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름다운 삶] 자전거 수리 50년 전석조씨

"휜 바퀴 펴듯 모난 세상도 바로 펴고파"

사진 2대째 자전거 수리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사진 2대째 자전거 수리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두바퀴의 치료사' 전석조 씨. 서너평 남짓한 그의 가게에는 자전거에 관한 모든 것이 집약돼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휘어진 자전거 바퀴를 바로 잡듯이 삐뚤어진 세상도 바로 고쳐주고 싶어요."

2대에 걸쳐 50년 가까이 자전거 수리방을 운영하고 있는 전석조(65·대구 달서구 죽전동) 씨는 폭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장난 자전거를 고치느라 굵은 땀방울을 뚝뚝 흘린다,

그의 자전거 수리방은 9㎡ 남짓하다. 이리저리 널린 기름때 묻은 온갖 공구들이 이곳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하다.

"세상이 자전거 두바퀴처럼 서로 의지하며 굴러가면 정말 평화롭지 않겠어요."

서로 반목하는 요즘 세태를 꼬집는 전 씨의 인생관은 오랫동안 자전거를 수리하면서 터득하게 된 것이다.

그는 자전거 수리를 하면서 서로 보듬어 주는 세상을 꿈꾸며 '희망의 망치질'을 수없이 두드렸다.

전 씨의 고향은 경북 예천이다. 그의 부친은 일제시대부터 자전거 수리방을 운영했다. 1945년 태어난 전 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업을 잇기 위해 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웠다고 한다.

"아버지는 참 엄했습니다. 조금만 일을 잘못 해도 매로 때리곤 했습니더. 처음에는 달아나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지예."

전 씨는 어린 나이에 힘든 자전거 수리일을 배우면서 남몰래 많이 울기도 했다. 휘어진 휠을 바로잡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산소용접기는 차치하고 자전거 수리 공구가 변변치 않았지. 소나무 숯을 태우는 화롯불을 이용해 용접을 하기도 했지."

전 씨는 1960, 70년대가 황금기였다고 했다. 경제개발에 힘입어 자전거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삼천리, 삼강 등 메이커 자전거들이 도로를 누볐다는 것. 자전거가 늘어나는 만큼 자전거 고장도 많이 생겨 자전거 수리방이 호황을 맞았다.

"우리 아버지는 예천에서 자전거 수리기술이 정평이 나 있었지. 자전거 수리 기술을 배우려고 20여 명이 아버지 밑에서 기술을 연마했을 정도라니까."

아버지와 함께한 세월도 벌써 30여 년. 전 씨는 나이가 들면서 잠시 방황도 했다고 한다. 망치질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져 다른 일을 해보려고 한때 아버지곁을 떠났다. 건설현장에서 밥장사를 했지만 실패했고 이후 철공소·용접소 일을 전전했다.

1997년 외환위기(IMF)가 터지자 일감이 급격하게 줄면서 전 씨는 인생의 갈림길을 맞았다.

"내가 배운 기술이라곤 자전거 수리밖에 없지. 어쩌겠어. 그래서 이 곳에서 다시 이 일을 하게 되었지."

전 씨는 돌이켜 생각해보면 후회가 없다고 했다. 아버지가 가르쳐준 자전거 수리일이 삶의 밑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전 씨는 아버지가 쓰시던 공구 몇자루를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이 공구들은 50년이 넘어 빛은 바랬지만 휠이나 페달 축을 바루는데 여전히 유용하다.

"이 공구만 보면 아버지 생각이 절로 나요. 아버지와 함께한 30년 인생이 담겼기 때문이죠. 이들 공구들은 아버지가 직접 만드셨고 지금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어요."

전 씨는 동네에서 후덕하기로 소문나 있다. 어려운 사람에게는 무료로 자전거를 수리해주고 아이들이나 여성들이 바람빠진 자전거를 갖고 오면 직접 바람을 넣어준다.

"자전거는 관리만 잘해주면 고장이 잘 나지 않아요. 베어링 부분 등 기름칠을 정기적으로 해주면 자전거를 오래 탈 수 있죠."

전 씨는 자전거를 고쳐주고도 속상할때도 있다. 자신은 정직 하나로 살아왔는데 손님들이 간혹 수리비가 비싸다는 등 트집을 잡으면 돈을 안 받고 그냥 보내주기도 한다.

전 씨는 건강관리도 자전거 인생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칠순을 앞두고 있지만 매일 아침 자신이 사는 용산동에서 두류공원까지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산책하고 있다. 자전거를 타면서 무릎이 튼튼해져 관절 질환이 아예 없다고 했다.

전 씨는 자전거 두바퀴처럼 조화롭게 굴러가는 세상을 꿈꾸며 앞으로도 '희망의 망치질'을 계속할 계획이다.

김동석기자 dotory1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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