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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의 재발견…다양한 디자인, 여름철 홍보수단 각광

대구 중구 덕산동의 한 화방 앞에 진열된 깜찍한 태극선들이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대구 중구 덕산동의 한 화방 앞에 진열된 깜찍한 태극선들이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에어컨이 보편화돼 선풍기마저 용도가 줄어드는 요즘 경기침체와 복고 열풍을 타고 부채가 새로운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전통이란 한 가지 색깔을 버리고 시대적 흐름에 맞게 다양하게 재탄생하고 있는 것. 단순히 부치는 용도를 넘어 톡톡 튀는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기업 홍보용으로 활용되는 것은 물론 수십만원짜리 작품부채까지 등장해 선물용으로 호평받고 있다.

◆부채의 진화

부채는 여름철 홍보 수단으로 인기가 높다. 온라인으로 부채를 파는 '판촉물 1번가' 김창근 대표는 "매년 다양한 형태의 플라스틱 부채가 나오는데다 가격적인 측면과 실용성이 뛰어나 여름 전후로 해서 기존 학원이나 은행뿐 아니라 아파트, 모델하우스 등 수요처가 계속 다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원하는 색상과 문구를 자유자재로 넣을 수 있고 언제 어디서든 손에 들고 다니기 때문에 홍보효과가 좋아 수요가 꾸준히 증가한다는 것이다.

최근 플라스틱 부채의 디자인은 변화무쌍하다. 매년 여름 새로운 디자인의 제품이 쏟아진다. 과거처럼 둥그런 형태뿐 아니라 팬시 성향의 부채들도 많이 선보이고 있다. 딸기나 수박 등 깜찍한 과일 형태의 부채는 물론 2단과 3단, 5단, 8단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접을 수 있는 부채 등 올해 시중에 유통되는 종류만 50여 종에 이른다. 김창근 대표는 "대체로 원형파도부채나 동글이부채, 긴자루PP부채가 잘 나가지만 최근 들어서는 특이한 디자인이 가미된 부채들도 적잖게 나간다"며 "톡톡 튀는 디자인을 통해 조금이라도 홍보효과를 높이려는 전략과 맞물려 디자인이 다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작품으로서의 부채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아무 모양이 없는 합죽선이나 방구부채를 대량으로 구매한 뒤 직접 그림을 그려 판매하거나 지인에게 선물로 주는 경우가 많다. 특이한 것은 아무리 유명한 작가가 그림을 그린 부채라도 가격이 50만원을 잘 넘지 않는다는 것. 대구서화사 김장식 사장은 "부채는 작품이라도 하나의 소모품으로 생각해 높은 가격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전통부채 수요는 감소

대구 중구 덕산동의 한 화방. 가게 앞에 진열된 알록달록한 부채들이 행인들의 눈길을 잡아당긴다. 색색의 자그마한 태극선들이 깜찍하기까지 하다. 지나가다 이것저것 부채를 만져보던 김숙희(26·여·대구 남구 대명1동) 씨는 "보통 둥그런 플라스틱 부채만 접하다 이처럼 아기자기한 전통 부채를 보니 신선하다"고 말했다. 이곳은 합죽선과 태극선 등 10여 종의 다양한 전통 부채를 팔고 있다. 가격대도 1천원짜리부터 3만원짜리까지 천차만별이다. 김장식 사장은 "합죽선은 주로 예술인들이 그림을 그리기 위한 목적으로 구입하고 태극선은 외국으로 유학을 가려는 학생들이 많이 사간다. 나이 지긋한 층을 제외하면 부치기 위해 부채를 사는 사람은 드물다"고 말했다. 전통 부채는 수요가 계속 줄어 지금은 60~70%가 중국산이다. 김장식 사장은 "2만, 3만 원짜리는 전주 공장에서 갖고 오지만 나머지는 중국산이다"고 했다.

전통 부채를 선물용이나 홍보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대량 구매가 이뤄지고 있지만 그 수요는 제한적이다. 한 온라인판촉물 업체 관계자는 "주로 대기업에서 직원들이나 고객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대량 구매를 하지만 예전같지 않다"고 말했다.

◆시원한 부채질 방법

부채는 무작정 부치는 것보다 상황에 따라 달리 사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요즘 공공기관에 가면 실내 온도가 예전같지 않다. 시원하다는 느낌보다 다소 무덥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정부의 에너지절약 정책에 따라 실내온도를 26℃ 이상으로 맞추기 때문이다. 이때 부채를 사용하면 한결 시원하다. 공기 자체가 후텁지근하지 않으므로 약간의 부채질로도 쾌적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가정에서도 에어컨 설정온도를 다소 높게 하고 부채를 함께 사용하는 게 에너지 절약에 훨씬 효율적이다.

