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은 연봉순 아니다 vs 배부른 소리하지마라

억대 수입과 삶의 만족도, 함수관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월급은 그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하나의 잣대다. 인격과 일의 성격 등을 떠나 월급을 많이 받는 사람은 적게 받는 사람에 비해 유능한 사람으로 비쳐진다. 월급쟁이의 입장에서 보면 월급은 생명수와 같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가족을 부양하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급은 그 중요성에 비해 그리 좋은 대접을 받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쥐꼬리' '통장에 스쳐 지나가는 것' '체불' 등 월급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부정적인 쪽이 많다.

1970, 80년대 굴곡진 삶을 살아온 어르신들은 가끔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시절'이라는 말을 넋두리처럼 늘어 놓는다. 가난은 곧 불행이라는 생각이 등식화돼 있는 까닭에 참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분명 과거에 비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고 억대 연봉자들도 넘쳐나는데 왜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지수는 높아진 것 같지 않을까. 월급 수준과 행복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

◆많이 벌면 행복해질까

자신의 월급에 만족하려면 얼마를 받아야 할까. 월급쟁이들이 꿈의 연봉 1억원을 돌파하면 행복해질까. 지난해 귀농한 김한솔(37) 씨는 서울의 한 유명 게임회사에서 연봉 1억원을 받던 잘나가는 월급쟁이였다. 하지만 그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왔다. 돈 때문에 잃어버린 행복을 찾기 위해서다. 그는 "돈은 많이 벌었지만 서울 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많이 벌기 위해 더 많이 뛰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아이들이 아버지를 낯설어했을 정도다. 적게 벌고 적게 쓰더라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유 속에서 삶의 행복을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근 영국 워릭대학 크리스토퍼 보이스 교수는 영국인 1천 명을 대상으로 7년 동안 수입과 삶의 만족도를 추적 분석한 결과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과 만족감은 소득의 크기와 비례하지 않았다고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 저널에 발표했다. 그는 "누군가 더 큰 집을 사게 되면 현재 사는 집에 불만을 갖게 되고 더 큰 집을 쳐다보게 된다. 돈을 인생의 목적처럼 추구하는 사람은 행복해지는 정도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교는 불행의 씨앗

직장인 박모(43) 씨는 친구들과의 모임에 나가면 월급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는다. 간혹 친구들이 월급 문제를 꺼내면 자신이 나서서 화제를 바꿔버린다. 월급 이야기만 나오면 초라해지기 때문이다. 대학 다닐 때 박 씨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그 덕에 졸업을 앞두고 여러 곳으로부터 취업 제의를 받았다. 진로를 고민하다 그는 돈보다 적성을 선택했다. 월급은 적더라도 일이 재미있어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박 씨는 살다 보니 자신의 선택이 옳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고 했다.

그는 "생활은 이상이 아니고 현실이다. 박봉을 쪼개 쓰는 아내를 보면 늘 미안한 마음이 든다. 사회 생활을 하다 보니 월급을 비교하지 않고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 대학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던 친구들이 나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는 것을 보면 솔직히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수입을 비교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행복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지난 5월 프랑스 파리경제학교 앤드류 클라크·클라우디아 세닉 교수팀이 '이코노믹 저널'(Economic Journal)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유럽 24개국 노동자 1만9천여 명 가운데 4분의 3이 자신과 타인의 수입을 비교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비교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삶의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 낮은 점수를 매겼다는 것. 연구팀은 "비교 정도와 주관적인 행복감 사이에는 부정적인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월급이 느는 만큼 행복지수도 올라갈까

보험회사 영업사원인 김순옥(47·여) 씨는 지난해 기본급과 성과급을 합쳐 9천만원의 소득을 손에 쥐었다. 한푼이라도 절세하기 위해 소득세 신고를 회사에 맡기지 않고 세무사를 통해 하고 있다. 원래 그녀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남편 사업이 여의치 않자 8년 전 시작한 것이 보험영업이었다. 처음 보험영업을 시작할 때 그녀는 4천만원만 벌어도 대성공이라고 생각했다. 목표치를 훌쩍 넘어 연봉 1억원 돌파를 눈앞에 둔 그녀는 월급이 늘어난 만큼 행복지수도 증가했을까.

