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군 지보면 신풍리 윗마을 끝자락에서 귀향 부부가 꾸민 미술관이 이달 10일 문을 열었다.
'갤러리 윤'이라 이름 지은 이 미술관에는 귀향 부부의 팔순 노모에 대한 지극한 '효'가 스며 있다. 뒤늦게 결혼한 이들 부부의 삶에 대한 고민과 한곳을 바라보며 서로 보듬는 삶을 살아가려는 부부애가 녹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이 미술관에는 양반가로 시집와 평생을 살아오면서 가슴 깊은 곳에 한 움큼씩 응어리를 안고 살아오던 이 마을 할머니들의 고민과 삶이 그림으로 나타나고, 할머니들이 그동안 잊고 지내왔던 어릴 적 추억과 고향에 대한 향수들이 새록새록 피어나는 건강함이 묻어 있다.
'갤러리 윤'은 부산 지역 병원에서 근무하던 윤장식(53) 씨와 경남 함안에서 미술교사와 미술관 큐레이터로 활동했던 부인 이성은(47·관장) 씨가 함께 꾸몄다. 이들은 지난해 6월 고향인 이곳으로 돌아와 1년여에 걸친 작업 끝에 10일 문을 열고 마을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으로 '할매가 그릿니껴?'라는 제목의 개관 기획전을 마련하고 있다.
8월 30일까지 전시될 할머니 그림전에서는 파평 윤씨 집성마을인 신풍리 윗마을과 아랫마을에 사는 할머니 16명의 그림으로 전하는 이야기들을 가슴으로 들을 수 있다. 그림에 대해 배우지도 못했고 붓이나 크레용도 처음 손에 잡아 보지만 할머니들의 그림에는 그들이 쏟아 놓은 삶의 모습이 아름답고 소중하게 담겨져 있다.
이성은 관장은 "지난 2005년쯤 시어머니를 부산으로 모셔 갔지만 도회지 생활에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은 채 우울증 증상까지 보이셨다"며 "어머니의 불편함이 자칫 가정불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남편과 의논해 고향마을로 귀향을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이들 부부의 귀향은 오로지 팔순을 넘긴 노모의 편한 여생을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 마을에 홀로 살던 할머니 한 분이 우울증으로 자살했다는 귀향 첫 소식에 이 관장은 좀 더 의미 있는 귀향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미술치료사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던 이 관장은 할머니들에게 미술 심리치료를 통해 할머니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경로당에서 화투를 치거나 TV 보는 재미에 빠진 할머니들에게 그림 그리는 재미를 가지도록 했다. 쉽지 않았지만 칭찬과 부대낌, 아이 같은 어리광, 말벗에다가 빵과 과자를 대접하는 등 온갖 노력을 다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단순한 선(線)이었던 할머니들의 그림은 풀·사람·자연에다 자신들의 어릴 적 추억과 향수, 날이 갈수록 자신들의 삶과 고민들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수십 년간 여인으로 꽁꽁 숨겨왔던 가슴속 고민들을 풀어내기 시작한 것.
이 관장 부부의 어머니인 구암댁(85·김성운) 할머니는 '나뭇가지에 집을 지은' 그림을 그려 2대독자로 귀하게 키워온 아들이 자신 때문에 직장을 버리고 귀농한 불안감과 미안함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김실네(59·권주희)는 팔·다리가 불편한 자신과 모든 일을 처리해주는 남편의 든든함을, 운골댁(78·김혜순)은 어릴적 살았던 기와집을 그려내 낙천적 성격을 나타내고, 소산댁(80·김말수) 그림에는 언제나 학교와 학생들을 표현한 작은 점들이 줄줄이 찍혀 있어 배우지 못한 한을 담고 있다.
운골댁 김혜순 할머니는 "뭐 그림이랄 게 있나? 그냥 낙서해 놓은 긴데 액자꺼정 맹글어 주이께네 얼매나 고마운동. 우리 할마시들이 요새 새로 사는 재미가 붙은기라"라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이 관장은 "할머니 그림을 판매해서 용돈을 드릴 생각이다. 앞으로 다문화가정 결혼이주여성들과의 그림 그리기도 시도해볼 작정"이라며 "좀 더 아름답고 의미 있는 갤러리가 되도록 주변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했다. 관람문의 054)653-9329. http://www.galleryyoon.com
예천·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