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6일 대구불교방송에선 '팔공산 승시(僧市) 세미나'가 열렸다. 승시는 승려들이 사찰에 필요한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으로, 승시 사료와 관련 학술 연구가 미미한 상태에서 이번 세미나는 불교계의 관심을 끌었다. 다음은 세미나 주 내용.
구전에서의 중장(衆場'혹은 僧場, 中場)이 바로 승려들이 장을 보던 상설'비상설 장터다. 중장, 중터, 승장, 중촌, 승촌 등 지명 유래와 몇몇 사료에서의 승시 관련 흔적들도 적잖다.
승시의 흔적들은 팔공산 부인사와 부안 청림사, 경기 용주사 등이 대표적이다. 부인사의 경우 한때 2천여 명의 스님들이 수행했으며 승시가 열렸다고 전해진다. 17세기 정시한이 쓴 '산중일기'에선 "동화사 염불암의 경숙이(이름)가 큰 절(동화사)에 내려가 물건을 판 뒤 절에 필요한 물품을 사가지고 돌아왔다"고 적었다. 승시와 같은 시장 개설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청림사에서도 인근에 승시가 열려 수많은 승려들로 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또 조선 말 관리 이만도는 자신의 '향산일기'에서 "건릉(정조의 능)으로 제향을 오가던 중 승장평(僧場坪'혹은 승평)에서 점심을 먹었다"고 적고 있다. 승장평은 경기 과천에서 화성에 이르는 구간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건릉 인근에는 건릉의 원찰인 용주사가 자리하고 있어 승시의 존재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승려들은 승시에서만 거래를 했을까? 성종실록엔 "승려 38명이 장사를 하기 위해 바다 건너 제주로 가려다 바람을 만나 일본국 오도인 옥포로 떠밀려 갔다", "승인의 흥판(대규모 교역)이 매우 성하게 유행하고 있다"는 기록이 있다. 또 태종실록은 "승려들이 압록강을 건너가서 장사를 하는 것을 금지시키라고 명했다"고 적고 있다. 승려들이 대규모 승단(僧團)을 꾸려 국내는 물론 국외와 교역을 했다는 의미다.
세미나는 실록을 비롯한 여러 문헌에서 승시의 존재 가능성을 확인한 만큼 체계적인 자료 수집과 연구가 병행되면 승시의 실체가 좀 더 명확히 드러날 것이며 역사'문화적 가치도 높아질 것이라고 결론을 맺었다.
이종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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