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원태의 시와 함께] 오랜 망설임 끝에/ 김선굉

얼마나 많은 시간이 너와 나 사이를 흘러갔을까.

오랜 망설임 끝에 나는 네가 내민 손을 잡는다.

얼마나 놀랐던가, 나는 처음으로

손이 말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득한 기억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 보물.

내가 말을 배우기 전에 알아들었던 그 말.

네 손이 지금 이렇게 말하는 걸 듣는다.

오래 닫혔던 문을 참 쉽게 여는군요.

나는 네 손을 내 귀에 갖다 댄다.

참 질긴 길 하나가 내 몸속으로 흘러들어온다.

오랜 망설임 끝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마도 저 놀라운 '손의 말'을 들을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오래고도 끈질긴 견인(堅忍)은 꽤나 힘들고 괴로운 일이지만, 그리하여 이윽고 심연처럼 깊어진 우리의 마음은 이렇듯 보다 그윽해진 선물을 받게 되는 게지요.

'손의 말'은 가장 민감하고 집중적인 '몸의 말'이어서, 우리가 "말을 배우기 전에 알아들었던 그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하니, 어찌 누대(累代)를 이어져 내려온 "아득한 기억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 보물"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손의 말'이란 "오래 닫혔던 문을 참 쉽게 여는" 말이요, '참 질긴' 마음의 길 하나가 몸속으로 흘러드는 직방(直放)의 통로입니다. 그 마음으로, 나는 '오랜 망설임 끝에' 당신의 손을 가만히 잡습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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