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물의 도시 대구-동네우물 되살리기] 독일②

수질관리 관측井 따로 뚫어…물샐 틈 없는 취수정 보호

랑엔아우 취수정 주변에는 반드시 관측정이 있어 수질과 수량을 모니터링한다. 사진 왼쪽 솥처럼 생긴 것이 취수정, 오른쪽 하얀 기둥이 관측정, 뒤쪽 건물 속에 집수정이 있다. 최재왕기자
랑엔아우 취수정 주변에는 반드시 관측정이 있어 수질과 수량을 모니터링한다. 사진 왼쪽 솥처럼 생긴 것이 취수정, 오른쪽 하얀 기둥이 관측정, 뒤쪽 건물 속에 집수정이 있다. 최재왕기자
LW 물연구소의 슐츠 박사는
LW 물연구소의 슐츠 박사는 "물속에는 인간이 모르는 물질이 2천여 가지나 돼 신비의 생명수가 된다"며 물의 성분을 분석하는 실험 도구를 설명했다.

목가적인 농촌마을인 독일 랑엔아우의 지하수는 취수정에서 집수정을 거쳐 수도사업소(LW)로 보내져 수돗물로 만들어진다. 널따란 들판에 만들어놓은 취수정은 두껑이 굳게 닫혀 있었다. 요새에 들어가는 철문처럼 커다란 열쇠가 채워진 채다. 공인된 담당자가 아니면 그 두껑을 절대 열 수 없다. 물이 오염되는 사고를 막기 위한 조치다.

두껑에는 취수정을 만든 연혁이 기록돼 있다. 1968년 만든 취수정, 1958년 만든 취수정... 220개 가운데 10년전 만든 게 가장 최근이고, 쉰살을 훌쩍 넘긴 취수정도 여기저기 널려 있다.

◆지하수 질과 양 관측정으로 가늠= 취수정 주위에는 반드시 지하수 관측정이 있다. 지하수의 수위와 질을 관측하기 위한 작은 우물이다. 지하수의 질을 측정한답시고 취수정의 두껑을 열게 할 수 없다. 취수정의 물을 직접 검사하는 게 아니라 인근 관측정의 물을 대신 검사한다. 물론 관측정에는 자동 수위 계측기 등 디지털 설비가 장착돼 있어 직접 물을 길어야 하는 경우는 그리 잦지 않다.

랑엔아우에 만들어진 관측정은 취수정 220개보다 많은 300개나 된다. 취수정 가까이는 물론 멀리에도 관측정이 있어야 수위 변동을 제대로 가늠할 수 있어 취수정 숫자보다 많다. 우리나라에는 취수정과 관측정을 한꺼번에 만들어 둔 곳이 없다. 7~8월에 첫 선을 뵐 대구 동네우물에 관측정을 만들면 '우리나라 최초'란 기록을 세우게 된다. 대구 우물이 선진 동네우물이 되는 셈이다.

◆먹는 지하수 불허= 독일에서는 이런 지하수 취수정을 파려면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것도 정원수나 농사용으로나 가능하지 식수용으로는 불가능하다. 먹는 물은 정부가 철저히 책임을 진다는 '정신'에 따른 것이다. 우리는 제 땅이면 지하수를 개발해 마시든 허드렛물로 쓰든 제 마음대로다.

황량한 벌판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땅에 엎드려 카메라 셔트를 누르고, 오래도록 바람 소리 새 소리와 흘러가는 구름을 방송 카메라에 담는 취재진을 보며 무척 재미있어하던 LW 관계자들은 우리를 LW물연구소로 안내했다. 연구소장인 피셔 에더 박사 밑에 25명의 연구원이 물의 성분을 분석하고, 더 나은 수돗물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는 독일의 대표적인 물연구소다.

