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올 수주목표 14조원" 문경 출신 서종욱 대우건설 대표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있는 대우건설 서종욱(61) 대표의 접견실은 한 쪽 벽이 '바다'다. 물론 사진이다. 하지만 남태평양을 향해 일망무제(一望無際)로 열린 쪽빛 바다는 글로벌무대에서 숨가쁘게 뛰어온 그의 인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제주도 섭지코지 해안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제일 남단이죠. 그러나 저 너머에 우리가 살 길이 있습니다.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해외에서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건설회사인 대우건설을 지난 2008년부터 이끌고 있는 서 대표는 '정통 대우맨'이다. 1977년 옛 대우개발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뒤 해외인력부장·총무부장·주택사업 담당 상무·관리지원실장(전무)·국내영업본부장(부사장)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쳤다. 특히 세분화된 주택시장에 맞춘 멀티브랜드 전략 등 새로운 주택분양 마케팅기법과 품질경영시스템 정착, 수주영업력 극대화를 통해 국내외에서 대우건설의 입지를 확실히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적 회사가 되려면 선진국 중심인 종합엔지니어링(EPC·엔지니어링·자재구매·시공) 기업이 돼야 합니다. 오랜 노하우가 필요한 원전·정유공장 건설은 아무나 할 수 없거든요. 선진 외국업체와 제휴해 경쟁력을 더 높일 생각입니다."

그가 해외 건설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의외로 군 생활 때였다. 고려대 경제학과(68학번) 재학 중 자원입대, 베트남 십자성부대에 파견됐던 것. "저희 부대는 군수지원 업무를 맡아 다낭지역에 주둔했는데 그 때 인프라건설 현장을 보면서 건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죠. 다이나믹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분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대학 졸업 당시만 하더라도 신설회사였지만 대우건설을 과감히 선택한 이유입니다."

그의 말대로 글로벌기업 이미지를 쌓아온 대우건설은 최근 한 건설분야 취업포털업체의 조사에서도 종합건설 부문 최고 입사 선호회사에 올랐다. 시공능력 순위 100위 이내 건설업체에 재직 중인 대우건설 출신 CEO가 10명이 넘어 '건설업계 인재사관학교'라 불리기도 한다.

서 대표 취임 후에는 '글로벌 인재를 키워야 미래가 있다'는 경영원칙에 따라 신입사원들의 해외연수 교육이 더욱 강화됐다. 리비아·나이지리아 등지에서 해외연수 4개월을 의무적으로 받은 뒤 두달을 국내에서 실무를 익히게 된다. "해외에 나가봐야 해외사업의 특성을 몸으로 배울 수 있습니다. 저희 회사의 경우 해외사업 비중을 2007년 16%에서 올해는 35%까지 끌어올릴 계획이거든요. 올해 해외수주 목표액 45억달러도 달성할 자신이 있습니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연말 산업은행 인수가 확정돼 한층 안정성이 높아졌다. 든든한 전략적 투자자를 만나 성장 가능성도 당연히 커졌다. "그동안 해외사업에선 힘든 부분이 솔직히 있었습니다. 지난해의 경우 전년 대비 8.9% 성장을 이뤘지만 이제는 산업은행의 해외신인도를 바탕으로 해외시장에서 더 열심히 뛰어야지요."

아직 상반기가 지나지 않았지만 해외사업은 벌써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아프리카·동남아 등 주요 거점국가에서의 시장지배력은 더욱 강화했고, 해외기업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오일 및 가스분야의 수주도 확대했다는 것. 특히 동유럽, 남미 등 신규시장 개척을 통한 시장 다변화 추진전략을 통해 신규 시장 수주가 이어지고 있다. 올 해 수주 목표액은 총 14조원에 이른다.

그는 재직 기간 중 해외에서 7년을 보냈다. 아프리카 북단의 리비아였다. 그래서인지 가족에 대해 미안한 마음도 크다. "해외건설 현장에는 거의 대부분 가족없이 혼자 나가게 됩니다. 저 대신 집안 대소사를 맡아 고생한 집사람에게 평생 미안한 마음으로 삽니다. 그래서 요즘 집청소, 창고 정리 같은 건 제가 도맡아 합니다. 예전에 주고 받았던 편지도 가끔 읽으며 반성 많이한다고 써주세요. 허허허."

경북 문경시 호계면이 고향인 서 대표는 호계초교·문경중을 졸업한 뒤 서울로 유학와 대광고를 졸업했다. "양조장을 운영하셨던 선친의 교육열이 대단하셨습니다. 저희 형님들도 서울로 보내 공부를 시키셨지만 우수한 지역 인재들에게도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요즘도 막걸리 마시면 저희 어른 생각난다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서울사람이 된 지 반세기가 다 돼가지만 그래도 그는 고향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다고 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제일 중요한 건 체력이더군요. 제가 중학교 시절 축구부 선수로 뛰고, 문경의 산과 들에서 마음껏 뛰놀지 못했다면 힘든 생활을 어떻게 버텼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 청계산을 거의 매주 오릅니다." 현대건설 김중겸 대표가 그의 중학교 동기동창이다.

체력과 관련, 그는 독특한 자신만의 취침습관도 귀띔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10분만 졸아도 피로가 회복되는 특이체질입니다. 복 받은 거죠. 밤에는 11시 30분쯤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 3시쯤 깹니다. 40분 정도 사업 구상을 하다가 새벽 5시까지 다시 자는데, 집사람은 저보고 몽유병 환자라 그래요. 일종의 직업병인 것 같습니다."

그의 사무실에 진취적 기상을 뜻하는 '바다'가 걸려 있다면 그의 집 거실에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란 좌우명이 걸려 있다. "선친이 생전에 강조하셨던 말입니다. 선친은 걱정부터 하는 사람은 한심한 사람이라며 신세타령만 하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고 하셨죠. 며칠 전 신입사원 입사식에서 저도 같은 말을 강조했습니다. 최선을 다하다보면 CEO가 될 거라고."

피는 속일 수 없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부인 김희성(48 )씨와 사이에 둔 남매 가운데 그의 아들 역시 국내 대형 건설업체에 근무하고 있다. "건설 DNA는 어쩔 수 없이 닮나 봅니다. 굳이 권하지않았는데도 직장을 건설회사로 택하더군요.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 창의력을 중시하는 건설업은 한 번 도전해볼 만한 직장이 아닐까 합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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