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부처 이전을 백지화하는 대신 세종시를 교육'과학이 중심이 되는 경제도시로 만들겠다는 이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이 결국 폐기됐다. 6'2지방선거에서 심판을 받은 데 이어 국회 부결을 거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다. 10개월 동안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세종시 수정안이 '숨을 거두는 것'을 지켜보며 필자의 소회는 각별하다. 논설위원으로 일하며 세종시 원안 수정으로 대구경북 등 다른 지방에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요지의 사설'칼럼을 40여 편가량 썼기에 세종시 수정안 폐기를 두고 다시금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세종시 수정안 전도사로 일컬어지는 정운찬 국무총리는 그저께 열린 마지막 세종시 민관합동위원회에서 세종시 수정안은 역사가 충정으로 기억할 것이란 요지의 발언을 했다. 국회 본회의에서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된 직후에 밝혔던 세종시 수정에 대한 자신의 소신에 변함이 없음을 다시 강조한 것이다.
여기에서 세종시 수정에 대한 총리의 소신이 맞느냐, 틀리느냐를 더 이상 언급할 생각은 없다. 다만 세종시 문제를 두고 국론이 분열되고 국력을 소진하는 우(愚)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정 총리를 비롯한 세종시 원안 수정을 강하게 밀어붙였던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고사성어가 하나 있다. 바로 '중심성성'(衆心成城)이다. 중국 주(周)나라 경왕(景王)이 돈을 주조하는 원료가 부족하자 화폐 개혁을 하도록 명을 내렸다. 그리고 왕은 백성들 수중에 있는 못 쓰는 돈을 회수해 그것으로 종(鐘)을 만들고자 했다. 음악 방면의 한 관원이 종이 만들어지기 전에 종소리가 좋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백성들의 피땀 어린 돈으로 만든 종이기에 그 종소리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귀에 거슬릴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면서 '여러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협력하면 견고한 장성을 축조할 수 있다'는 뜻의 중심성성을 끄집어냈다.
세종시 수정안이 폐기된 근본적 이유 또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총리를 비롯한 세종시 수정론자들은 여러 사람의 마음과 협력을 얻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일을 급하게 추진하다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더 나아가 국민(衆) 가운데 서울이나 경기 등 수도권 사람들의 의견에만 귀를 기울인 반면 지방 사람들의 목소리와 마음은 철저하게 외면한 채 세종시 원안 수정을 밑어붙인 탓에 실패했다고도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은 서울이나 경기도에 사는 2천여만 수도권 사람들만의 나라가 결코 아니다.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지방에 사는 2천여만 명도 엄연히 이 나라의 국민이다. 세종시 수정에 따른 피해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그냥 손을 놓고 있을 지방 사람들은 한 사람도 없다. 그런 마음이 하나둘 모여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참패란 결과를 낳은 것이다.
세종시 수정을 둘러싼 논란은 이 나라 지방 사람들에게 큰 교훈을 안겨줬다. 지방이란 존재를 새삼 되돌아보게 했고, 어떻게 하면 지방이 어려움을 헤치고 살아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게 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깨달음을 얻은 곳이 바로 대구경북이다.
서울, 경기에 국한된 수도권이 충청이나 강원까지 확대돼 '공룡 수도권'이 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대구경북이 살 수 있는 길은 명확하다. 대구경북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 살길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이 지역 출신으로 서울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들만 믿어서는 생존하기 힘들다. 되레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대구경북이 사느냐 죽느냐를 결정하는 열쇠는 우리들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이다.
비록 세종시 수정안은 폐기됐지만 세종시는 여전히 대구경북에 위협적인 존재다. 행정부처 이전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세종시가 우리 지역의 발전에 걸림돌이 될 우려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세종시가 주축이 돼 대전, 오송, 오창, 원주를 잇는 발전 축(軸)이 형성된다면 대구경북에 수도권에 이은 또 하나의 잿빛 그림자가 드리워지게 되는 것이다. 세종시 문제로부터 얻은 깨달음과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지역 발전에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만 대구경북은 희미하게나마 살길을 찾을 수 있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세종시 문제가 이 지역을 다시 덮쳐 대구경북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것이다.
사회2부장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