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 대의원 혁명만이 한나라당이 살 길

한나라당 새 대표를 선출하기 위한 전당대회의 막이 올랐다. 13명의 후보들이 쇄신, 화합, 세대교체 등을 내세우며 당권 경쟁에 돌입했다. 이번에 선출되는 새 대표는 6'2지방선거 참패의 후유증을 수습하고 2012년 총선 공천과 차기 대선을 관리해야 할 막중한 권한과 책임을 지고 있다.

이런 막중한 책임이 부여된 새 대표를 뽑는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애석하게도 김빠진 사이다처럼 밋밋하고 전혀 국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당을 실질적으로 상징하고 국민들과 정서적 일체감을 갖고 있는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들이 불참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번 전당대회는 박근혜, 이재오, 정몽준 등 빅3 거물들이 불출마한 가운데 고만고만한 후보들이 난립하면서 차기 총선에 대비하기 위한 '마이너 리그'로 전락했다.

문제는 한나라당이 6'2지방선거에서 표출된 민심을 무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한나라당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보면 2012년 대선에서 다시 야당에게 정권을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한 이유는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이 주된 요인이었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한나라당이 정권 교체 이후에도 허구한 날 친이-친박 간에 싸움만 하면서 국민들의 혐오감을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방선거 직후 한국정책과학연구원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가장 싫어하는 정당' 비율에서는 한나라당(32.7%)이 민주당(17.1%) 보다 2배 정도 많았다. 더구나 0점(아주 조금 싫어함)에서 10점(아주 많이 싫어함)사이의 혐오 점수에서 한나라당은 7.23점으로 민주당(5.64점)에 비해 훨씬 높았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했을 당시 혐오점수는 7.30점으로 최근의 한나라당 혐오점수와 비슷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야당 후보를 지지한 이유는 다음 중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가장 많은 38.5%가 '대통령이 일을 잘 못해서'라고 응답했고 그 다음으로 '여당이 싫어서'가 20.0%였다. 이런 조사 결과가 주는 함의는 한나라당 쇄신의 핵심은 기존의 한나라당 혐오감을 불식시키고 이를 위한 실천적 대안으로 계파를 해체하고 보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실질적인 당내 통합을 이뤄내는 것이다.

그런데, 변화와 쇄신을 기치로 내건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이런 민심에 역행하면서 정반대로 치닫고 있다. 너도나도 이심(李心), 박심(朴心)을 들먹이며 저질을 향한 고공행진만 하고 있다. "내가 대통령을 직접 만났다"고 떠들며 다니는 후보가 있는가 하면 "박 전 대표가 내 사무실에 먼저 왔다"는 유치한 말을 버젓이 하고 있다. 결국 한나라당의 전당대회 모습은 국민은 없고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채 계파 정치라는 자리에서 쳇바퀴 돌고 있을 뿐이다.

이런 뒤틀리고 비뚤어진 전당대회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대의원들의 혁명뿐이다. 2001년 4월 일본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비주류의 대표주자로서 '탈파벌'과 '개혁'을 내세운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선출됐다. 자민당 총재선거는 지방당원이 참여하는 예비선거 141표, 중의원과 참의원이 참여하는 본선거 346표를 합산해 과반을 넘은 후보가 당선된다. 고이즈미 후보는 과반수를 웃도는 298표를 획득해 155표를 얻은 주류의 하시모토 류타로 후보를 누르고 결선투표 없이 총재로 당선됐다. 구태의연한 자민당 체질로는 생각하기 힘든 파격적인 언동으로 일본 정가에서 '괴짜 정치인'으로 불렸던 고이즈미가 당선된 것은 본선거에 앞서 지방당원을 상대로 실시한 예비선거에서 '대의원의 반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지방 대의원들이 계파 투표보다는 자민당을 살릴 수 있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지방 당원들은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무계파 차세대 정치인 고이즈미를 압도적으로 지지해 자민당의 미래로 받아들였다.

한나라당에 진정 필요한 것은 이와 같은 도전 정신과 창조적 파괴이다. 대의원들이 진정 한나라당을 사랑하고 정권 재창출의 미래를 원한다면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 그동안 한나라당을 혐오스러운 정당으로 만드는 데 앞장섰던 사람, 이심-박심 들먹이며 호가호위했던 사람, 정책과 비전 없이 지역주의와 색깔론에 몰두했던 사람들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정확하고 철저하게 응징해야 할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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