에어컨이 없는 실외에서는 부채질을 해도 좀처럼 시원하지 않다. 이럴 때는 물을 이용하는 것이 지혜다. 플라스틱이나 비닐 부채에 물을 묻혀 부채질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차가운 물방울이 방울방울 얼굴에 튀어 그냥 부채질할 때보다 훨씬 시원하다. 세수를 한 뒤 곧바로 수건으로 닦지 않고 부채로 서서히 말리는 것도 몸의 열기를 식히는 방법이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팔덕선·팔용선의 유래

①바람을 일으켜 더위를 쫓았고 ②방석으로 쓰였고 ③ 밥상 구실을 했고 ④ 머리에 이고 물건을 날랐으며⑤ 해를 가리고 ⑥ 비를 막았고 ⑦ 파리나 모기를 쫓았으며 ⑧ 얼굴을 가리는 구실을 했다.

부채를 팔덕선 이나 팔용선 이라고 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 이다. 쓰임새가 많았기에 선조들은 항상 손에 부채를 쥐고 다녔다.

▷팔덕의 도구=부채는 예부터 쓰임새가 많아 팔덕(八德)의 도구로 예찬받았다. 첫째, 바람을 일으켜 더위를 쫓았고 둘째, 방석으로 쓰였다. 셋째, 밥상 구실을 했고 넷째, 머리에 이고 물건을 날랐으며 다섯째, 해를 가렸다. 여섯째, 비를 막았고 일곱째, 파리나 모기를 쫓았으며 마지막으로 얼굴을 가리는 구실을 했다. 부채를 팔덕선(八德扇)이나 팔용선(八用扇)이라고 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쓰임새가 많았기에 선조들은 항상 손에 부채를 쥐고 다녔다.

부채는 소유한 사람의 위엄을 나타내기도 했다. 특히 양반들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무기로 사용하거나 표정을 감출 때 부채를 사용했다. 단오 때는 윗사람에게 상납도 했다. 올해도 부채의 살랑 바람처럼 잘 대해달라는 뜻이었다. 조선시대에는 단오가 되면 궁중에서 신하들이 단오첩을 올리고, 공조와 지방에서 부채를 만들어 임금에게 진상하면 임금이 그것을 신하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한다.

▷부채는 순우리말=부채는 얼핏 한자어처럼 보이지만 사실 순우리말이다. 바람을 일으킨다는 동사 '부치다'의 '부'와 파리채, 뜰채처럼 손잡이 막대를 이르는 명사 '채'가 합해져 만들어진 명칭이다. 부채를 뜻하는 한자는 선(扇)이다. 이는 삽짝문을 뜻하는 호(戶)와 새의 날개깃을 뜻하는 우(羽)가 조합된 문자다. 새의 깃을 삽짝문처럼 엮어 만든 게 부채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영어로는 '팬'(fan)이다. 팬은 손으로 흔들어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로, 곡물에서 겉겨와 이물질을 없애는 농기구인 풍구와 풍선기를 가리키는 반누스(vannus)가 어원이다.

▷쥘부채는 우리나라가 최초=쥘부채인 합죽선이 처음 만들어진 곳은 우리나라다. 중국의 곽약허가 1076년에 편찬한 '도화견문지'(圖畵見聞誌)에는 "중국에 오는 고려 사신들이 접부채를 사용했는데 산수나 화조, 인물 등을 그려 매우 아름답고 신기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송나라의 서긍도 "고려인들은 한겨울에도 부채를 들고 다녔다"고 전한다.

▷방구부채와 접부채=부채는 크게 방구부채와 접부채로 나뉜다. 방구부채란 부챗살에 깁이나 비단, 종이를 붙여 만든 둥근 형태의 부채로 둥근 부채라고 한다. 방구부채에는 부챗살의 모양과 부채 바탕의 꾸밈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와 명칭이 있다. 부챗살의 끝을 휘어 오동나무 잎맥(脈) 모양으로 만든 오엽선(梧葉扇), 부챗살의 끝을 연잎의 연맥 모양과 비슷하게 휘어서 만든 연엽선(蓮葉扇), 파초잎 모양으로 만든 파초선(芭蕉扇), 가운데 태극 모양을 그려 만든 태극선(太極扇), 공작의 깃으로 만든 공작선(孔雀扇), 혼례 때 신부가 얼굴을 가리는 데 사용한 것으로 홍색을 바른 홍선(紅扇) 등 10종이 넘는다.

접부채는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접부채 또한 부챗살의 수와 부채꼭지의 모양 등에 따라 여러 명칭이 있다. 대껍질로 부챗살을 만들고 종이를 붙여 만든 부채로 오늘날 가장 많이 알려진 합죽선을 비롯해 마디가 있는 대를 사용한 죽절선 등 다양하다.

전창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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