정을 내비쳤다. 6'2지방선거 패배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정정길 대통령실장에 대한 이야기였다. 대구경북으로선 거의 유일한 '권력핵심부 소통 창구' 역할을 해온 정 실장에 대한 아쉬움이자 위기의식의 표현이었다. 경남 함안 출신이지만 경북고를 졸업, 지역의 고민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정 실장의 빈 자리는 그만큼 커보인다.
정 실장은 지난달 3일 선거 결과 발표 직후 이명박 대통령에게 물러날 뜻을 전달했다. 이날 오전 청와대 수석비서관들 사이에서 "이번 선거 패배에 우리가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들이 나오자 "내가 대표로 책임지고 사의를 표하겠다"며 대통령을 만난 것.
이 대통령은 아직 구체적으로 언급한 바 없지만 정 실장의 용퇴는 이미 기정사실화된 분위기이다. 지난주에는 직접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만나 그간의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2008년 6월 취임 후 만 2년 넘게 언론 접촉을 극도로 피해 온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정 실장은 이 자리에서 자신의 '대통령실장론'을 이야기했다. "악역을 맡으면 2인자란 소리를 듣고, 결국 부통령이다 뭐다 이런 비판만 나온다"는 요지였다. 대통령의 제1참모인 대통령실장을 실세형, 비서형, 실무형, 정치형 등으로 나눠 볼 때 정 실장은 자신을 비서형'실무형의 중간쯤으로 자리매김하는 듯했다.
시대에 따라 또 대통령의 품성에 따라 바람직한 대통령실장의 기준은 바뀔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실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선진국에 다가갈수록 시스템적으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성공이 우리 사회의 성공이라는 전제에 동의한다면 참모진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이 대통령의 경우 교육'일자리'경제 등 거의 모든 분야를 직접 챙기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적재적소에 필요한 보좌진의 구성'운용을 관장하는 대통령실장의 역할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담보한다고도 할 수 있다.
조만간 이뤄질 청와대 개편에서 대통령실장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당연하다. 후임 대통령실장에 누가 발탁되느냐를 보면 이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 방향이 점쳐지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아직 후임 대통령실장에 대한 콘셉트를 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집권 후반기에 접어든 만큼 이 대통령의 뜻을 잘 알면서 조직 장악력이 강한 인물이 적임자라 주장하고, 일부에서는 정 실장과 같은 '그림자'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지역 균형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TK 배제론'은 또 다른 인사 부실 논란을 부를까 우려가 앞선다. 능력을 최우선으로 발탁해야 할 필요성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정 실장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사의 표명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도 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인 지난해 여름에도 물러날 뜻을 밝혔지만 이 대통령이 '연말까지만 버텨보자'며 만류했다"며 "첫 6개월을 보낸 뒤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욕을 하던 지인들이 1년 6개월이 지나니 '호상'(好喪)이라며 오히려 격려한다"며 웃었다.
정 실장은 선거 결과와 사의 표명이 직접적 연관이 있느냐는 질문에 '오프 더 레코드'라 답했다. 말한 것도 없는데 왜 '기록에서 제외해달라'라고 했을까. '노 코멘트'를 잘못 말한 것은 아닐까. 왜 그랬을까…. 궁금증이 일었지만 '다 알면서 왜 또 묻냐'는 답이 돌아올까봐 그냥 일어섰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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