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두 개의 눈으로 하나의 세상을 본다.'
사람의 두 눈은 코를 사이에 두고 다소 떨어져 있다. 그래서 각각의 눈은 각각 미묘하게 다른 풍경을 본다. 그러나 사람은 별개의 두 풍경을 보는 게 아니라, 하나의 풍경을 본다. 두 눈에 각각 맺힌 상이 뇌에서 융합되면서 하나의 풍경으로 만들어지고 인식되는 것이다.
그러면 눈이 한 개라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까?
두 눈이 본 각각의 장면이나 풍경은 뇌 안에서 융합되면서 입체적이고 뚜렷한 윤곽을 띠게 된다. 만약 우리가 한쪽 눈으로 사물을 본다면 입체감이나 거리, 깊이를 알기 힘들다. 사물이 평면적으로 보인다는 말이다. 양쪽 눈으로 본 각각의 풍경이 하나의 입체적 풍경으로 되는 과정은 자연스럽고, 건강한 보통 사람은 뇌 안에서 벌어지는 이 과정에서 어떤 특별한 느낌을 가지지 않는다.
사시안(사팔눈)인 사람의 두 눈은 같은 지점을 겨냥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왼쪽 눈과 오른쪽 눈에 보이는 사물의 차이가 보통 사람보다 굉장히 크다. 뇌는 이렇게 큰 차이로 접수된 상을 단일한 영상으로 결합시키지 못한다. 말하자면 사시인 사람의 두 눈에 들어오는 상은 너무나 다르고, 그래서 서로 충돌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뇌는 어떻게든 눈에 비쳐서 뇌에 들어온 상을 단일화하고 일관되게 하려고 노력하는데, 사시안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뇌는 무의식적으로 한쪽 눈으로 들어온 정보만 받아들이고, 다른 쪽 눈으로 들어온 정보를 억압한다. 두 눈으로 받아들인 상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인 셈이다. 사시인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은 항상 같은 쪽 눈으로 들어온 상만 취하고, 또 어떤 사람은 두 눈을 번갈아 가면서 사용한다. 어느 쪽이든 간에 사시인 사람들은 사물을 지각하는 데 심각한 문제를 갖게 된다.
이 책의 지은이 수전 배리는 사시안을 가졌다. 그녀는 늘 평면적인 세상을 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보는 세상이 다른 사람이 보는 '입체적 세상'과 다르다는 것을 몰랐다. 입체적 세상을 한 번도 본 일이 없기 때문에 몰랐던 것이다.
사시안을 가졌지만 수전은 운전을 할 수 있었고, 소프트볼을 할 수도 있었다.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보통 사람들처럼 깊이를 직접 볼 능력은 없었지만, 원근과 가림, 명암과 운동시차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완전히 평면인 세상밖에 볼 수 없었지만, 거리의 차이를 알고 있었다. 예컨대 교실에 앉아 있을 때 그녀는 자신과 칠판 사이에 다른 학생이 있음을 알았다. 그것은 그녀가 입체적으로 맺히는 상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는 다만 앞에 앉은 학생의 머리가 칠판을 가렸기 때문에, 칠판과 자신 사이에 다른 학생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수전은 멀리 있는 것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을 알았다. 멀리 있는 나무는 작아 보였고, 가까이 있는 나무는 커 보였기 때문이다. 눈앞의 도로는 넓어 보였고, 먼 거리의 도로는 좁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3차원적 입체'를 상상하지는 못했다. 안과의사가 "3차원적 풍경을 상상할 수 있겠어요?"라고 물었을 때, 그녀는 "나도 상상할 수 있어요"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대충 머릿속에 그려볼 수는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훈련과 치료를 통해 '눈 정렬 법'을 배우고, 입체맹에서 벗어났을 때, 수전은 "내가 상상한 입체 세상과 내가 본 입체 세상은 전혀 달랐다"고 말했다. '눈 정렬 법'을 배우기 전의 그녀는 눈이 내리는 날 '한 장의 평면 안에 눈송이가 멀고 가까운 곳에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눈 정렬 법'을 배운 뒤에는 자신이 내리는 눈 속에, 눈송이들 한가운데 있음을 알았고, 핸들이 계기판보다 훨씬 튀어 나와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사시안을 가진 사람이 보는 '평면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우리가 한쪽 눈을 감기만 하면 '평면세상'을 보게 되는 것일까? 이론적으로는 그래야 한다. 적어도 두 눈이 같은 지점을 겨냥하지 못하기 때문에 입체맹이 생기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한 쪽 눈을 감는다고 평면적인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두 눈으로 보는 정상인이 한쪽 눈을 감더라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여러 가지 시각 경험들을 이용해서 사라진 입체 정보를 재창조하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게, 뇌 안에서 그런 작용이 일어난다. 결국 두 눈으로 입체 세상을 보아온 사람들은 한쪽 눈을 감는다고 해도 '사시인'이 보는 세상과 같은 세상을 볼 수는 없다. 입체시를 가진 정상인이 상상하는 '평면세상'은 사시인 사람이 상상하는 '입체세상'만큼이나 다르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입체시는 생후 3, 4년 안에 습득해야 하며 그 뒤로는 습득할 수 없다고 본다. 입체시 결정에 필요한 뇌세포와 회로들이 그 뒤로는 발달하지 못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러나 사시안의 치료에 '늦은 때'는 없다고 말한다. 물론 아기 때 치료할수록 효과는 크다. 사시 발병 후 3개월 안에 치료하면 가장 좋고, 사시를 갖고 태어난 아기가 두 살 이후에 치료를 받을 경우 입체시가 발달할 수 있는 확률은 20% 정도에 불과하다. 한 살이 지나 사시가 된 환자들의 경우 검안 시훈련 치료를 통해 70%가 입체시를 획득할 수 있다고 한다.
사시를 극복하고 입체시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두 눈이 각각 어디를 보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이 책은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브록의 끈 사용법'을 소개하고 있다. 구슬을 꿴 끈을 갖고, 구슬을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이동시키면서 시선이 구슬을 따라가는 방법으로 치료한다고 한다. 물론 치료는 전문의의 처방에 따라야 한다.
이 책은 '입체시'와 '사시'에 관한 물리적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철학적으로 읽힌다. 우리가 '평면'에 갇혀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경고해주기 때문이다. 치료받기 전 수전이 입체적 세상을 상상하는 데 실패했듯, 사시안적 사고를 가진 사람은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는 한 결코 입체적으로 세상을 볼 수 없다. 자신은 상상할 수 있다고 믿지만 그 상상은 실제와 너무 동떨어진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입체적 세상과 평면세상의 차이조차 모르고 사는지도 모른다.
지은이 수전 배리는 프린스턴대학교 생물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마이애미 의대와 미시간대학교에서 신경과학을 연구했다. 미국 나사 존스 우주센터, 우즈 홀 해양생태연구소에서 일했으며, 현재 마운트 홀리요크대학교에서 생물학 및 신경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녀는 48세가 될 때까지 완전히 '평면'인 세상을 보았으며 이후 치료를 통해 '성인이 된 후에는 입체시를 회복할 수 없다'는 신경과학계의 정설을 깨트렸다. 319쪽, 1만3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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