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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를 구미 당기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2)홀몸 어르신들의 수호천사 충청도 아지매 김

"부모님 생각이 나서, 그냥 말벗이 돼 드리는 거지 뭐, 별거 있나"

"그냥 짬날 때 그분들 방도 청소해주고 이야기도 들어주고, 빈손으로 가기 뭐하니 반찬도 좀 갖다 주고 하는 거지. 내가 뭐 별 일이나 허나. 어르신들은 이야기 들어주는 것을 제일 좋아혀유."

충남 당진에서 친구 찾아 왔다 구미에 정착했다는 고향식당 주인 김명희(59)씨. 처음 3년간의 식당일이 그만 직업이 돼버렸고 이제는 아예 식당을 직접 한다. 낯설기만 했던 구미생활이 올해로 벌써 23년째니 제2의 고향이 됐단다.

1991년부터 구미시 원평동 금오시장 내 지하에 탁자 3개로 시작했다. 음식솜씨가 좋은데다 인정이 많아서인지 단골손님이 하나 둘 늘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고향의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 또한 늘어갔다.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죄송함을 풀기 위해 1993년부터 주변의 홀몸 어르신들을 찾아뵙거나 경로당을 찾기 시작했다. 손에는 어르신들이 좋아할만한 반찬을 들고 말이다. 그 발걸음을 벌써 17년 째 이어가고 있다. 이제는 가게로 반찬을 얻으러 오시는 어르신들도 있단다. 장을 볼 때마다 여분의 반찬을 사는 것도 그 때문이다. 홀몸 어르신 집안이나 경로당 청소도 김씨의 몫이다. 물론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것이 제일 큰 일이 돼버렸다.

여든 넘은 부모님과 시어머님을 생각하면 외로운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일이 오히려 큰 위안이 된다는 김씨. 그러다보면 오후에는 식당을 비우기도 한단다. 하지만 가게문은 늘 열려있다. 단골들을 위해서다. 단골들은 주인 없는 가게서 술이며, 안주거리며 필요한 것을 스스로 찾아 먹는다. 그리고 돈은 나중에 주겠다는 메모를 남기기도 한다. 물론 그냥 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녀는 개의치 않는다. 그것이 단골손님과 김씨와의 약속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가게문은 한 달에 딱 한번 공식휴일 때만 닫는다.

고향식당의 단골손님은 대부분 10년을 넘어섰다. 단골들을 위해 이사를 갈 수도 없다. 그저 지하에서 지상으로 옮겼을 뿐이다. "반찬봉사, 말동무 봉사가 생활이 돼버렸네요" 묻자,

"아무도 몰라. 아들 둘, 딸 하나지만 우리 자식들도 내가 뭐하는지 몰라. 내 좋아서 하는 일이지 뭐. 그러니 내 이야기 쓰면 안돼!" 손사래 치며 웃는 김씨에게도 푸근한 고향이 느껴졌다.

매일신문 경북중부지역본부· 구미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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