연구원들은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생활하는 과학자여서인지 모두 선한 얼굴이다. 취재진의 인터뷰와 연출 요청에 즐겁게 응했다.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랑엔아우 지역 방송인 SWR 기자들이 취재하는 우리 일행을 취재했다. 랑엔아우에 외국 취재진이 방문하는 경우는 드문 모양이다.

◆물 속 2천여 가지 미지(未知)의 물질= 물연구소는 첨단 수질 분석 기법을 자랑했다. 볼프강 슐츠(Wolfgang Schulz) 박사는 유기물 분석기, 특수 미량원소 분석기 등 실험 기구와 실험 방법을 열심히 설명했다. 그러면서 충격적인 말을 던졌다. "우리 연구소는 독일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 앞선 물연구소입니다. 각종 기법으로 분석해보면 물 속에는 2천여종 이상의 물질이 녹아 있습니다. 그 중 우리가 아는 것은 몇 안됩니다. 수 많은 물질이 서로 다르다는 것만 알뿐입니다. 계속 연구하고 있지만 우리가 밝혀낼 수 있는 물질이 과연 몇 종류나 될지 저로서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물의 신비'에 매혹된 슐츠 박사는 우리에게 더 많이 물을 설명하려고 애썼다. 일정에 쫓겨 떠나는 우리 일행을 그는 아쉬운 눈길로 바라봤다. 긴 시간 열심히 들어주지 못해 못내 미안했다. 아니 부끄러웠다.

LW의 수돗물 제작 공정은 대구와 비슷하다. 모래 여과, 활성탄 여과, 오존 처리···. 낙동강 페놀오염 사고 이후 고도 정수처리하는 대구의 수돗물 생산 시스템이 그만큼 선진화됐다는 증좌다.

◆물 사용량 줄어= 오전에 시작된 LW 취재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쯤 끝났다. 하루종일 우리를 안내하며 랑엔아우 수돗물의 우수성을 알리려는 뢰를레 씨의 열정과 성실성에 감동했다.

뢰를레 씨에 따르면 독일의 1일 1인당 물사용량은 125ℓ다. 유럽 다른 나라보다 적은 편이다.(도표 참조) 20년 전인 1990년 200ℓ에서 크게 줄었다. 물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고, 물 절약 시스템이 개발되고, 물 값이 올라 사용량이 줄었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물사용량은 2008년 기준 275ℓ로 유럽 제국에 비해 많다. 물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독일 국민들의 수돗물 신뢰도도 높은 편이다. 50% 정도가 수돗물을 식수로 쓴다고 뢰를레 씨가 전했다. 젊은이들은 상대적으로 생수를 즐긴다. 생수를 마시면서 자란 탓이라 한다.

◆9개국 젖줄 도나우= 랑엔아우를 떠나 14km 떨어진 울름(Ulm)으로 갔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고향으로 도나우강(Donau R.)이 흐르는 제법 큰 중세도시다. 도나우의 이름은 여러 개다. 다뉴브, 두나이, 두나, 두나브, 두너레아 등. 독일을 비롯해 오스트리아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등 9개국에 걸쳐 있어 이름도 여러 개다. 강물은 무려 2천850km를 흘러 흑해로 들어간다. 루마니아 이바노비치가 작곡한 왈츠곡 '도나우강의 잔물결'로 잘 알려진 도나우. 우리의 관심은 LW 수돗물의 원료가 되는 강물에 있다.

슈트트가르트로 향하는 길에 잠시 들런 도나우강의 물이 시커매 잠시 놀랐다. "부엽토 때문에 검고 탁해 보여도 수질은 좋다"고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성익환 박사가 설명했다. 십수년 전에 본 아마존강도 그랬다. 썩은 나뭇잎이 거대한 아마존의 상류 절반을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도나우 강변에 핀 봄을 알리는 버들강아지와 물 위를 한가롭게 노니는 오리 가족, 갈대, 빈배... 평화롭고 아름다운 강이다. 그제사 도나우의 잔물결도 눈에 들어왔다. 도나우는 유럽의 어머니, 젖줄, 생명이다.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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