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천만원 사채, 2년이면 1억 '死債'

연 수백% 고리로 자살·범죄 부작용 속출

# 일용직 노동자인 김명석(가명·58) 씨는 아파서 일손을 놓은 지 오래인 아내와 30대 아들, 어린 손자와 살고 있다. 며느리는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긴 지 오래다.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그는 2년 전 1천여만원을 사채로 썼다. 하지만 제때 갚지를 못해 빌린 돈은 어느새 억대로 변했다.

김씨는 "은행 대출은 꿈도 못 꾸는 처지여서 사채를 썼는데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갚을 길이 없다. 이젠 하루빨리 눈을 감고 싶을 뿐"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 이현영(가명·22·여)씨는 지난해 대학 등록금을 내기 위해 사채업자에게 연 이율 345% 조건으로 300만원을 빌렸다. 선이자 35만원을 떼고 석달 뒤 360만원을 갚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제때 돈을 갚지 못해 사채 빚은 1년 사이 수천만원으로 불었다.

이씨는 "험상궂은 사람들이 돈을 빨리 갚으라며 수시로 문을 두드리고 전화를 해대는 통에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이제는 더 이상 참기 힘들어 경찰에 신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경기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서민들이 사채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개인회생이나 파산신청을 하는 서민들은 그나마도 다행이다. 사채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날 수 없는 서민들은 범죄를 저지르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6년 고금리 수취와 불법 채권추심으로 인한 상담 건수는 각각 387건, 295건이었지만 2009년에는 1천57건, 972건으로 급증했다. 대한법률구조공단 대구지부의 자료에도 2007년 21건과 255건이었던 개인회생, 파산신청 구조사례가 2008년엔 160건, 358건으로 늘어났다. 신청인은 은행권을 거쳐 사채시장에 발을 디딘 끝에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행 대부업법상 최고 이자율은 연 49%다. 사채가 사회문제화되면서 정부는 이자율을 연 44%로 낮추는 시행령 개정을 추진중이다. 하지만 사채를 쓰는 서민들에게 이 법률은 무용지물이다.

지난달 23일 대구시 수성구에서 여대생을 납치한 뒤 살해한 김모(25)씨는 경찰조사에서 사채 빛 5천500만원을 갚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이달 7, 8일 포항시외버스터미널 인근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여종업원 이모(32)·김모(36)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은 이들이 연 500%가 넘는 고리로 사채를 썼다가 각각 1억원에 가까운 빚에 시달려오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대부금융협회가 지난해 11월부터 올 1월까지 2개월 동안 대부업을 이용한 경험이 있거나 이용 중인 사람 5천73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사채 이용자 3명 중 1명은 연 49%가 넘는 이자를 주고 대출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용자 가운데 25%는 '전화를 통한 불안·공포감 조성' 등 불법 추심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인권운동연대는 신용등급이 낮아 사채를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려하더라도 등록된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것이 피해를 줄이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이곳 서창호 상임활동가는 "상담 사례 중에는 연 이율이 1천200%나 되는 사채를 쓰다 곤경에 빠진 사람도 있었다"며 "오토바이를 타고 명함을 뿌리는 업체는 대부분 미등록 업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불법 추심 행위가 있으면 사법기관이나 금융감독원 등에 도움을 청해야 한다"고 밝혔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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