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지난 6월 임시국회에서 불법 내사 의혹을 제기했던 민주당은 이후 영일·포항지역 인사→선진연대→청와대로 전선을 확대하며 정부·여당에 융단 폭격을 퍼붓고 있다. 반면 여권은 14일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계파 간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오히려 논란 증폭에 일조하고 있어 조기 레임덕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 와중에 대통령의 고향인 대구경북 출신들은 부도덕한 집단으로 내몰리고 있다.
◆점입가경(漸入佳境)
민주당의 공세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마디로 점입가경이다. 발단은 지난 6월 21일 국회 정무위였다. 이날 민주당 신건, 이성남 의원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비방하는 동영상을 개인 블로그에 올린 한 시민을 내사하고 사무실을 불법 압수수색했다"고 주장했다. 신 의원은 앞서 지난해 10월 총리실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인규 지원관이 같은 포항 출신인 청와대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에게 모든 활동 내용을 보고해왔다고 주장한 바 있다.
신 의원 폭로 이후에도 짤막한 논평만 냈던 민주당은 지난달 28일 MBC PD수첩이 불법내사 의혹을 다룬 '대한민국 정부는 왜 나를 사찰했나' 편을 방송한 후 본격 공세에 나섰다. 이달 5일에는 신건 의원을 위원장으로 한 '영포게이트 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국정조사 및 특검 도입을 촉구했다. 6일에는 총리실, 7일에는 청와대를 항의방문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칼끝은 개인 비리에서 특정지역·모임 커넥션, 정권 차원의 부도덕성으로 점차 옮겨가는 양상이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7일 기자들을 만나 "이번 일은 (대통령의 측근인)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이 청와대 개편안을 작성해 일어난 일"이라며 "청와대나 한나라당에서조차 '박 차장의 횡포를 민주당이 막아달라'는 제보가 오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외곽지원조직인 선진국민연대의 공기업·금융계 인사 압력 의혹이 재탕삼탕되는 것도 같은 흐름이다.
◆성동격서(聲東擊西)
민주당은 이번 사건에 대해 '영포게이트'라 명명했다. 본질은 '정부의 민간인 불법 내사'이지만 굳이 영일과 포항이란 지명을 앞세운 점에서 민주당의 의중이 드러난다.
민주당의 이 같은 전술은 다목적의 포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6·2지방선거에서 패배한 정부·여당에 '권력 남용'이란 오명을 씌워 코앞으로 다가온 7·28 재보선에서도 연승 가도를 달리겠다는 것이다. 또 이인규 지원관의 배후라며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으로 이어지는 포항 인맥을 집중부각시킴으로써 정권 도덕성에도 치명타를 입히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사실 이런 상황은 현 정부 초기인 지난 2008년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이 제기한 '권력 사유화' 논란으로 이미 불거진 바 있다.
하지만 민주당이 겨누는 최종 탄착점은 정권 재창출이란 시각이 많다. '측근 관리에 실패한 대통령'이란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심는 한편 여권의 분열을 활용, 집권 3년차에 현 정부의 레임덕을 조기 가속화시켜 결국 2012년 총선·대선 승리로 이어가겠다는 계산으로 읽힌다.
여권 한 관계자는 "민주당의 의도대로 과도한 권력 경쟁이 벌어진다면 지난 정권에서 본 것처럼 여권은 공멸하고 말 것"이라며 "그 폭발력을 가늠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동상이몽(同床異夢)
이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해 "어설픈 사람들이 권력을 남용하는 사례가 간혹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정권에서 한나라당이 여권 공격에 많이 썼던 '아마추어리즘'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기대와 달리 '영포 라인' 논란은 14일 치러지는 한나라당 전당대회에도 상당한 파문을 던지고 있다. 친박계와 소장파·중도파 후보들은 특정지역 출신자들의 권력 독점과 전횡을 문제삼으며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나섰다. 중도파 후보인 남경필 의원은 "필요할 경우 국회 국정조사도 해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친이계 안상수 의원은 "진상조사를 하고 있는 만큼 그 결과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며 선을 긋고 나섰다. 이번 사건에 따른 대의원 표심 변화를 두고도 셈법이 각각 다르다. 서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며 자신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건이 여권의 인적 쇄신을 앞두고 본격 제기됐다는 점에서 권력 핵심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있는 일부 여당 내 그룹의 '방조'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누군가는 어차피 권력을 차지하는 만큼 경쟁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적과도 손을 잡을 수 있다는 논리다. 한때 유력했던 박영준 차장의 청와대 컴백설은 이에 따라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사면초가(四面楚歌)
이 대통령은 사면초가에 몰린 셈이 됐다. 지난해부터 1년을 끌어온 세종시 수정안이 결국 부결됐고, 중간심판 성격이었던 지방선거에서도 예상 외의 저조한 성적표를 받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향 사람' 문제까지 정쟁의 대상이 되면서 여의도에 대한 불신이 더 깊어졌을 수도 있다.
이 대통령은 다음달 임기 반환점을 맞는다. 하지만 이번 위기의 극복 여부에 따라 벌써 레임덕을 맞을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청와대 안팎에서 나온다. 집권 후반기도 아닌 중반기란 점에서 더욱 위기다.
특히 지방선거의 패배가 미네르바 구속 사건, 촛불집회 참가자 입건, 서울광장 폐쇄, 일부 방송인 퇴출 등 권위주의적 이미지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많은 만큼 비슷한 유형으로 분류되는 이번 사건은 대형 악재가 될 가능성도 있다. 더욱이 이 사건은 세종시나 4대강처럼 가치 판단에 따른 찬반 논란도 제기하기 힘들다.
대구경북 출신 여권 한 관계자는 이 같은 점에서 '구원투수론'을 제기했다. 상황이 9회 말 투아웃 만루 위기인데, 어차피 구원투수를 올리려면 실력으로 선택해야지 배경으로 선택해선 안 된다는 논리다. 뒤집어 말하면 야당의 공세에 밀려 의도적으로 대구경북지역을 이번 인사에서 배제한다면 역차별의 악순환에 빠진다는 것이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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