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행, 경북을 걷다]<29>울릉 내수전 옛길트레킹코스

숲향기 고요한 오솔길, 산새소리만이 귓가에…

김영대 작 - 내수전에서 본 죽도 내수전에서 석포까지 이르는 원시림을 걷다보면 줄곧 오른편에서 보이고 숨기를 반복하는 섬이 바로 죽도다. 때론 저 멀리 달아난 듯 하다가 어느 새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서기도 한다. 김영대 화백의 그림처럼 울릉을 걷던 그 날, 바다는 유난히 고요했고 마치 거울처럼 바다에 비친 반사된 죽도의 모습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시간이 허락치 않아 죽도에 발을 디뎌보지는 못했다. 죽도 탐방은 다음 번 울릉을 찾아올 핑계거리로 남겨둔 셈이다. 김영대 화백은
김영대 작 - 내수전에서 본 죽도 내수전에서 석포까지 이르는 원시림을 걷다보면 줄곧 오른편에서 보이고 숨기를 반복하는 섬이 바로 죽도다. 때론 저 멀리 달아난 듯 하다가 어느 새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서기도 한다. 김영대 화백의 그림처럼 울릉을 걷던 그 날, 바다는 유난히 고요했고 마치 거울처럼 바다에 비친 반사된 죽도의 모습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시간이 허락치 않아 죽도에 발을 디뎌보지는 못했다. 죽도 탐방은 다음 번 울릉을 찾아올 핑계거리로 남겨둔 셈이다. 김영대 화백은 "숲그늘이 드리워진 원시림을 걷는 즐거움도 컸지만 동행 길 내내 우리와 함께 했던 죽도를 그림에 담고 싶었다"며 "다음에 울릉을 찾아올 때엔 죽도의 오솔길을 꼭 거닐어 보고 싶다"고 했다.
동행길과는 정반대인 태하쪽 해안가. 한국 10대 비경으로 꼽힐 만큼 해안 풍경이 아름답다.
동행길과는 정반대인 태하쪽 해안가. 한국 10대 비경으로 꼽힐 만큼 해안 풍경이 아름답다.

울릉은 비록 섬이지만 제 맛을 즐기려면 숲길을 거닐어야 한다. 도동 뒷편에서 등산로를 따라 성인봉에 오른 뒤 나리분지로 내려서는 길이 제격이지만 다소 가파르고 시간도 적잖이 걸린다. 가족과 함께 하는 동행길이라면 내수전 옛길 트레킹코스를 추천할 만 하다. 아직도 울릉 일주도로가 개통되지 못한 구간. 원시림을 만끽할 수 있는 구간 중 하나다. 내수전은 저동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가면 된다.

일찌감치 출발한다면 내수전부터 쉬엄쉬엄 오르막길을 걸어올라가는 것도 좋다. 콘크리트 포장길이지만 차량 통행이 거의 없어서 한적할 정도다. 택시를 타고 내수전 일출전망대 입구까지 가면 훨씬 발품을 덜 수도 있다. 이 곳 전망대에 올라서면 울릉의 동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새벽에 만나는 일출이 장관이라는데 아쉽게도 일정상 해돋이 시간을 놓치고 햇살이 쨍쨍한 오후에 이 곳을 찾았다.

울릉팔경 중에 '저동어화'(苧洞漁火)가 있다. 저동항을 출발한 오징어잡이배들이 수평선 저 끝에서 집어등을 훤하게 밝혀둔 풍경이 마치 은하수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추석 무렵부터 11월까지 내수전 일출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어화 풍경이 가히 일품이라고 한다. 전망대로 오르는 길 양편에는 동백나무와 마가목이 터널을 이뤘다. 하지만 옛길에서 만나는 숲에 비할 바가 아니다.

트레킹 출발점에 서면 바다쪽으로 죽도가 보인다. 오늘 내달을 길은 줄곳 죽도를 오른편에 끼고 북쪽으로 간다. 고갯마루에서 100여m 가량 포장이 돼 있다. 일주도로 개통을 준비한 모양이다. 따가운 햇살도 잠시 뿐. 숲그늘로 들어서자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한동안 길은 내리막과 평지를 반복한다. 내수전에서 전망대 입구까지 가쁘게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서는 것이다. 길만 편평할 뿐 한 걸음만 제껴 디디면 바로 절벽에 가까운 급경사가 이어진다. 다행히 햇살 한 줌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빼곡이 들어선 나무들 덕분에 아찔한 느낌이 덜할 뿐, 만약 황량한 길만 이어졌다면 오금이 저릴 지경이다. 사람이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만큼 가파르다보니 간벌은 생각도 못한다. 나무와 나무가, 풀과 풀이 치열한 생존경쟁을 통해 숲의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햇살이 부족하다보니 산사면은 온통 고사리 천지다. 눈이 닿는 곳은 고사리로 뒤덮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울창한 숲 속에서 행여 산짐승이 뛰쳐나오지 않을까 겁이 날 지경이다. 하지만 울릉에는 산짐승이 없다. 꿩이나 토끼가 전부이고, 그나마 큰 짐승은 야생으로 도망친 산염소 정도일 뿐이다. 뱀도 없다.

