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활의 고향의 맛] 개장국

개는 음력을 모른다. 양력은 알까마는 음력을 모르니 초복이 며칠 남았는지 알 턱이 없다. 그래서 맞아 죽는다. 염소는 낯선 사람이 왜 소금 한 줌을 입에 넣어주는지를 알지 못한다. 캑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망치를 맞고 쓰러진다. 더위를 피하려 소나무 그늘 밑에 앉아 있는데 누렁이 한 마리가 내 앞을 지나간다. 복날을 용케 피했구나.

나의 의식 달리기는 카메라 셔터와 같다. 무엇을 보는 순간 그것이 망막에 찍히기만 하면 그냥 달린다. 헐떡거리며 달려오고 보니 고향집 앞 넓은 빈터다. 사람들이 빙 둘러서 있고 복판에는 두루룩 말린 멍석이 놓여 있다. 이윽고 한 청년이 앞발에 힘을 잔뜩 준 채 질질 끌려오는 황구 한 마리의 목줄 끈을 내려놓는다.

##"멍이 많이 들어야 고기가 맛있어"

다른 청년이 목 끈을 미리 마련해둔 다른 끈에 연결하여 잡아당긴다. 개의 머리통이 멍석 구멍으로 처박힌다. 오늘이 초복이다. 장정이 몽둥이를 들고 머리가 들어 있는 멍석 위를 갈기니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동네 어른들도 돌아가면서 지게 작대기로 두들겨 팬다. "멍이 많이 들어야 고기 맛이 있어." 나는 너무 무서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깨갱"하는 마지막 비명이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눈이 제대로 감기지 않는다.

황구의 주검은 짚단 위에서 각이 뜨였다. 예리한 칼로 벗겨진 껍데기 끝에 달린 꼬리는 이젠 꼬리가 아니다. 반가워도 흔들 수 없다. 죽은 개에 달려 있는 꼬리는 주인을 마중할 수도, 배웅할 수도 없는 그냥 개꼬리일 뿐이다. 아무 쓸모없는 개 꼬랑지.

##핏물 뺀 고기, 끓는 양은솥으로

핏물을 뺀 고기는 설설 끓는 큰 양은솥에 담긴다. 솥은 솔가지에서 옮겨붙은 장작불 기운으로 증기기관차가 달리듯 연방 콧김을 내뿜는다. 모두가 입맛을 다시며 살평상에 앉아 있다. 막상 개의 주검에 대해 슬프게 울어주는 건 양은솥의 눈물, 그 눈물뿐이다. 세상은 잔인하고 야박하지만 더러는 솥의 눈물과 같은 위안이 있고 기도가 있어 그래도 다행이다.

담 밑에선 나무 등걸 시렁을 만들어 껍데기의 털을 태운다고 부산하다. 개장국에는 '화근내'가 나는 껍질을 넣어야 제대로 맛을 낸다. 좀처럼 나서지 않는 어머니도 괜히 바쁘다. 추렴하여 끓인 개장국을 다섯 자식들에게 골고루 먹이자면 몸 부조를 앞세워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못 먹을 것 같더니…밥 말아 후루룩

드디어 어머니가 배당을 받아오신 모양이다. 작은 솥에 국물과 '거섭'(대파 따위 나물의 총칭)은 가득한데 개다리도 갈비도 보이질 않는다. 알고 보니 고기는 별도로 발라내 추가로 배분하는 듯했다. 멍석에서 몽둥이질을 할 때는 도저히 못 먹을 것 같았는데 맛을 보니 그게 아니었다. 어쩌다 씹히는 '화근내' 나는 껍데기 맛은 귀신도 반할 만큼 맛있었다.

처음 국 한 그릇은 후루룩 그냥 마시고 두 번째 국은 밥 한 술을 말아 먹었더니 배가 남산만해졌다. 고깃국을 먹어본 지가 언제였던가. 지난봄, 병든 소고기국을 먹어본 후 아마 처음일 게다. 개장국이 분배되고 나니 이웃 어른들도 보이질 않는다. 모두가 개장국이 들어 있는 냄비나 양은솥을 따라 줄래줄래 각자 집으로 돌아가셨겠지.

개를 잡을 때부터 지금까지 다른 소리는 전혀 듣지 못했다. 보름달만해진 배를 안고 팔을 목침 삼아 살평상에 누웠으니 무슨 소리가 들린다. 감나무에선 매미 우는 소리가 낭자하다. 늦은 점심을 먹었는데 벌써 저녁답이다. 역광 속 호박잎들이 넌출거리는 서쪽 담의 후광이 무척 아름답다.

'저녁 볕 들창에 환하고 매미 소리 나무에 가득하구나'(斜陽明窓 蟬聲滿樹, 조선조 이언진의 시)란 시 한 수가 떠오른다. 금강산도 밥 먹고 나서 구경하라더니 이렇게 개장국에 밥 한 술 먹고 나니 세상의 아름다움이 모두 소리로 들리네. 진짜 소리로 들리네.

수필가 9hwal@hanmail.net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