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순, 김수철 사건을 비롯해 밤낮없이 터지는 아동 성폭행 사건 때문에 자식 둔 부모들이 좌불안석이다. 최근 대구경북에서도 유사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불안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 학교 주변과 아동들이 통행하는 곳에 설치된 CCTV가 전보다 수십 배 늘었고 경찰의 학교 주변 순찰이 강화되기는 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발생하는 아동 성범죄 소식에 무력감마저 든다.
그렇다고 두손 두발 놓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 최근 지역에서는 아동 성폭행을 예방할 수 있는 프로그램 보급과 아파트 부녀회를 중심으로 한 등하교 도우미 등이 활성화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성범죄 예방 노력들과 대처법에 대해 소개한다.
◆아동성폭행의 그늘
초등학교 3학년인 영희(가명)는 한창 뛰어놀 나이지만 집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몇 달 전 이웃집 아저씨로부터 심한 구타와 함께 성폭행을 당한 후부터다. 이혼한 어머니와 함께 생활해왔던 영희는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어머니가 야간근무에 들어간 사이 평소 잘 알던 이웃집 아저씨 집에 놀러갔다가 봉변을 당했다. 그 후로도 아저씨의 성폭행은 계속됐지만 "엄마에게 말하면 혼내겠다"는 아저씨의 말에 혼자서 속앓이를 해왔다. 다행히 영희를 목욕시키다 성폭행당한 사실을 눈치 챈 할머니의 신고로 이웃집 아저씨의 파렴치한 행위가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이미 영희의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된 상태. 현재 경북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영희는 수시로 불안과 우울 증세를 호소하고 있고 심지어 급성질염까지 생긴 상태였다. 공부는커녕 집까지 멀리하는 바람에 집에서 식사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
그러나 영희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영희의 어머니는 영희의 피해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니던 봉제공장을 그만뒀다. 비난하는 듯한 시선과 수군거림 때문에 더 이상 다니기가 힘들었다. 전세로 살던 집도 내놨다. 영희의 치료가 끝나면 집은 물론 학교까지 옮길 예정이다. 아픔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아픈 과거를 모르는 곳에 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일가족이 한순간 삶의 터전을 잃은 셈이다.
◆급증하는 아동 성폭행
13세 미만 아동 성폭력을 전담하고 있는 대구경북 해바라기아동센터에 따르면 대구경북에서 영희처럼 아동 성폭력으로 신고된 건수는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을 포함해 2006년 127건에서 2007년 235건, 2008년 267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부산경남권이 제외되기 시작한 지난해 166건에서 올해는 6월 말 기준으로 벌써 110건이 신고되는 등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늘고 있다.
대구경찰청이 집계한 13세 미만 아동 성폭력 피해건수 역시 2008년 47건에서 지난해 75건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7세 미만의 유아피해가 무려 40%에 달한다. 피해 정도도 심각해져 올해 해바라기 아동센터를 통해 경북대 병원에 입원한 아동만 8명이다. 이 중 가족, 동네 사람, 친척, 동급생 등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이 80%에 달한다.(표 참조)
더욱 큰 문제는 아동에 대한 아동의 성폭력 범죄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 지난해 이곳에 접수된 아동 성폭력 사건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65건(46.1%)의 가해자가 미성년자였다. 2007년에 비해 11% 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사회적 예방 네트워크 확산
아동 성폭행 사건이 늘면서 사회적 네트워크를 결성해 사고를 예방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대낮에도 학교 안이나 주변, 집 근처에서 성폭행이 발생할 정도로 극성을 부리면서 학부모 스스로 아이들을 성폭력으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는 것.
실제로 대구 북구 태전동의 한 아파트 주민들은 최근 아동 성범죄 예방을 위한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이른바 '등·하교 도우미'들이다. 평소 아동 성폭력을 걱정하던 일부 학부모들이 인적이 드문 지역을 중심으로 등·하교하는 초등학생들과 동행하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이에 뜻을 함께한 학부모들이 모임을 조직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윤계옥(45·여) 씨는 "아동 성폭력이 관계당국이나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막기 힘들 정도로 만연하고 있다"며 "이제는 모든 아동들이 내 자녀라는 생각으로 학부모와 지역 주민들이 나서야 한다"고 했다.
성폭력 예방을 위한 정보를 주고받으며 가해자 처벌을 위한 소송자료 등을 준비하는 인터넷 모임도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다음이나 네이버 카페 등을 통해 아동 성폭력 피해자들이 아픔을 나누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힘을 모으자는 취지가 공감대를 얻고 있는 것.
권낙형 성교육체험관 소우주 성교육강사는 "영국 등 일부 선진국에서는 주민들이 교육을 받은 후 동네를 돌며 낯선 사람을 살피고 어린이 안전을 보호하는 '네이버후드 워치'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며 "사회 구성원 모두가 아동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를 네트워크화해 아이들 지키기에 나선다면 아동 성범죄 예방에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기대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사진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상황에 따른 성폭력 예방법(소우주 성교육센터 제공)
▷누군가 차를 세우고 길을 물어요:운전자가 잡아당길 수 있을 만큼 다가서지 않도록 해야 한다. 누군지 왜 그러는지 확실하게 알기 전에는 절대 차에 타서는 안 된다.
▷내 몸을 만지려고 해요:몸을 만질 때 싫은 느낌이 들면 만지게 해서는 안 된다. 주위에 사람이 있다면 큰 소리로 도움을 받도록 하고 가능한 빨리 도망쳐야 한다.
▷어떤 사람이 자꾸 따라와요:가능하면 빨리 크게 소리치면서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낯선 사람과 단 둘이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도록 하며, 함께 타기를 강요하면 주위에 엄마, 아빠가 있다고 얘기한다.
▷나홀로 집에:도와줄 수 있는 이웃의 전화번호를 적어두거나 알아둔다. 현관, 창문 등을 잠그고 밤에는 등을 모두 켜 둔다. 문을 열어주기 전에 반드시 누구인지부터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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