길 곳곳에 숲을 알리는 표지판이 흥미롭다. 그 중 '너도밤나무'에 관한 이야기가 재미나다. 너도밤나무는 기상이변 때문에 한반도에서는 울릉에만 자생한다. 이 섬에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할 때 산신령이 나타나 산에 밤나무 100 그루를 심으라고 했단다. 섬 사람들이 심은 밤나무는 무럭무럭 잘 자랐고, 어느 날 다시 찾아온 산신령이 틀림없이 100 그루를 심었는지 확인했다. 그런데 두어번 세어봐도 99그루 밖에 안됐다. 약속을 어긴 벌을 받을까봐 섬사람들이 벌벌 떨고 있는데, 옆에 있던 작은 나무가 "나도 밤나무!"하고 외쳤다. 그래서 다시 물었단다. "너도 밤나무?"하고. 산신령의 벌을 피한 사람들이 너도밤나무를 정성스레 가꿨음은 당연지사. 지금도 울릉도 서쪽 태하령 인근에는 천연기념물 제50호로 지정된 '너도밤나무 군락지'가 있다. 그나저나 왜 밤나무를 100 그루만 심으라고 했을까?

숲길을 한참 내려가면 '정매화곡'을 만난다. 그 옛날 정매화라는 사람이 살았던 골짜기라는 뜻이다. 일주도로가 없던 시절 도동에서 북쪽 천부까지 가는 유일한 통로였던 이 길. 1962년부터 이 곳에 살던 이효영씨 부부가 1981년 떠나기 전까지 19년간, 이 길을 오가며 폭설과 폭우 속에 허기를 만나 조난당할 처지에 놓였던 300여 명을 구해준 따뜻한 미담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울릉군청은 5년 전 이런 이야기를 담은 안내판을 쉼터가 마련된 정매화곡 입구에 세웠다. 하지만 누군가 안내판에 붙은 내용을 찢어버리고 말았다.

씁쓸함을 뒤로 한 채 길을 재촉했다. 갈림길이 나오면 석포로 향해야 한다. 골짜기를 내려선 뒤 다시 한참 오르막이 이어진다. 숲은 고요하고 산새소리만이 적막을 깬다. 숨을 헐떡이며 능선에 올라서기 무섭게 다시 내리막이 이어진다. 거푸 오르고 내리지만 크게 힘들지는 않다. 어느 새 숲길은 끝나고 석포가 나온다. 포장도로가 나오면 '석포길'을 따라가야 한다. 왼편 내리막길을 택하면 죽암으로 간다. 크게 상관은 없지만 석포 독도전망대와 석포 일출일몰전망대(러일전쟁유적지)를 보려면 길을 조심해야 한다. 이 곳에선 죽도가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다가선다. 땀을 식힌 뒤 다시 길을 나서려는데 한 주민이 취재진을 보며 마을버스를 타고 가라고 했다.

일주버스는 동쪽에 있는 내수전에서 저동, 도동을 지나 남에서 서로 이어진 뒤 북쪽 천부까지 운행한다. 석포에서 천부까지 걷는 길은 포장도로여서 다소 따분할 수 있다. 시간도 1시간 이상 걸린다. 마침 천부로 가는 마을버스 막차가 도착했길래 냉큼 올라탔다. 인심 좋게 생긴 기사의 입담이 명물이다. 몇 마디 설명을 하고 나면 마치 후렴구처럼 "울릉도, 좋지요? 좋아요."를 연발했다.

작은 승합차에 승객이 꽉 차서 기분이 좋았는지 일주도로 끝에 있는 섬목까지 구경시켜 주겠단다. "울릉도는 서둘러 보면 안돼요. 넉넉잡고 열흘은 봐야 하는데, 보통 이삼일 있다가 가거든요. 그래도 괜찮아요. 다시 오면 되니까. 한꺼번에 다 보고 가면 안 올거잖아요. "울릉 사랑이 남다른 사람이다. 정류장도 따로 없고, 기사가 마음 내키는대로 섰다가 간다. 사진 찍기 좋은 곳에서 섰다가, 바닷물이 말갛게 보이는 곳에서 섰다가,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한 곳에도 선다. 시간만 허락하면 마을버스를 타고 나리분지까지 갈 수 있다.

돌아오는 길은 북면 천부리에서 일주버스를 타면 된다. 1시간이면 다시 도동에 돌아온다. 울릉 가는 배편은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아직도 일년 중 80일 가량은 날씨 탓에 배가 뜨지 못한다. 주로 겨울이 그렇다. 흰눈이 허벅지까지 쌓인다는 나리분지의 겨울을 보고싶지만 단단히 채비하지 않고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울릉이 작다고 하지만 매번 찾을 때마다 새로운 기쁨을 선물한다.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도움말=울릉군청 공보계 반재석 054)790-6064

전시장소 협찬=대백프라자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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