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 빛나는 등불 같은 여인이 있다. 각박한 세상에 잔잔한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사람. 나의 큰언니 딸이다. 오래전부터 입양아를 키워 주는 자원봉사를 해왔다. 자신의 두 아들이 어느 정도 자라 시간의 여유가 생긴 후-. 헌신적인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내 아이만, 내 가정만, 내 것에의 집착에서 벗어나 이웃을 배려한 봉사였다. 홀트아동복지회에서 갓난아기를 데려와 5, 6개월 동안 정성들여 키웠다. 미혼모들의 아기가 많았다.
전통적인 성윤리 개념이 무너지면서 주위의 건전하지 못한 환경에 영향을 받은 탓인가. 본의 아니게 임신을 한 젊은 여성들. 그들이 버린 아기들이 그 시절엔 그렇게 많았다. 정성을 다하여 키운 아기들이 외국으로 입양되어 가고 또 가고…. 정든 아기들과 헤어질 날이 가까워오면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마음 아파했다. 세상살이가 고달프기 때문일까.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아기들은 버려지는 작은 생명체들이다. 여자는 아기를 통하여 더욱 강인해지고 새로운 자신에의 꿈을 다져간다고 하지 않던가.
23년 전 마지막으로 데려온 아기가 철이다. 한 달이 채 못 된 사내아기였다. 날이 갈수록 아기가 정상이 아닌 것 같았다. 몇 달을 키운 후 아동복지회에 데려다 주었다. 그동안 키운 정에 눈물을 삼키며 돌아섰다.
얼마 후-. 그동안 어떻게 자랐을까 생각하며 다시 아동복지회에 찾아갔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야윌 대로 야윈 채 큰 눈만 깜빡이는 철이를 보는 순간 가슴이 저려왔다. 금방 낳은 핏덩이를 버린 생모도 나쁜 여자지만 키우다가 돌려보낸 자신은 더 나쁜 여자라는 생각에 견딜 수 없었다.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뇌성마비 장애아를 입양해갈 사람은 없었다. 일거수일투족,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야만 생활할 수 있는 중증의 장애아를 누가 데려가겠는가. 어리석고 무모한 짓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시도를 했다. 부와 편안함을 추구하는 보통 사람의 잣대로 본다면 더욱 그렇다. 자신의 호적에 입적시킨 것이다. 남편과 두 아들과의 의논 후 결정이지만 어렵고 힘든 용단이었다. 철이로 인해 일어날 여러 어려움을 왜 모르겠는가. 그럼에도 일급 중증 장애아를 입양시킨 것은 장한 일이었다.
지난 일요일, 나는 그녀를 만났다. 서울의 어느 고급 식당에서다. 올해 23살이 된 철이와 함께. 깨끗한 차림이었다. 지금은 대학교 과정의 (지체 장애아만 다니는 학교) 학생이었다. 철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손길을 필요로 했다. 기쁨을 표시하는 웃음과 화가 나면 고개를 획 돌리는 것이 전부였다. 식사 때다. 휠체어에 앉아 엄마가 잘게잘게 썰어 입에 떠넣어 줘야 겨우 삼킨다. 음식의 반은 입 밖으로 흘러내리고 침도 질질 흘렸다. 중간중간 재채기를 하기도 했다. 입에 든 음식이 모두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그녀는 얼른 수건으로 닦아 주었다. 한 번의 식사도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철이에게 밥 먹일 사람이 없어 그녀는 항상 곁에 있어야 했다. 하루에도 스무 번 이상 철이를 들어올리고 내리느라 어깨와 팔이 심하게 아프단다.
학교에서 연극 발표가 있다던가. 휠체어에 타고 있는 모습만 잠깐 보이는 단역이지만 자랑스러워했다. 나에게 구경 오라는 몸짓을 했다.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감정은 다른 젊은이와 같은 것인가. 여자 친구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입이 함박꽃같이 벌어지며 몸을 뒤틀며 웃는다. 여자 친구가 예쁘냐고 물었더니 더욱 몸을 뒤틀며 크게 웃는다. 사랑만큼 사람의 감정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또 있을까. 사랑은 고귀한 생명체라고 하지 않든가. 엄마나 형들의 품이나, 휠체어에 의지해야만 바깥 나들이가 가능한 철이를 위해 그녀는 늘 바쁘다. 몸은 고달프지만 마음은 행복하단다. 몸이 재바르고 개미처럼 부지런한 그녀. 보람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녀의 하루는 봉사하는 삶으로 열린다. 자신을 희생하며 베푸는 사랑. 그 사랑으로 세상의 빛이 되어 살아간다. 그 사랑의 향기가 온 누리에 가득해지기를 빌어 본다. 그녀 같은 사람이 한 사람 두 사람 나타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방울이 모여 강물을 이루듯 우리 사회는 사랑의 향기로 넘쳐나지 않겠는가.
허정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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