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에서 근현대사를 오랫동안 가르쳤고, 김대중 시대에 통일고문으로, 노무현 시대에는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한 역사학자 강만길 선생의 자서전 『역사가의 시간』이 출간됐다. 역사의 격동기를 산 노학자의 삶은 어떤 것이었을지 궁금해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강만길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소년시절에 해방과 전쟁을 겪었으며, 국사편찬위원회에 근무하며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4'19와 5'16 군사쿠데타를 목격했다. 선생은 소년시절 그 흔한 사회주의 계열의 독서회에도 참가하지 않았고, '우연히' 입학한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며 학문을 닦던 역사학도였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에 접어들어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면모를 뚜렷이 하게 된다.
선생은 조선시대 서울의 상업기관인 시전, 수공업자인 장인, 조선 후기 상업자본의 발달 등의 주제로 학위논문을 쓸 정도로 조선시대 상공업 발전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국민의 역사의식을 높이는 일이 시급하다는 생각으로 『한국근대사』와 『한국현대사』를 저술했으며,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이 간행된 후 분단시대 사학을 극복할 수 있는 글들을 썼고, 그것이 곧 직'간접적으로 군사독재를 비판하는 글들이 됐다.
일제시대 빈민생활사 연구를 통해 일본의 조선 지배정책으로 인해 생겨난 3대 빈민, 즉 농촌 춘궁민과 화전민 그리고 도시지역 토막민의 생활상을 밝힌 논문집을 내기도 했다. 일본은 토지조사사업 등으로 조선 농민들을 농촌에서 쫓아냈으나 당시 일본 자본주의의 수준이 그들을 공장노동자로 수용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같은 3대 빈민층이 형성되었음을 논증한 것이다. 당시 후진 자본주의 국가였던 일본의 조선에 대한 수탈은 어느 식민지에서보다 가혹한 것이었다. 사실이 그러한데도 한일협정 교섭과정에서 일본의 강점이 조선 사람들에게 일정하게나마 이익을 준 것처럼 망언하는 일본대표가 있더니, 최근에는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이 일본사회뿐 아니라 우리 사회 일각에서도 들먹여진다며 통탄한다.
우리 역사학의 순수실증주의도 비판한다. 우리 근대역사학은 국권을 잃어가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분단시대라는 불행한 시절에 성립되고 발전하기 시작했기에, 식민지배권력과 민족분단권력쪽의 탄압을 받지 않고 유지되기 위해 아카데미즘이란 이름 아래 순수실증주의로 가려진 장벽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역사학이 순수실증주의에만 침전하게 되면 일제강점기나 분단시대를 객관적으로 연구하거나 비판적으로 서술하는 근대사나 현대사는 기피되기 쉬우며, 따라서 학문의 현재성과 대중성을 잃게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선생은 해방 10여년 후에 외세침략시기 침략자 쪽에 몸담았던 인물이 중심이 된 군사독재정권이 성립되었다면, 그리고 그 사회가 비문명사회가 아니고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문화민족사회라면 그것은 역사의 오점이 아닐까라고 묻는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던 역사가 다소 주춤거릴 때도 있기 마련이지만 '역사는 결국 가야 할 방향으로 가야 할 만큼 가고 만다'는 굳은 믿음을 보여준다. 1978년 박정희 정권의 국민교육헌장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대학교수 성명 동참 건으로 중앙정보부 남산분실의 지하 취조실로 연행된 것을 시작으로, 전두환 정권에 의해 해직교수가 되고, 복직 후 학문방향이 중세사 전공에서 근현대사 전공으로 바뀐 것, 6'15남북공동선언에 동참하고 남북역사학자협의회에 참여한 것,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원회에서 활동한 이야기 등을 옛말 들려주듯 구수하게 풀어놓는다.
(새벗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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