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필름통] '렛미인'리메이크

아스팔트까지 녹이는 대구의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무더위를 시원하게 날려주는 영화는 역시 호러영화다. 통상 호러영화는 끔찍한 살육의 현장을 그린다. 흔들리는 감정이 없이 살인자는 칼을 휘두르고, 희생자는 그 칼날 위에서 춤을 추다 고통스럽게 죽어간다. 공포 외에는 그 어디에도 인간의 심상이 파고들 여지가 없다.

아주 특이한 공포영화를 소개한다면 스웨덴의 '렛미인'(2008년)이란 영화일 것이다. 이 영화는 스웨덴의 토마스 알프레드슨이 2004년 유럽에서 출간된 욘 린퀴비스트의 소설 '렛 더 롸잇 원 인'(Let the right one in)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1982년 스웨덴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12세'왕따' 소년과 뱀파이어 소녀와의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학교 친구들의 괴롭힘에 시달리는 12세 소년 오스칼(카레 헤레브란트). 늘 칼로 애꿎은 나무에만 화풀이를 할 뿐이다. 눈 내리던 어느 날 밤. 창백한 얼굴을 한 수수께끼 소녀 이엘리(리나 레안데르손)를 만난다.

그런데 소녀가 마을에 온 이후 이상한 일들이 생긴다. 피가 빠진 시체들이 계속 발견된다. 몇몇은 뱀파이어의 공격도 받는다. 오스칼은 그녀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눈치챈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오스칼의 사랑은 깊어 간다.

'렛미인'은 여느 뱀파이어 영화와는 다르다. 남루하고, 가냘프고, 슬픈 운명의 어린 뱀파이어가 백혈병에 걸린 듯 애처로운 모습으로 나온다. 제목은 '들어가도 돼?'라는 뜻이다. 이엘리는 늘 창문에 붙어서 '들어가도 되느냐?'고 허락을 구한다. 뱀파이어가 인간의 공간에 들어가려면 초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원작자의 독특한 설정이다.

하얀 눈 위에 뿌려지는 붉은 피, 창백한 이엘리의 입가에 묻는 피는 슬프게도 아름다운 이 영화의 이미지이다. 그러나 한 꺼풀 벗기고 들어가면 가슴 시린 사랑을 느낄 수 있다. 호러의 형식을 빌린 소년과 소녀의 사랑 이야기다. '가장 아름다운 호러' '내 생애 가장 서정적인 호러'라는 해외 평단의 평가가 적절해 보이는 영화다.

'렛미인'은 전 세계 호러 영화에 상큼한 충격을 주었다. 화려한 편집도 없고 그 흔한 디지털 사운드 효과도 없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나직한 가운데 뚝뚝 떨어지는 피 소리는 전율할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렛미인'이 올해 가을 개봉 예정으로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되고 있다. 이색 SF공포영화 '클로버필드'의 맷 리브스 감독이 연출하고, 소년으로는 '더 로드'의 코디 스밋 맥피가 출연한다. 가장 중요한 캐릭터인 소녀 역은 '킥 애스:영웅의 탄생'에서 민디로 나온 클로이 모레츠가 맡았다. '킥 애스' 한 편으로 전 세계 영화팬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13세 소녀 배우다. 놀라운 착상의 '클로버필드'의 감독이라니 벌써 기대가 된다.

김중기 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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