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홀릭의 세계] 빠져들수록 즐거워진다 유쾌한 중독자들

'인생 뭐 별거 있어? 즐겁게 살다 가면 그만이지. 근데 돈도 없고 시간도 없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이르다.'

이런 생각을 한다면 다양한 홀릭(holic)의 세계에 빠져 보자. 누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자신의 취미를 제대로 살려 감미로운 홀릭의 세계를 맛볼 수 있다. 최근 일밖에 모르던 한국인들이 점점 홀릭의 세계에 심취하고 있다. 대한민국 전역에 홀릭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무궁무진한 홀릭의 세계

홀릭의 세계는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넓다. 생활 속의 모든 취미와 대상이 관심과 애정만 가진다면 홀릭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양한 와인을 맛보고, 이색 요리를 스스로 만드는 데 빠져들면서 새로운 즐거움을 얻고 있다.

지난해 네이버 대표카페로 선정된 캠핑 퍼스트 회원 수는 이미 7만 명이 넘었다. 지역별로 공동 캠핑 행사를 열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고 계절을 가리지 않고 갑갑한 도시를 떠나 캠핑을 즐기고 있다. 캠핑 홀릭에 빠진 직장인 김규정(27) 씨는 "취미 생활로 시작한 캠핑이 이제는 중독(?) 수준에 이르러 직장 생활보다 중요하게 돼 버렸다. 한달에 캠핑을 위해 들어가는 경비만 해도 30만원이 훌쩍 넘고 있다"고 했다.

축구광인 공무원 박희정(40) 씨는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 시청이 단순한 취미를 떠나 삶의 이유이자 목적이 되어 버린다. 월드컵이 열리는 기간 동안 휴가를 내고 응원전이 열리는 곳을 찾아다니며 목청껏 '대한민국'을 외친다. 월드컵 출전 국가의 대진표와 선수 기록을 달달 외우는 것은 기본. 이번 월드컵 기간 동안에도 한국대표팀 유니폼은 박 씨의 일상복이 되어 버렸다.

홀릭의 세계에는 남녀 구별이 따로 없다. 얼마 전 여자친구와 함께 영화 '섹스 앤 더 시티'를 본 후 슈어홀릭에 빠져버린 이정훈(30) 씨는 길거리를 가다 구두 가게를 쉽사리 지나치지 못하게 됐다. 맘에 드는 구두가 있는지 구두 가게에 들러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이다. 이씨는 "친구들로부터 남자가 구두에 관심을 갖는다며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나만의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는 구두를 찾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다"고 했다.

◆뜨는 홀릭

홀릭의 세계에도 흥망성쇠가 있다. 시대상황이나 유행, 주머니 사정, 계절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시들해지는 분야가 있는 반면 각광받는 홀릭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골드미스들이 늘어나면서 자신만을 위해 소비하는 포미 홀릭커들이 급증하고 있다. 대기업 10년차인 박진희(37'여) 씨는 월급의 대부분을 자신을 가꾸거나 삶의 가치를 높이는 데 쓴다. 입는 옷부터 가방, 화장품, 심지어 음료수까지 친환경 소재나 천연성분 등 웰빙 제품이 아니면 아예 사지를 않는다. 그는 "단순히 명품만을 좇는 이른바 '된장녀'는 아니다. 나 자신이 소중하기 때문에 비용을 좀 더 지불하더라도 고급 제품을 구입해 사용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경기침체의 그늘이 짙어지면서 보다 저렴하게 자신의 취미를 즐길 수 있는 홀릭커들도 늘고 있다. 특히 휴가철을 맞아 산과 바다로 떠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집안에서 온라인 게임과 비디오 게임에 푹 빠져드는 디지털 홀릭이 단기간 급증하고 있다. 게임 세계에서는 산과 바다로 떠나 모험을 펼치는 것이 가능하고, 무더위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스포츠를 즐길 수도 있으며, 총싸움이나 레이싱 등 흥미진진한 경험도 할 수 있다. 여유가 생겨 휴가를 떠나더라도 이들에게 준비물 1순위는 당연히 게임기다.

뭐니 뭐니 해도 최근 가장 사랑받고 있는 것은 트위터(twitter) 홀릭의 세계. 최근 카페 등과 같은 그룹 커뮤니티 서비스의 성장세가 시들해지고 미니홈피, 블로그 등과 같은 개인 미디어 서비스가 크게 인기를 얻으면서 1인 미디어인 트위터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트위터는 140자 이내 단문 메시지를 통해 실시간으로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일종의 미니블로그로 우리말로 '지저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트위터 이용자들은 140자 이내의 글자를 통해 쉴 새 없이 자신들의 생각을 주고받으며 트위터 홀릭의 세계를 즐기고 있다.

자전거 홀릭도 인기다. 카페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cafe.naver.com/bikecity.cafe)에 등록된 회원수는 30만 명에 육박하고 있고, 하루 방문자 수만 2천여 명이다. 이 같은 성장에는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녹색성장전략도 한몫했다.

각 지자체에서도 자전거 도로를 만드는 등 잇따라 자전거 육성책을 내놓으면서 급격히 세를 넓혀나가고 있다. 대구에서도 지난해 서구청에서 자전거 육성 홍보단을 만들면서 관련 자전거 홀릭커들이 늘어나고 있다.

자전거로 매일 출퇴근한다는 직장인 이정술(40) 씨는 "3대의 자전거를 베란다에 모셔놓고 하루 20㎞의 출퇴근 길을 자전거와 함께하고 있다"며 "자전거가 느리고 위험해 보여도 안전장비를 구비하고 작동법을 제대로 익히기만 하면 평균시속 20㎞ 이상의 속도로 출퇴근이 가능해 자가용을 능가한다"고 자랑했다.

◆지는 홀릭

자전거 홀릭에 빠진 사람들이 늘고 있는 대신 몇 년 전만 해도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인라인 스케이트는 그 인기가 빠르게 식고 있다. 작은 바퀴에 빠진 마니아들이 보다 큰 바퀴를 선호하게 된 셈이다. 한때 대구 두류공원이나 월드컵 공원을 밤늦게 줄지어 다니던 인라인 스케이트 동호회 회원들의 모습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인라인 스케이트에 푹 빠져 동호회 회원과 결혼까지 했던 김미은(36'여) 씨는 "몇 년 전부터 동호회 활동을 그만뒀다. 많은 동호회 회원들이 자전거 등으로 옮겨간 것으로 안다. 그나마 30, 40대 일부 애호가들이 인라인 스케이트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컴퓨터, 게임, 캐릭터 등으로 확대되면서 지난 몇 년간 청소년 대표 문화로 자리 잡은 코스프레도 최근 인기가 주춤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보수화 바람이 불면서 비교적 자유분방한 코스프레 활동이 위축되고 있는데다 분장 등에 드는 비용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다만 사이버 동호회 회원들은 여전히 만화, 게임 캐릭터를 주제로 선보이는 화려한 의상과 볼거리로 독특한 코스프레 홀릭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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