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8시 30분 대구전문장례식장 임종체험 실습관. 132㎡ 남짓한 공간에 합동 분향소가 차려져 있었고 바닥에는 어두운 조명 아래 나무관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잠시 후 임종체험 프로그램 참가자 10여 명이 삼베로 만든 수의를 입고 관 뒤에 놓인 의자에 하나 둘 자리를 잡았다. 촛불을 켠 참가자들은 차례로 일어나 미리 작성한 유언장을 낭독했다. 어떤 이들은 유언장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눈물을 보이는 이도 있었다.
유언장을 읽은 참가자들은 촛불을 끈 뒤 관 속에 누웠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유동렬 씨는 관 뚜껑을 닫고 주먹으로 '탕탕' 두드려 못질하는 흉내를 냈다. 이후 10여 분간 주변은 정적에 휩싸였다. 10여 분이 지나자 구슬픈 음악이 잔잔하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하나 둘씩 관 뚜껑이 열리고 참가자들이 걸어 나왔다.
짤막한 글임에도 감정을 추스르느라 유언장을 읽는 데 한참이 걸리기도 했고 관 속에서 일어난 뒤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도 있었다.
체험을 끝낸 참가자들의 표정에는 홀가분함과 진지함이 함께 묻어났다.
"죽음은 삶의 마지막 성적표입니다. 임종 체험은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가르쳐 주는 지침이 될 수 있죠. 임종 체험을 통해 지나온 날을 돌아보고 삶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대구에 상설 임종체험 프로그램이 개설돼 눈길을 끌고 있다. 대구가톨릭대 평생교육원에서 장례지도사 과정을 강의하는 유동렬 씨와 대구전문장례식장 이봉상 대표가 뜻을 모아 6일 장례식장 한쪽에 임종체험 실습관을 열고 시민들에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
임종체험 프로그램은 유언장을 쓰고 관에 들어가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체험하면서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자는 것이 목적이다.
유 씨가 2시간 30분간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영상물 시청과 강의, 유언장 작성, 입관 체험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날 체험 참가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체험 전 영결식장에서 유 씨의 강의를 들을 때만 해도 다소 산만한 분위기였으나 유언장 낭독과 입관 체험을 하면서 점차 숙연해졌다.
강의 내내 먼산을 쳐다보던 권성기(29) 씨는 막상 유언장을 낭독할 때가 되자 목소리가 차츰 떨리더니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는 하는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자살까지 생각했던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권 씨는 "삶에 더 이상 미련이 없어 떠나는 길에도 아쉬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간접적으로나마 죽음을 겪어 보니 후회되는 것이 너무 많았다"며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친구 사이인 여고생 김영경, 이경연(18) 양도 단순히 호기심에 참가했다가 큰 것을 얻고 간다고 했다. 김 양은 "당연히 내일이 올 거라는 생각에 시간을 아껴 쓰지 못한 것이 아쉽게 느껴진다"며 "1분, 1초를 소중히 여겨 언제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조영자(47·여) 씨는 "관 속에 누우니 남편과 아이들, 특히 돌아가신 친정 부모님 얼굴이 떠올라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며 "오늘 함께한 여고생들과 비슷한 또래인 아들 둘도 모두 데려와 체험 기회를 주고 싶다"고 했다.
임종체험 프로그램은 대구가톨릭대가 올해 교양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면서 지역에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이 강의를 맡았던 유동렬 씨가 학생들의 반응을 지켜본 뒤 시민들에게도 소개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장례식장의 도움을 얻어 상설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됐다. 이곳에선 올 연말까지 무료 체험기회를 제공한다. 053)555-4448.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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