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홍철칼럼-지방도 잘 살 수 있다(14)] 10년 후에는 누가 농사를 지을 것인가?

얼마 전 대학시절 가깝게 지냈던 친구들과의 만남이 있어 오랜만에 서울로 나들이 갔다. 이제는 60대 중반의 은퇴한 노인이 된 그들과 1950'60년대 벚꽃놀이로 유명했던 창경궁(구 창경원)을 거닐었다. 조선시대 고궁의 옛 모습으로 새롭게 단장되어 있어 유쾌한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간단한 저녁식사에 막걸리를 걸치면서 얘기꽃을 피웠다.

종합해 보면 그들은 서울의 각종 문화를 싼값에 즐기면서 행복한 노년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모두가 지방 출신인 그들에게 농촌의 고령화 문제, 지방 중소도시의 쇠퇴 문제 등 국토균형발전에 관한 얘기를 꺼내봤지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것들은 서울 사람들이 걱정할 사안이 아니라 지방 사람들의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산업화를 시작하기 직전인 1960년 63%였던 농촌지역(면지역)의 인구가 2008년에는 10.7%에 불과하고, 그것도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농도(農道)로 불리는 경상북도의 경우 농촌인구의 38%가 65세 이상으로 '초고령사회'가 된 지 오래이고, 50세 이상을 합치면 69%에 달하고 있다. 한창 일할 수 있는 20~49세 인구는 21%에 불과한데, 이들 중 어느 정도 교육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농사일이 아니라 사무직에 종사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2020년에는 경상북도 농촌(면지역)은 10명 중 7명이 환갑을 지낸 노인동네가 되는 셈이다.

도시는 기본적으로 시민들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직장'교육'문화'의료와 같은 요건들을 최소한은 구비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면(面)소재지에는 면사무소, 농촌지도소 등 관공서와 노인정만 있을 뿐 학교는 대부분 폐교가 되고, 병원은 보건진료소가 고작이다. 자녀를 가진 젊은이들이 살기에는 이미 '부적격' 판정이 난 곳이다.

군청이 소재해 있는 읍(邑)은 초'중'고등학교나 병원이 있긴 하지만, 최소한의 니즈(Needs) 정도만 충족시킬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 중소규모의 시(市)급 도시에 사는 주민들의 병원진료는 인근의 대도시에서 해결할 수 있지만, 자녀들의 대학 진학을 위한 고등학교 경쟁력이 가장 큰 문제이다. 읍이나 중소도시에서 희망을 찾기 힘드니까, 젊은이들은 활기가 넘치는 수도권으로 떠나고 싶어 할 수밖에 없다.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앞으로 10년 후 읍이나 중소도시들도 오늘의 면단위처럼 노인들의 도시로 변모할 것이다.

요즘은 국민들의 최대 관심사가 웰빙이다. 값이 비싸더라도 건강에 좋은 친환경 농식품을 찾고 있다. 무공해 쌀이나 채소, 과일을 재배하거나 소나 돼지를 사육하는 농가의 소득이 웬만한 중소기업의 수익을 능가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2000년대의 영농은 기계화 차원을 넘어 생명공학과 연계된 고수익의 첨단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문제는 '누가 농사를 지을 것인가'이다. 앞으로 10년 후 우리나라의 면이나 읍 지역에서는 청년들은 찾아보기 힘들게 될 텐데, 어디서 첨단영농의 경영자를 구해온단 말인가? 농촌에서 태어난 다문화가정의 2세들도 성장하면 도시로 떠날 것이 분명하고, 어쩌다 생각이 남다른 귀농인이 있긴 하지만, 이들의 숫자는 가물에 콩 나는 수준이다.

산업화시절 이농현상으로 인한 농촌인구 감소는 농업기계화가 공백을 메워줬지만, 첨단영농은 기계가 대신해줄 수 없다. 국가와 국민이 존재하는 한 농업은 존재해야만 한다. 농촌에 농민이 없으니 결국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다.

미래학자들은 앞으로 도시와 농촌의 경계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도시농부들'이 출퇴근하면서 농촌에서 농경비즈니스를 영위하고, 제조업처럼 공장에서 과채류를 생산할 날도 멀지 않다고 설명한다. 하나의 대안으로 도시의 유능한 젊은이들을 잘 교육시켜 미래의 첨단영농전문가로 양성하여, 이들로 하여금 영농기업을 운영토록 하는 방안 등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새로운 농업시대의 성공조건인 도농통합을 위하여 우리의 도시'농촌시스템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정부의 치밀한 계획과 강력한 지원 없이는 결코 쉽게 성공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과 함께 다각적인 연구와 제도 수립 등 정책 추진이 시급하다.

대구경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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