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후퇴密令 내린 김일성, 평양방송 통해 격문 방송

"살 한톨 남기지 말고 북으로 반출 반동분자는 무자비하게 처단하라"

인천상륙 작전에 성공한 뒤 서울을 공략중인 국군.
인천상륙 작전에 성공한 뒤 서울을 공략중인 국군.

북한 공산군이 전투 장비까지 버리고 창황히 쫓기게 되자 김일성은 뒤늦게 김책 전선사령관에게 38선 이북으로 후퇴하라는 밀령(密令)을 내리는 한편 평양방송을 통해 다음과 같은 공개적인 격문을 방송한다.

"조선인민군 전사·군관 동무들! 침략자를 격파하기 위하여 더욱 더 용감무쌍하게 싸워라. 유리한 계선을 선취(先取)하여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 바쳐 현재 지키고 있는 참호·진지·마을·도시를 사수하라.

부득이 후퇴하지 않으면 안 될 경우 모든 방어시설·건물·교량·비행장·항구 등의 군용시설을 파괴하고 적 후방에 처졌을 때에는 빨치산으로 변신하여 적의 지휘부·병참기지·야영소·수비대·포차량 집결소· 격납고 등을 모조리 습격, 파괴하라. 내무성 군대는 반동분자·월남분자·간첩 등을 제 때에 적발하여 무자비하게 처단하거나 38선 이북으로 연행하라.

공화국 전체 인민들은 전후방에 관계없이 식량·약품 등으로 인민군대를 돕고 부득이 퇴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경우 모든 물자를 이북으로 반출하라. 모든 기관차, 트럭, 한 톨의 쌀과 한 방울의 기름까지도 남겨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승리의 축제가 올 것이다!"

'우리에게 승리의 축제가 올 것이다'란 말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 최고사령관 이오시프 스탈린이 독일군에 포위된 스탈린그라드를 사수하기 위해 소련 인민들에게 호소한 '나나아 셈 울릿쩨 도오제 뿌우젯드 쁘라아즈 드니끄'란 말을 인용한 것이다.

김일성의 육성 방송은 제법 비장감이 서린 그럴싸한 호소로 들릴지 모르지만 현실과 너무도 동떨어진 얘기였다. 스탈린의 대인민(對人民) 호소는 나치 독일군의 약탈을 막기 위한 이른바 초토화 전술이었으나 인민군대는 이미 남침 초기부터 선량한 남한 국민들을 대상으로 무자비한 학살과 약탈만 일삼았다. 도시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농촌 지역의 농가까지 뒤져 소·돼지·닭 등 가축은 물론 쌀과 보리, 심지어 된장, 고추장까지 다 퍼가고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그런데 어디 쌀 한 톨, 기름 한 방울이 남아 있단 말인가.

김일성의 육성 방송 이후 인민군대의 조직적인 저항은 모든 전선에서 일시에 멈추어 버렸다. 아예 무기도 버리고 낡고 헐어빠진 전투복을 너덜거리며 정신없이 쫓기고 있는 몰골이란 한마디로 거지 떼와 다름이 없었다. 굴욕과 수치와 허탈감에 빠져 수십 명 또는 수백 명씩 무리지은 거지 떼들은 그저 살아남기 위한 집념 하나로 안간힘을 쓰며 험준한 산악을 타고 북으로, 북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곳곳에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투항하거나 생포되기 십상이었다. 그야말로 인민군대의 최후를 맞이하고 있었다.

각종 무기·탄약·연료 등 전투 장비와 전쟁 물자를 전적으로 소련에만 의존했으므로 일선 전투부대에서는 소련의 군사원조가 원활하지 못할 경우 우선 병참 지원부터 차질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다 개전 초기 점령지에서 조급하게 실시한 토지개혁과 강압적인 농민정책, 의용군 강제모집, 가열한 식량 탈취, 혹독한 노력 동원, 무자비한 포로 학대, 야만적인 양민 학살과 체포·구금 등 민심을 일탈한 점령정책이 부차적인 패인으로 지적되고 있었다.

이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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