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내보낼 작품을 선별하다 정물화 한 점에 시선이 머문다. 애정을 쏟았던 작품인데 아무래도 바깥 나들이가 힘들 것 같다. 배경색의 변화를 시도하다 보니 화병에 꽂힌 꽃보다 배경이 더 두드러져 화면이 요란스럽다. 풍경화는 주로 원근감으로 화면을 살려내는 것에 비해 정물화는 적절한 구도와 배경색으로 주제를 살려낸다. 배경이란 주제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 제 역할인데 배경의 색이 주제보다 더 강하게 다가와 주객이 전도되어 버린 셈이다.
사람도 각자의 색을 지니고 있다. 유난히 그 색을 드러내고자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있는 듯 없는 듯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존재감이 희미한 것도 문제지만 장소나 상황에 따라 자신이 서야 할 위치와 역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유난히 자신을 드러내고자 애쓰는 이를 보면 딱한 마음이 앞선다.
내 주변에도 톡톡 튀는 색깔로 어느 장소에서든 지나치게 자신을 드러내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친구가 있다. 그녀가 참석하고 난 자리에는 언제나 후문이 좋지 않다. 경우에 넘치는 행동을 해서 모두들 어이없어 하는 표정인데도 전혀 의식하지 않고 객이 주인 노릇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녀의 성격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녀에게 조금만 자기 색을 낮추면 좋겠다고 일러주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내 좁은 가슴으로 더 이상 감당하기가 힘들어졌다. 지천명을 넘긴 삶의 경로를 보더라도 자신이 배경이 되어야 할 자리인지, 주제가 되어야 할 자리인지 그 정도는 알 수 있을 텐데 안타깝게 바라볼 뿐이다. 각자가 자기 몫의 할 일이 있듯 배경은 배경으로 머물러 있을 때가 더 아름답다. 한걸음 물러서 있는 배경이라 해서 그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동양화에서는 주제만 살리고 배경은 흰 여백으로 남겨둔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비어 있는 '허' 공간을 '실' 공간을 위한 쓰임이라 했다.
배경이 주제보다 더 두드러지고자 할 때 화면 안에서 조화로움은 사라지고 불협화음이 생긴다. 주제와 배경은 서로 구분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각자의 역할로서 한 몸을 이루어 작품이 탄생된다. 각자의 사람이 어느 자리에 머물러 어떤 색을 유지해야 하는지는 어려운 과제이다. 자신을 너무 감추면 존재감이 미미해질 것이고 너무 드러내면 욕을 먹을 수 있기에 적절한 처신이 쉽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주목받고 싶어하는 심리가 있다지만 그 역할 분담은 스스로 생각해 볼 일이다.
화가 노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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