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창석의 뉴스 갈라보기] '예술소비'가 들풀처럼 번지길

오늘날 예술의 가치를 두고 이야기하면 언제나 동어반복이 될 뿐이다. 부단히 언급되었을뿐더러 누구나 논지가 비슷비슷하다.

어떤 이들은 각종 수치를 들먹이며 산업적인 효력을 입증하려 들고 어떤 이들은 예술의 창의성이 21세기를 풀어나가는 열쇠라고 말하기도 한다. 틀린 소리도 아니겠으나 나는 늘 되풀이되는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왠지 '예술이 그거밖에 안 돼?' 하는 초라함을 느낀다. 특히 예술 종사자가 그렇게 운을 떼면 마치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 같아서, 나 역시 20년 이상 '예술'에 종사한 자로서 짜증이 돋아 슬그머니 니체의 책이나 뒤적인다. 20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고통스럽고 불합리한 세계로부터 인간을 구제해줄 것으로 인간의 예술적 능력을 이야기한다. 인간의 예술적인 능력은 삶의 부정적인 면에서 눈을 돌리게 하고 죽음의 가능성으로부터 구출하며, 생의 진정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는 게 초기 니체의 핵심적인 전언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란한 덧붙임이 무슨 필요가 있으랴. 예술의 의미에 대해 한 술 더 보탠들 예술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는 실정이 아닌가. 특히 순수예술은 도무지 우리의 피부에 와 닿지 않고 막연하게 바라보는 대상일 따름이다.

예술이, 인간이 만든 가장 고결한 창조물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예술을 즐기려면 일정한 정도의 관습과 노력과 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나 그 이후에라도 예술이 주는 독특한 숭고함을 느낄 수 있어야 예술 향유자가 된다. 대부분이 그렇듯이 우리는 오래전부터 예술과 거의 멀어진 상태다.

예술을 진작시키고 대중에게 잘 전달하기 위한 노력은 이미 많이 시도되었다. 정부나 기업이 나서서 문화예술인들을 돕고 각종 증진책을 마련해왔다. 대선 때면 대통령 후보들이 '문화예산 1%' 공약을 내걸 정도로 돈은 적게 들지만 오히려 세심한 부분이 너무 많아, 괜찮은 지원책을 마련하더라도 시행하는 데 무척 까다롭다. 예술을 진작시키는 게 그만큼 힘들뿐더러 효과도 미미하다. 예술 장려책의 효과가 낮은 가장 큰 이유는 그 정책이 수용자에게까지 직접 닿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에 대구예총에서 시도하는 '예술소비운동'은 가히 혁신적이라 평가할 만하다. 완전히 순수한 민간운동은 아니지만 관(官) 주도 형태도 아니어서 그 결실이 자못 주목된다. 지금까지는 예술인들에게 직접 창작활동을 지원했으나 예술소비운동은 거꾸로 시민들의 문화 향유를 거들어서 예술을 진작시킨다는 관점이다. 예술은 결국 소수의 예술가에 의해서 생산되는 것이니 만큼 이 운동은 1차적으로 예술에 대한 진흥책이라 할 수 있겠다. 예술가는 어떤 제조품 이상으로 자기 작품이 대중에게 전달되기를 소망할진대, 이 예술소비운동은 다른 화려한 지원책보다 예술가들을 흥분시킬 것 같다. 물론 '소비자'에게도 의미가 각별하다. 우리 삶에서 예술이 일상처럼 변하고 우리 자신도 예술 창작활동에 참여하는 이른바 '예술 민주주의' 사회를 가까이 바라보는 게 이 운동의 꿈인 것 같다. 모든 운동은 현실적으로 다소 불가능한 것을 꿈으로 가질 때만이 활동성과 지속성이 보장되는 법이다.

하나 더 덧대자면, 이 운동은 우리나라 특유의 종속적 정신문화를 개선시킬 수 있는 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수도권 중심의 정신문화는, 예술에 대해서는 밀란 쿤데라가 말한 '문화지방주의'라는 폐단을 낳고, 의식에 대해서는 이미 뚜렷하게 작동하는 정치 경제의 수도 중심주의를 고착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다시 말하면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문화예술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서울 우월주의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니체도 언급했듯이 문화예술은, 불합리한 세계에 빠진 인간에게 어떤 근원적인 정신의 힘을 부여해주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시도되는 문화예술 운동은, 수도권에 대한 종속적인 문화 혹은 의식을 해체시킬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방식이다. 이 운동이 대구에서 성공을 거둬 대구만 아니라 부산 광주 전주 강릉 제주에 이르기까지 각 지방이 활동적으로 움직여서 마치 들의 풀처럼 번져나가기를 기대한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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