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가 기회라면 지금 대구경북은 위기이자 기회를 동시에 맞고 있다. 권력 농단의 사례로 공격을 당하는 영포회 파문의 본질은 대구경북의 약진에 있다. 정부 핵심 요직을 TK가 다 차지한다는 불만이 영포회 파문의 진원이다. 이명박 대통령 이후 대구경북의 약진은 두드러진다. 사람 찾기가 어렵던 시절과 달리 요직의 지역 출신 명단이 줄을 잇고 있다. 물론 대부분은 능력에 걸맞은 제값을 받고 있지만 서울을 비롯한 타 지역 사람들의 눈에는 특혜로 비쳐진다.
영포회 파문으로 지역 사람들은 행여 불똥이 튀지나 않을까 걱정한다. 불만을 달래느라 TK 사람들을 후순위로 돌릴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김영삼 정부 이래 15년간 숨죽이고 살아야 했던 TK 공직자들에게는 차별의 쓴맛과 고통이 생생하다. 그러기에 그들의 우려는 분명히 위기다. 그러나 정작 대구경북의 위기는 지금이 아니다. 오늘 많이 얻은 대가로 치러야 할 내일의 불이익과 차별이 대구경북의 앞날에 드리워진 먹구름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서 TK는 요직을 독차지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 불만의 결과가 이후 정권의 외면으로 이어진 것이다. 승진과 보직에서 밀리는 것은 차치하고 아예 동향 사람들과의 만남조차 눈길을 피해야 했다. 본적을 바꿔야 할 정도의 지역 차별을 당했다는 전라도의 사정까지는 아니지만 이러다 TK는 아예 싹이 잘리고 우리 아이들이 대구경북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억울한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확산됐다.
불과 얼마 전의 위기가 다시 반복될 조짐이 엿보인다. TK에 대한 전국적 반발이 재연될 소지가 적잖다. 영포회 파문은 포항 영일이 아닌 TK에도 남의 일이 아니다. 정부나 공기업 등의 임명직과는 달리 여의도 국회에서 대구의 목소리가 작게 들리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김영삼 정부 이래 약진한 부산경남은 여전히 사람이 넘쳐난다. 그런데도 그다지 큰 반발을 사지도 않는다. 실속도 없으면서 큰소리만 치거나 무조건 우리끼리를 외치지 않은 덕도 있지만 한 사람이 표적이 되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다. 공격 대상이 분산된 덕분에 집중 공격에서 피해가고 있다. 노무현 정권시절 문재인 대통령실장은 5년 내내 권력의 핵심에 있었지만 월권이나 권력 농단의 시비에 휘말리지 않았고 노무현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에게서도 호감을 받는다. 있어야 할 곳은 빠짐없이 있었지만 권력을 쫓아가지 않았던 그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대통령의 참모는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가 아니다. 참모가 권력을 휘두르거나 실세란 지목을 받으면 적도 많아진다. 불만의 표적이 되고 집중 공격을 받게 된다. 앞만 바라보고 달리다 보니 공격을 당하면 방어할 능력도 없다.
영포회의 논란은 포항 출신이 아닌데도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에게 집중된다. 박 차장이 보좌관으로 모신 대통령의 형도 거명된다. 두 분 다 억울한 면이 많다. 대통령이 서울시장을 할 땐 정무국장을 맡았다. 일을 맡기면 미덥게 했다. 대통령의 신임은 당연했다. 미덥다 보니 대통령도 이것저것 일을 많이 안긴다. 그러나 일을 많이 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온갖 일에 나서면 월권 시비가 따른다. 잘한다고 미덥다고 많은 일을 맡기면 사람을 키우는 대신 죽이게 된다. 정권 초기에 이어 다시 되풀이된 그에 대한 공격은 일을 열심히 한 결과일 수도 있다. 세상이 다 아는 대통령의 측근이라면 그가 하는 일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임기가 정해진 대통령이 언제까지나 챙겨주지도 못한다.
지역 출신 고위 공직자는 최근 대구경북을 이렇게 진단했다. '너무 약삭빠르게 처신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입으로는 보수의 원류라고 하면서도 남에 대한 배려보단 자기 잇속에 너무 급급하다.' 한번쯤 새겨볼 말이다. 정권이 우리 편이라고 내 몫만 찾다간 돌아올 결과는 뻔하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면 궁즉변 변즉통(窮卽變 變卽通)의 가르침대로 우선 변해야 한다. 큰소리를 내기 전에 먼저 귀를 열어야 한다. 내 것이라고 허둥지둥 과식하면 배탈이 난다. 권력은 나눠야 다시 가질 수 있다.
徐泳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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