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임에 성공한 김범일 대구시장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이 있다. 모든 시청 공무원들이 투자유치 일선에서 뛰는 담당자로서 항상 무장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기업 하나 없고, 광역시 중 100대 기업이 없는 유일한 도시라는 '오명'을 쓴 대구의 살림살이를 대변한 말로 읽힌다. 그동안 역대 대구시장은 입만 열면 기업 유치를 공언했다. 하지만 실적은 과연 어떻게 나왔을까? 대구시의 투자유치 성적표는 몇 점일까?
◆투자유치 질이 떨어진다
대구시는 2004년 투자유치단을 신설했다. 지자체마다 너도나도 '기업 모시기'에 혈안이 된 탓이다. 2008년엔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DGFEZ)이 지정되면서 외투 기업 유치를 전담하는 DGFEZ 투자유치본부가 생겼다. 또 이듬해엔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가 대구 신서로 결정되면서 신약·의료기기 등 관련 기업 유치를 위한 전담부서도 탄생했다. 기업 유치를 위한 공식 창구만 세 군데나 되는 셈이다.
기업 유치에 달려든 공무원 수는 많지만 유치 실적은 기대 이하로 나타났다. 최근 대구시가 밝힌 '2004~2009년 대구시 투자유치 실적 현황'에 따르면 6년 동안 총 105개 업체가 대구 투자에 '골인'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기업의 총 투자규모는 2조4천683억원, 고용 규모는 2만2천497명으로 나타났다. 대구시 관계자는 불리한 투자여건과 국제 비즈니스 인프라 부족 등으로 투자유치에 많은 어려움이 있는 상황에서 거둔 성과라는 점에서 이해를 구했다.
그러나 투자한 기업의 속을 뜯어본 결과 질이 문제였다. 이 기간 동안 대구에 투자한 기업 105개 업체 중 컨택센터가 42개로 전체의 40%를 차지했다. 반면 대규모 투자를 많이 하는 외국인 투자기업은 14개(13.3%)에 불과했다. 국내 역외기업은 49개(46.7%)로 나타났다.
이재훈 영남대 교수는 "컨택센터의 유치가 많은 것은 고용 창출 면에서는 단기간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따지면 대구 경제 경쟁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며 "외국은 컨택센터가 퇴직한 노년층의 일자리로 쓰이고 있는 데 반해 우리는 경제활동인구인 젊은층, 특히 여성이 대부분이어서 생산성이 떨어지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 양해각서(MOU)만 체결했을 뿐 실제 투자로 이어지지 않은 사례도 문제로 지적됐다. 대구시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기업들과 총 45건의 '지역 투자 MOU'를 체결했는데 8건이 '감감무소식'이다.
시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대구 달성군 구지면 달성2차산단에서 대구 생산공장 기공식을 열었던 ㈜영원무역은 총 337억원을 투자해 공장 건립에 나서야 하는데 이후 지지부진한 상태"라며, "또 이시아폴리스에 1천800억원을 투입, 본사 사옥과 R&D센터를 짓기로 한 ㈜TK케미칼은 MOU 체결 후 2년이 다 됐지만 먼지만 날리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투자가 거의 없다
최근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과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라는 선물을 연달아 받은 대구엔 외투기업의 유치라는 또 하나의 숙제가 생겼다. 이들 부지가 외투기업용이라는 것도 있지만 외국인 직접투자가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 역시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대구경북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대구경북 외국인 투자현황과 투자유치 전략'이라는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인 직접투자는 ▷미시경제적으로 기술, 경쟁, 전후방 연계 등을 통한 생산성 제고 효과와 수출증진, 투자촉진, 생산증대 유발 ▷거시경제적으로 외국자본 유입으로 국내투자와 자본형성이 증가해 생산 및 고용 증진 ▷국제무역에서 수출과 수입을 증대시켜 무역수지 증대 등의 효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수도권 지역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전국의 외국인 투자기업 수를 지역별로 조사한 결과, 전체의 85.6%가 서울(60%), 경기(18.1%), 인천(7.5%) 등 수도권에 집중됐다. 대구는 전체의 1.6%에 불과했다.
