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생물'(生物)이다.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고 때론 쇠퇴하고 병들어 간다. 한때 명성을 날렸던 도시들이 순식간에 쇠락하는가 하면 작은 촌락이 국제 도시로 변모하곤 한다. 21세기 들어 도시의 이러한 변화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성장하는 도시는 성공한 기업과 유사하다. 미리 예측과 준비를 하고 변화에 적극적이다. 쇠퇴하는 도시는 이와 반대다. 과거에 집착하고 능동적이지 못하다. 일본, 미국 등 해외 도시 사례를 통해 대구경북의 미래 발전 전략과 방향을 찾아본다.
기로에 선 일본 도요타시
도요타시(豊田市)의 하늘에는 시꺼먼 구름만 잔뜩 끼어 있었다. 일기 예보처럼 한줄기 비라도 시원하게 쏟아지면 좋으련만, 그럴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온종일 후텁지근했다. 한때 세계적인 기업도시의 모범, 성공 도시의 모델로 유명했던 도요타시의 상황이 잿빛 하늘과 비슷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기업이 죽으면 도시도 죽는다?
이달 2일 취재팀이 찾은 도요타시는 불안감으로 가득했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 메이커 도요타가 리콜 사태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회사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는 이 도시는 불투명한 미래에 신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도요타시 인구의 절반이 도요타 관련 시민들인 데서 말해주듯 도요타가 흔들리면 도요타시도 마치 태풍이 휩쓸고 간 듯 쑥대밭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선입견 때문일까.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의 표정은 어두웠고 흰색 와이셔츠를 차려입은 회사원들의 발걸음도 가볍지 않은 듯했다. 현장에서 시민들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니 그 선입견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식당에서 만난 회사원 사사키(50) 씨는 기자의 질문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지난해에는 작은 회사들이 잇따라 도산하고 비정규직이 대거 해고되면서 온통 난리였어요. 지금은 좀 나아졌다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 모두가 불안해합니다."
옆에서 취재진을 지켜보던 식당 주인 남자도 맞장구를 쳤다. "식당 손님도 크게 줄었어요. 도요타 직원들은 자숙의 의미로 더 이상 부서 회식을 하지 않고, 편의점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게 늘었어요."
식당과 술집들은 아예 장사를 포기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2년 전만 해도 풍요로움을 구가했던 도시가 극심한 지역경제 침체에 빠지며 순식간에 내려앉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원래부터 이 도시는 서비스업이 발달하지 못한 도시다. 도요타의 본사와 6개 공장, 1천300여 개의 하청 업체로 이뤄진 도시이기에 사원들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자체적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는 도요타의 경영방식으로 인해 흥청망청 즐기는 분위기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시 중심가 철도역 주변에 백화점, 상가들이 일부 있지만 일본의 비슷한 규모 도시들에 비해 보잘것없다. 그런 상황에서 시민들이 더 이상 지갑을 열지 않는 바람에 가뜩이나 취약한 서비스업 자체가 붕괴될 상황마저 나타나고 있는 것.
도요타 시청 직원 쓰카다 도모히로(38) 씨는 "우리 시의 과제가 서비스업을 육성하는 것이었는데 당분간은 미뤄둘 수밖에 없다"고 했다.
◆미래는 암울하지만 대안이 없다.
애초부터 도요타시는 매력적인 도시가 아니었다. 일터로는 더할 수 없이 좋은 곳이지만 문화생활을 하거나 먹고 즐기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곳이다. 중심가에 고층아파트가 몇 개 있을 뿐, 높다란 건물이 거의 없다. 주택가를 제외하면 상당수가 공장일 정도로 무미건조한 도시다. 마른 수건도 쥐어짠다는 '도요타생산방식'(TPS)에 따라 1일 2교대를 하는 근로자들은 집과 공장을 오가기에도 바쁘다. 42만3천 명의 시민 중 절반 이상이 도요타와 관련 업체 직원과 가족들이기에 생활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는 것이다. 경기가 좋을 때는 이런 약점이 보이지 않지만 경기가 나쁠 때는 사소한 약점이라도 쉽게 노출되는 게 세상 일이다.
사실 도요타시도 특정 기업에만 의존하는 불안정한 경제구조를 개선하려는 시도를 계속 해왔다. 적극적으로 기업 유치에 나서왔고 외형적으로는 괜찮은 실적을 거뒀다.
시 관계자는 "지난 2000년부터 지금까지 58개의 기업을 유치했는데 자동차 관련 기업과 물류 기업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앞으로 5년간 35개사를 더 유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문제는 주요 철도가 지나가지 않는 외곽 도시에 자동차 산업과 관련없는 기업이 선뜻 들어올 리 없다는 점이다. 도요타시의 고민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도시이기에 새로운 산업을 창출할 만한 역량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망해가는 미국 디트로이트와는 다르다'고 외치고 있지만, 도요타에 계속 기대고 있는 이상 도시의 미래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도요타 시청 종합기획부 가토 다츠시(43) 씨는 "자동차 산업 하나만으로는 도시의 지속적 성장과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겠지만 63년 전 도요타 자동차 공장을 유치하고 발전시켜온 그 정신만은 계속 이어가야 한다"고 했다.
매머드 기업 하나에 의존하는 도시 구조가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를 도요타시에서 발견하게 된다. 물론 도요타가 올해 흑자로 돌아선 것에 미뤄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예전만 한 위세를 되찾을지는 의문이다. 나고야 메이조대 경제학부 시부이 야스히로(50) 교수는 "기술력의 도요타 신화가 무너진 것은 너무나 충격적이지만 한 번쯤 거쳐야 할 시련기로 본다"면서도 "3년 전처럼 도요타가 독주하는 상황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도요타시도 동반자인 기업과 운명을 같이할 수밖에 없다. 이곳 일본에서 경북의 포항이나 구미도 기업의 부침에 흥망성쇠가 달려 있을 수 있다는 괜한 걱정을 해본다.
일본 도요타시에서 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아이치현 도요타시 현황(2009년 말 현재)
- 인구 42만3천명
- 제조업(자동차산업) 종사자 수 11만240명(9만1천835명)
- 1938년 코로모정(町)에 도요타자동차공업 공장 완공, 1951년 코로모시 승격, 1959년 도요타시 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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