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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를 구미 당기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13)해평면 낙산1리 老-老돌보미들

"도시락 전해주고 나올 때 구십 노인이 고맙다고 하면 그만 눈물이 핑 도

"지팡이 짚고 구루마 끌고 두 마실 돌아 도시락 배달하고 나올 때 구십 노인네가'고맙다'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그냥 핑 도는 기라.""봉사하고 나면 오히려 내가 기분 좋아지제."

구미시 해평면 낙산1리 마을경로당에서 만난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박주영(64.사진 왼쪽부터), 박석분(75), 장연춘(69), 권준택(71) 할머니들은 소위'노노 돌보미'(老-老care) 자원봉사자들이다. 자신들도 농사일 하랴, 집안 살림 하랴, 어르신 일자리로 구한 문화재 관리일 하랴, 바쁘고 힘들지만 3년 전부터 한 가지 일을 더 하고 있다.

50여명 마을주민의 절반 정도인 홀몸 노인 중 몸이 불편하거나 고령으로 거동이 힘든 노인의 돌보미 자원봉사로 나선 것. 지금은 낙산1리 대문간 마을과 사귀점 마을에 사는 90대 어르신 4명 등 8명에게 구미 한 단체서 제공하는 도시락을 전해주고 있다.

매주 토요일 4명이 당번을 정해 두 마을을 오가며 방문하는데, 반찬'도시락 전달은 물론 안부를 묻고 말벗도 되면서 노년의 외로움을 함께 나눈다.

우연하게 자원봉사에 나서게 되면서 이들은 또 매주 한차례 열리는'인문학 강의'에도 빠지지 않는다. 어릴 적 귀동냥으로 들었던 콩쥐팥쥐와 같은 이야기에서부터 세상 돌아가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가난으로 못 다한 배움의 한을 털어내고 있다. 여기에서 들은 이야기들은 봉사 나가는 어르신 8명에게도 고스란히 전한다.

낙산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박석분 할머니는 그동안 강의를 한 번도 빠뜨리지 않아 개근상까지 받았단다. "집 밖에서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영감에게 감사하다고 했지.' 당신 최고!'라면서 영감의 기를 세워준기라."

의성 비안에서 시집왔다는 장연춘 할머니는, 마을 경로당에서 출발해 먼 곳은 1km가 넘는 집까지 두 마을을 오가면서 도시락 8개를 모두 전달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며 솔직히 힘에 부치기도 한단다.

그래서 지팡이도 짚고 도시락을 손으로 끄는 장바구니(할머니들은 수레를 뜻하는'구루마'라고 불렀다)에 담아 전하고 있다며'편리한 것이 뭐 없느냐'고 해결책을 되묻는다.

의성이 고향인 박주영 할머니와 구미 도개에서 태어난 권준택 할머니는'배달 없을 땐 밤에 불이 켜졌는지,꺼졌는지 불빛을 보면서 안부를 확인한다'며 여덟 분의 안부가 늘 걱정이 된단다.

할머니들의 마음 씀씀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도시락을 만드는 봉사단체에 직접 수확한 농산물들을 식재료로 내놓기도 한다. 매주 140개의 도시락·반찬을 구미 8곳 읍'면'동에 전달하느라 연간 2천만 원의 비용이 드는지라 식재료 기증은 적잖은 부담을 덜어준다.

이에 봉사단체는 할머니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도시 소비자들에게 팔아주며 보답하는 등 도농상생의 새 장을 열어가고 있다. 지난달부터는 할머니들이 지은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판매하는 것을 시험 중이란다. 할머니들의 노년 자원봉사가 농촌살리기로 연결되는 실험무대가 되고 있는 셈이다.

바쁜 농사철 어렵게 한자리에 모인 할머니들은"우리 이야기가 신문에 나온다꼬? 이게 뭔 이야기가 된다꼬!"하면서도 쑥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할머니들은 또 도시락 배달 때 가끔 오토바이로 태워줘 고맙다며 김석태(56) 이장의 공도 잊지 않았다.

"봉사로 3년째 함께 행동하고 다니다보니 이젠 따로 다닐 수 없을 정도"라는 할머니들의 웃음이 너무 행복스러워 보였다. "몸이 움직일 수 있을 때까정 계속 해야제."할머니들은 진정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이야기가 진실임을 일깨워줬다.

일흔 무렵의 할머니들이 아흔의 노인들에게 전하는 봉사의 모습은 황혼에 보여주는 가장 값지고 아름다운 동행(同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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