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손이 작은 그 여자(서숙희 지음/동학 시인선 펴냄)

뾰족하지도, 쉬 드러나지도 않는 그녀의 詩

199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서숙희(사진) 시인이 두 번째 시집 '손이 작은 그 여자'를 펴냈다.

손진은 경주대 교수가 해설에서 밝히고 있듯이 서숙희의 시는 '둥글다.' 그녀가 선택하는 언어는 뾰족하지 않고, 쉽게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시를 잘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무슨 이야기인지, 금방 와 닿지 않는다. 마치 목소리가 작은 사람의 이야기를 쉽게 알아듣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조그만 쪽편지 오래오래 접은 손/ 그 편지 다 닳도록 차마 건네지 못한 손/ 가만히 호주머니 속에서 깃털처럼 파닥인 손/ 그 여자 손이 작아 그 사랑 잡지 못했네/ 그 여자 손이 작아 그 상처 다 못 가리네/ 그 여자 손이 너무 작아 그 눈물 다 못 닦네.'

여기서 작은 손은 미안함, 수줍음, 지나치게 과민함, 용기 없음, 어리석음 등 많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차마 편지를 건네지 못하고, 그 사랑을 잡지 못하고 오므린 채 호주머니 속으로 슬그머니 집어넣었을 그 손은 나중에 제 눈물을 닦을 때나 다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간 이별은 너무 슬퍼서 작은 손이 그 눈물을 닦기에는 부질없이 울음이 크기만 했을 것이다.

서숙희 시의 원형은 서정성과 생명이다. 식물적인 생명성을 근간으로 하며, 시인 자신과 사물, 우주 사이를 대립 없이, 어떤 마찰음도 없이 넘나든다. 그녀는 매우 '은유적'인 언어를 고르고 있는데, 그런 까닭에 신산과 상처, 이별 등 감각을 노래하고 있음에도 좀처럼 쉽게 와 닿지 않는다. 예컨대 '손이 작은 그 여자'에서 '작은 손'은 소심하고 심약한 여자, 맑고 순결한 사람을 상징하는데, 얼른 시를 읽어서는 그 느낌이 와 닿지 않는 것이다.

손진은 교수는 바로 이 부분을 "말을 골라 문장 속에 앉힐 때 행간의 어느 부분에 불이 켜지는지를 알고(있다)"라고 평가한다. 세심하게 살피지 않으면 서숙희의 발자국을 확인할 수 없고, 발자국을 확인하지 못하는 한 '그녀가 다녀갔음'을 알 수 없는 셈이다. 그녀의 은근함, 숨기기, 둥글둥글한 묘사는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풀벌레 울음소리 옥양목의 가위질 같다/ 차가운 별빛은 물에 씻어 박은 듯/ 잊고 산 세상일들이 오린 듯이 또렷하다.'

위 시는 서숙희의 첫 번째 시집 '그대 아니라도 꽃은 피어'에 나오는 '처서 무렵'이라는 시다.

이 시는 시각적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는 듯 보여서, 독자가 소리를 찾아내서 듣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시에서 정작 시인이 보여주고 싶은 것은 소리다. 풀벌레 울음소리를 옥양목의 가위질에 비유했지만 이는 울음소리를 더 드러내는 시인의 방식이다. '옥양목의 가위질'은 '가위질 소리'를 대신하고 있는데 마지막 장에 가서야 시인은 '오린 듯이'라고 씀으로써 자신이 감춘 '소리'를 슬그머니 보여준다.('들려준다'가 아니라) 마치 직접 '울음소리'를 들려주기보다 멀리서 '가늘게 떨리는 어깨'를 보여줌으로써, 소리는 미치지 못할 '저 먼 곳'까지 울음을 전하는 식이다.

'경주 남산골 돌부처님은/ 눈이 없다 코도 없다/ 천년 비바람에/ 세월에/ 그 모두 보시하고/ 천천히 다시 돌 하나로/ 돌아가시는 중이다.' -남산골 부처님- 전문.

116쪽, 7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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