김 씨는 "정신없이 살다 보니 월급 때문에 특별히 행복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며 살았다. 돌이켜 보면 월급날 잠시 기뻤고 이내 잊어 버렸던 것 같다. 오히려 연봉이 8천만원을 넘어서자 1억원을 돌파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또 다른 욕심이 생겨났다"고 했다.

수입 증가가 행복 증대로 연결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런던 정치경제대학 리처드 레야드 교수는 익숙함과 여가 부족 등을 원인으로 꼽는다. 레야드 교수는 "사람들은 높아진 생활 수준에 금방 적응하기 때문에 소득 증대로 인한 생활수준 향상을 이내 당연한 것으로 여겨 향상이 주는 만족감을 곧바로 잊어버린다. 번 돈이 가져다주는 가치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빡빡하게 산다면 아무리 수입이 많아도 행복하지 않다. 행복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벌이를 행복과 맞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상대적 빈곤감은 배 부른 소리

월급은 분명히 행복지수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빈곤층 또는 빈곤층에 접근한 계층일수록 두둑한 월급 봉투에 대한 갈망은 누구보다 간절하다. 절대적 빈곤감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에게 상대적 빈곤감을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직장인 신모(38) 씨는 소위 말하는 '워킹 푸어'(오랜 시간 열심히 일하는데도 낮은 임금 때문에 생계유지조차 제대로 하기 힘든 저소득 노동자 계층)다. 그의 한 달 월급은 200만원이 채 안 된다. 이것저것 떼고 나면 손에 쥐는 것은 150만원을 조금 넘는다. 다섯 살 된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세 식구가 살기에 늘 돈이 부족하다. 남들 다 한다는 외식조차 그에게는 사치다. 미래를 위한 저축은 상상도 못한다. 집을 사는 것도 일찌감치 포기했다. 지난봄에는 집 주인이 전세금을 올려 달라는 바람에 부랴부랴 이사를 가야 했다.

그는 "딸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아내가 부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혼자 벌어서는 생활이 안 되기 때문이다. 돈 대신 여유를 선택한다는 것은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 되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돈에 쪼들려본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어보는 것이 소원이다"라고 말했다.

◆희망은 또 다른 월급

직장생활 15년째인 서모(43) 씨는 월급과 보너스, 수당 등을 모두 합쳐 한 달 평균 300만원을 받는다. 자영업을 하는 임윤성(42) 씨의 소득도 한 달 평균 300만원 정도다. 같은 돈을 벌지만 두 사람의 만족도는 천양지차다. 이유는 뭘까.

서 씨의 직장 생활은 불안하다. 지난해 구조조정을 통해 동료들이 무참히 잘려나가는 것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는데 회사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차하면 또 한번 구조조정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돌고 있다. 서 씨는 "내 월급은 은행 다니는 친구 월급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모든 직장인들이 월급 조금 더 받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은 아니다. 월급은 적더라도 비전이 있으면 일할 의욕이 난다. 하지만 지금 직장생활은 그렇지 못하다. 마치 먹고살기 위해 직장을 다니는 꼴이 돼 버렸다"고 했다.

반면 임 씨는 일하는 것이 즐겁다. 그는 제조업체에 공구를 공급하는 영업사원으로 오랫동안 일하다 2년 전 경험을 살려 친구와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 10년 이상 관련 일을 하며 쌓은 넓은 인맥 덕분에 개업 2년 만에 월 매출 1억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경기 불황 속에서도 매출은 꾸준히 늘었다. 그는 대출금, 사무실 운영비, 공구 구입비 등을 빼고 남은 이익을 친구와 공평하게 나눠 갖는다. 임 씨는 "직장생활할 때보다 소득이 줄었다. 특히 초창기 한 달 수입은 100만원을 넘지 못했지만 불만이 없었다. 열심히 일한 만큼 성과가 나고 있어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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