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삼각대 규정 '비현실적'…'2차 사고' 위험

100∼200m에 설치…외국의 2배 거리

3일 발생한 인천대교 버스 추락 참사가 고장으로 고속도로에 방치된 마티즈 차량 운전자의 적절치 못한 대응이 한 요인으로 지목되면서 고장차량 후방에 세워야 하는 자동차용 정지표지판인 안전삼각대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 되고 있다. 또 국내 안전삼각대 설치 거리 규정이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길어 운전자의 2차 사고 위험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교통 전문가들은 "총체적 안전불감증이 더 큰 문제"라며 "정작 교통 선진국에서는 정차 차량 운전자의 책임보다 안전거리 확보에 더 집중하고 있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삼각대 없는 차량많다

시민교통안전협회가 지난 4월 서해안고속도로 운전자 847명을 대상으로 '안전삼각대 인지도 및 휴대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 63%가 삼각대를 보유하고 있다고 응답했지만 설치 경험률은 29%에 불과했다.

협회 김기복 대표는 "운전자들은 새차를 사면 회사로부터 안전삼각대를 무료로 받는다"며 "하지만 안전삼각대 배부 사실을 기억조차 못 하는 운전자들이 태반"이라고 지적했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고속도로 등 자동차전용도로에서 고장·사고 등으로 운전이 어려울 경우 차량 100m 후방에, 야간에는 200m 후방에 안전삼각대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안전삼각대를 설치하지 않을 경우 승용차는 4만원, 승합차는 5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되며 안전삼각대를 갖고 있지 않은 것만으로도 2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그러나 운전자들은 안전삼각대를 어디에서 구입해야하는지를 아예 모르고 있다.

경찰은 "경광봉이나 접이식 컬러콘(꼬깔)을 대형소매점에서도 구입할 수 있지만 운전자들이 '설마 나한테 그런 상황이 닥치겠냐'는 인식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꼬집었다.

운전면허시험 직전 응시자들이 받는 교육도 문제다. 현행 제도대로 운전면허를 취득하려는 이들은 학과시험을 치르기 전 교통안전교육을 1시간 받아야한다. 그러나 시청각 교육으로 이뤄지는 1시간 교육 분량 중 안전삼각대 설치법 등 비상 상황 대처 요령은 빠져 있다.

이에 대해 도로교통공단 교재개발팀 관계자는 올 2월부터 바뀐 운전면허취득 과정 때문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종전 강의 2시간, 영상교육 1시간이었던 교통안전교육이 운전면허취득 간소화 시행 이후 영상교육 1시간으로 대체되면서 예전 강의식 교재에 포함돼 있던 비상 상황 대처 요령이 함께 빠졌다"고 해명했다.

특히 갓길 정차는 더욱 엄격히 규제되어야 하지만 이를 무시하는 경우가 적잖다는 게 고속도로순찰대의 얘기다. 대구·경북을 관할하는 3지구대 관계자는 "갓길에 차량을 비상 주·정차해놓고 잠을 자는 것은 목숨을 내놓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며 "꼭 쉬어야겠다면 휴게소에서 쉬어야한다"고 조언했다.

◆비현실적인 삼각대 설치 거리 규정

교통 전문가들은 삼각대 설치 거리 규정 역시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교통 선진국에서는 안전삼각대 설치 거리보다 안전 운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

선진국에서도 안전삼각대를 소지해야하는 것은 우리와 같지만 설치 거리가 국내 기준보다 훨씬 짧다. 영국은 45m 이상인 곳에, 호주는 50m 이상인 곳에 안전삼각대를 설치하도록 해 주간 100m, 야간 200m의 국내보다 운전자의 안전을 중요시하고 있다. 안전삼각대를 설치하기 위해 도로 위를 걷다 차량과 부딪칠 우려가 높다는 것.

선진국들은 대신 안전거리 확보에 초점을 두고 있다. 독일의 경우 안전거리 미확보에 대해 거리별로 75~400유로(1유로 1천500원가량)까지 벌금을 매긴다.

무인단속 카메라가 신호위반 및 과속뿐 아니라 안전거리 미확보도 잡아낸다. 도로교통공단 안전정책연구단 명묘희 박사는 "교통 선진국의 경우 차량 정기점검에도 힘쓰지만 갑작스런 고장에 당황해 할 운전자의 의무를 크게 요구하지 않는다"며 "우리도 운행 중 비상 상황이 일어나면 운전자들이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조치 요령을 매뉴얼로 만들어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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