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르포] '40년만의 大흉작' 양봉 농가 한숨

올봄 잦은 비·냉해 겹쳐…"벌들이 사라졌어요"

한국양봉협회 경북도지회 신창윤 지회장 등 양봉농가들이 꿀벌의 생육상태를 관찰하고 있다.
한국양봉협회 경북도지회 신창윤 지회장 등 양봉농가들이 꿀벌의 생육상태를 관찰하고 있다.

"1970년부터 양봉을 해왔지만 올해 같은 흉작은 처음입니다. 아카시아꽃이 피는 시기에 비가 자주 온 데다 냉해현상까지 겹쳐 꿀벌 개체수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꿀을 따올 '군사'들이 없는데 무슨 대책이 있겠습니까? 양봉농가들의 한숨소리가 하늘까지 닿고 있습니다."

8일 오후 상주시 내서면 능암리 산중턱에 위치한 한국양봉협회 경상북도지회 신창윤(58·상주시) 지회장의 양봉장. 700여㎡의 산밭에는 벌통 120여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벌통을 바라보는 신 회장의 표정이 어두웠다. 지난해에도 양봉산업이 큰 피해를 본 데다 올해는 피해가 더 심해진 때문이다. 올해 아카시아꿀 채취량은 지난해의 30%에 그쳤다. 올봄 이상기후로 벌들이 많이 번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 지회장은 "올해 양봉피해는 경상북도가 제일 심각하다"면서 "내년에는 좋아질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면서 벌들을 돌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기후…양봉산업 직격탄

이날 상주농업기술센터에는 상주지역 양봉인 120여 명이 양봉산업 교육에 열중하고 있었다. 매년 양봉이 어려워지면서 양봉교육장에서 전문기술을 전수받아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다.

양봉교육장에서 만난 경북도양봉협회 상주지회 정갑영(62·상주시 중동면 간상리) 지회장도 "올 봄 초에는 날씨가 좋아 잘 되겠구나 하면서 기대를 했는데 갑자기 아카시아꽃이 피는 시기에 비가 4차례나 쏟아졌다"면서 " 꽃이 제대로 여물지 못한 데다 추운 날씨까지 덮쳐 벌들이 대부분 얼어죽거나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면서 농사를 망쳤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예년의 경우 꿀을 12드럼이나 수확했지만 올해는 3드럼 반 정도밖에 못했다"며 "양봉전업농들은 생계를 이어나가기도 어렵게 됐다"고 했다.

양봉피해가 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꿀벌 사육농가는 2008년 3만4천102가구로 2002년 4만5천100가구, 2004년 4만1천200가구, 2006년 3만3천 가구 등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상주시의 경우 지난 10년간 양봉농가 수는 40% 정도 감소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 2004년에도 양봉농가들은 큰 피해를 당했다. 당시 아카시아나무 잎이 조기에 낙엽이 되는 '황화현상'이 나타난 탓이었다. 2004년 벌꿀 생산량은 1만5천651t으로 2003년(3만353t)에 비해 절반가량 떨어졌다.

양봉인들은 이를 엘니뇨 현상 등 지구온난화 때문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이 반복되면서 우리나라도 점차 양봉하기 어려운 환경이 도래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40년간 양봉을 해 온 이상모(73·한국양봉협회 경북지회 김천시분회장) 씨는 "벌들이 자연에 베푸는 유익한 일들이 많지만 사람들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과수농가들은 벌들이 자연수정을 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주인공인데도 그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농약을 마구 뿌리면서 벌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을 해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양봉산업 위기

국내에서 생산한 벌꿀 중 70%는 아카시아꿀이다. 하지만 아카시아나무가 점차 감소하고 있어 양봉농가의 생산기반이 사라지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전문양봉인 안상규(49·안상규벌꿀대표) 씨는 "5월 아카시아꽃이 피기 전에 벌 한 통에 3만 마리가 있어야 꿀을 정상적으로 수확할 수 있는데 올해 봄은 너무 추워서 벌 애벌레가 얼어죽는 바람에 벌이 세대 교체가 안돼 60% 정도만 살아남았다"면서 "아카시아꿀이 나오는 5월에 비가 너무 자주 와 꿀 흉작을 기록해 예년의 40% 정도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아카시아나무가 줄어드는 것도 우리나라 양봉산업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1990년 아카시아나무의 면적은 17만5천ha였지만 지난 2007년에는 6만ha로 약 65%가 감소했다. 아카시아나무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한 무단벌목과 황화현상, 참나무 군락 등 활엽수의 공격이 거세진 탓이라는 것.

이에 따라 정부는 올해 보조 150억원, 지방비 38억원 등 188억원을 지원해 밀원식물 확대를 위해 묘목을 보급하고 있다. 하지만 농가에서 신청하는 묘목은 아카시아나무보다는 헛개나무 등 다른 특용수가 많아 아카시아꿀 생산증대에는 전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기불황에 따른 꿀 소비둔화를 비롯해 안정적인 판로확보가 쉽지 않아 양봉 포기농가도 늘고 있다.

안상규 대표는 "대학에서 전문 양봉인들을 양성하고 전문가들을 제3세계에 파견, 밀원이 풍부한 현지에서 양봉을 성공시켜 외화를 벌어오는 등 특수대책이 필요하다"면서 "양봉산업에 변화가 필요하며 이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상주·이홍섭기자 hs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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