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평균의 법칙

십여 년 전 화재 후 새 삶을 시작할 마음으로 그림 동화를 그리면서 내 작업을 알리기 위해 동화달력을 만들어 무료배포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사업화하기 위해 아침이면 가방에 달력을 넣고 병원이며 회사며 닥치는 대로 뛰어다녔다. 삼 분간의 미팅을 위해 두세 시간을 기다리는 일은 부지기수였고, 그럼에도 담당자를 만나기는 힘들었다. 어렵게 약속 날짜를 잡고 서울로 가던 날 담당자는 휴무였고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대답은 "서울까지 올 줄 몰라서 그냥 약속한 건데 뜻밖이다, 이 달력은 우리와 방향이 맞지 않으니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기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게 나다. 선생님 소리 들으며 대접받던 내가 아니라, 종일 발품을 팔고 악착같이 애를 써도 번번이 거절당하고 있는 게 나다. 서른 살 나이에 빚더미에 올라 수많은 거절에 자존심 상해 눈물 흘리고 있는 게 지금의 나고 내 상황이다. 오늘이 억울하다면 내 상품을 최고로 만들어 거절당하지 않게 만들면 된다. 그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

'평균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한번 성공하려면 스무 번의 실패를 거쳐야 한다는 말이다. 삼 년 만에 어렵게 서점에 넣은 달력이 그 해 단 네 권 판매되었다. 300개 업체에 의사를 타진해 단 한 군데서 연락을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그 시도가 없었다면 그 한 건의 계약은 성사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 평균의 법칙을 체험하게 된 후 거절당하는 것은 자연스러워졌다. 열아홉 번의 거절은 스무번 째의 성사를 맞이하기 위한 계단처럼 여겨졌고 '이제 열 번만 더 거절당하면 되겠구나' 하고 낙관하는 여유까지 생겼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이제 단골 고객이 많아져 미약하나마 꿈꾸어 온 목표들에 한발 더 다가서게 되었다.

정말이지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 한 번도 도전하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부지런하게 몸을 움직일 때 그만큼의 보답이 돌아온다는 이치는 가진 것 없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귀중한 믿음인지, 세상물정 모르던 내가 세상에 자신 있어진 건 그런 이치 때문이었다.

우리는 아쉬운 상황에 대해 이런저런 이유를 대곤 하지만 어제 좋았던 내 모습도 내가 아니고, 내일 꿈꾸는 내 모습도 내가 아니다. 현재의 상황이 아무리 싫어도 받아들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면 지금 걷는 걸음에 최선을 다하고 내일 다른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으면 된다.

김계희<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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