대경연 이기동 연구원은 "그나마 대구에 투자한 외투기업은 대부분 도·소매업(64.6%)이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제조업 중심의 수도권과는 질적인 면에서도 차이를 보였다"며 "동남권 신공항 유치, 외국기업 전용공단 설립 등 다각적으로 외투기업을 유인할 수 있는 여건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대구만의 유치 전략을 찾아라
최근 세종시 수정안의 폐기로 대구시의 대기업 유치 전선이 한결 밝아졌다. 김상훈 시 경제통상국장은 "그동안 삼성, SK 등과 접촉은 계속했으나 세종시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버티고 있어서 원론적인 대화 수준에 머물렀지만 앞으로는 분위기가 다를 것"이라고 했다.
세종시에 2조5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던 삼성그룹은 최근 다른 부지를 물색하거나 기존 공장의 여유 부지를 활용하는 등 '세종시 대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SK나 한화, 웅진 등 다른 세종시행 기업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시 한 관계자는 "국가산업단지에 원형지 수준의 용지 공급이나 강력한 세제 혜택 등 세종시에 버금가는 획기적인 인센티브를 준비해 이들 기업 유치에 힘쓰고 있다"며 "특히 달성2차산단 외국인 투자지역, 성서5차산단 대기업용 부지, 국가산단, 대구경북의료단지, 경제자유구역 등 대기업 및 다국적기업 유치용 '그릇'을 많이 마련해둔 대구의 상황에서 지금이 '대기업 하나 없는 도시'라는 이미지를 벗을 절호의 기회"라고 했다.
하지만 기업의 눈에 '투자할 만한 매력이 없는 그저 그런 도시'로 비치는 만큼 대구만의 차별화된 유치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신경섭 DGFEZ 투자유치본부장은 "DGFEZ와 대구경북의료단지, 국가산단 등은 저마다 필요한 기업군이 다른 만큼 똑같은 전략으로 나설 경우 실패할 확률이 높다"며 "해당 부지의 기능에 맞는 맞춤형 전략과 정보 공유를 통해 지속적으로 유치 타깃 기업들과의 대화 창구를 활짝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구동모 경북대 교수(경영학부)는 "삼성, SK 같은 대기업을 모셔오기 위해서는 단순한 투자전략으로는 힘들고, 대구만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한 투자 대비 효율성, 국가 프로젝트 여건, 우수인재 공급 약속, 파격적인 부지 제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차별화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대구 수성갑)은 "대구경북이 그동안 대기업 유치에 목을 맸지만 번번이 실패한 것은 노력보다는 정치권에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하려 했던 안이한 자세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기업이 올 수 있는 여건을 갖추거나, 올 수밖에 없는 제안을 잘 꾸며야 합니다. 요즘 기업이 어떤데, '이곳은 이렇게 매력적인 투자처다'라고 설득할 근거도, 전략도 없는 곳에 오겠어요?"
◆투자 전략 변화 필요
사람들은 대구를 흔히 중소기업이 많은 도시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대구테크노파크 정책기획단이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조사한 '대구지역 기업 데이터베이스 현황'에 따르면 대구는 소(小)기업 도시였다. 대구에 소재한 1만4천359개 업체를 대상으로 설문 및 면접조사한 결과, 응답한 1만454개 업체 중 종업원 수가 10인 미만인 업체가 전체의 60%가량인 6천261개나 됐다. 종업원 5인 미만의 영세 업체도 3천834개로 전체의 36.7%를 차지했다.
매출액별로 봤을 때도 응답한 8천32개 업체 중 연간 매출 10억원 미만 업체가 전체의 56.1%(4천506개)로 절반 이상이었다. 연간 매출액이 5억원 미만인 기업도 전체 응답 업체 중 35.3%(2천832개)였다. 반면 연간 매출 100억원 이상의 기업은 405개, 전체의 5%에 불과했다.
이재훈 교수는 "영세한 기업이 많은 대구의 경우 거들떠보지도 않는 대기업에 목을 매는 것보다 경쟁력 갖춘 '알짜' 중소기업 유치가 오히려 지역 기업들에 더 득이 된다. 대기업 유치에만 목을 매는 대구시의 기업 유치 방향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자문단(가나다 순)
김상현 영남대 경영학과 교수
김영철 계명대 경제학과 교수
김형기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
안재홍 녹색소비자연대 사무처장
이재훈 영남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이한구 한나라당 국회의원
조광현 대구경실련 사무처장
조진형 지방분권운동 상임대표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경선 일정 완주한 이철우 경북도지사, '국가 지도자급' 존재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