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동수의 야구토크] 방망이

투수와 타자 사이의 거리는 18.44m다. 투수가 412g 남짓한 야구공을 시속 150㎞로 던졌을 때 타자 앞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0.44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공이 포수 미트에 빨려들어가는 것이다. 당연히 투수가 승리할 것 같지만 타자들은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홈런과 안타를 만들어낸다. 타자가 홈런을 치려면 0.19초의 순간적인 판단력으로 배트 위쪽 끝에서 약 17.13㎝ 지점인 '스위트 스폿'(Sweet Spot)에 공을 정확하게 맞혀야 한다. 어느 부위에, 또 어떤 타이밍에 맞느냐에 따라 공의 속도와 방향 등이 결정된다.

그래서 타자들은 방망이 선택에 매우 신중을 기한다. 언뜻 같아 보이는 방망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엄청난 차이가 있다. 가령 단거리 타자는 짧고 뭉뚝한 스타일을 선호한다. 또 방망이의 무게 중심이 손잡이 쪽에 있고 끝이 가벼운 것을 고른다. 그래야 빠르게 방망이를 돌릴 수 있어 짧게 끊어치기가 가능하다. 반면 거포들은 길고 방망이의 무게 중심이 끝 쪽에 있는 것을 찾는다. 배트 '헤드'를 이용해야 장타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체형, 타격 스타일에 맞춰 적당한 방망이를 구입하기도 하지만, 대다수 프로선수들은 자신의 야구인생이 달린 방망이를 주문 제작해 사용한다. 그래도 맘에 드는 '애마'를 찾을 확률은 30, 40%밖에 안 된다. 필자도 현역시절 방망이를 주문해 사용했다. 보통 10자루를 주문하면 그 중에 감칠맛 나는 방망이는 많아야 3, 4자루가 전부였다. 모양은 똑같지만 미묘한 차이가 손끝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나마 요즘은 국내에도 방망이 만드는 회사가 많아졌고 그 종류도 다양해졌다. 방망이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 제품이 좋아지면서 국산을 이용하는 선수들도 많아졌다. 그러나 예전에는 방망이와 관련한 많은 에피소드가 만들어졌다.

프로야구 초창기 때는 일본 제품을 많이 사용했다. 1990년대에는 미국 제품을 주로 사용했으나 수입 방망이는 우선 자기에게 맞는 것을 구하기 힘든데다 설령 있다고 해도 지속적으로 사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전지훈련을 가면 한 무더기씩 사왔다. 그것도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사용하는 방망이는 구할 수 없었다. 선수마다 방망이 회사에서 특별 제작해 공급하기 때문이다. 주로 마이너리그 선수들이 사용하는 방망이였지만 그것도 없어 못 사올 경우가 많았다.

당시 구입한 방망이는 마이너리그 투수들이 타격 훈련 때 사용한 것이다. 해당 구단은 투수들이 사용한 방망이를 모아 두었다 한국 선수들에게 팔았다. 당시 방망이는 한 자루에 20달러 정도 했는데 그 방망이는 5달러로 저렴했다. 더한 경험도 있다. 당시 국산 방망이는 경기용으로 적합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 편의점에서 방망이를 샀던 기억도 있다. 이렇게 구한 방망이를 한국에 들고 와서는 목공소나 공예점에서 손에 맞게 손질해 사용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요즘은 전화 한통이면 손잡이 모양부터 무게, 길이 등 세밀한 것까지 주문 제작해 사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선수들의 선호도도 달라져가고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힘 있는 타자들은 950g 이상의 방망이를 사용했다. 하지만 요즘은 850g 정도의 가벼운 방망이를 선호한다. 투수의 유형에 따라 여러 자루를 들고다닌다. 필자는 좌완 투수면 무거운 것을 사용했고 언더스로 투수면 가벼운 걸 사용했다. 가벼운 방망이는 잘 돌아가지만 부서지기 쉽고, 무거운 방망이는 반대다. 그래서 훈련할 때는 무거운 배트를 많이 사용한다. 요즘은 훈련 전문용 방망이도 따로 구분돼 나온다.

이동수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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