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에서 집안의 '난민'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집에서도 있을 곳이 없는 외로운 아버지들의 이야기이다. 인터넷 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아버지들 가운데 두 명 중 한 명이 "혼자 있을 시간이 없다" "가족과 의사소통이 잘 안 된다"며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6월 20일은 아버지의 날이다. 이날에도 아버지에 대한 가족들의 관심은 낮다. 아버지의 지위에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
일본의 아버지는 집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다. 나이 든 딸은 어머니에게 자기와 아버지의 세탁물을 분리하라고 요구한다. 땀 냄새가 밴 아버지의 셔츠와 양말이 세탁기에서 자기 옷과 섞이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또 가족 내에서 권력이 커진 엄마가 아버지를 억압하고 학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몇 년 전에 "아버지는 건강하게 부재 중(不在中)이 좋다"는 말이 유행했다. 최근에는 남편이 퇴직 후에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엄마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황혼 이혼을 요구하는 부부도 늘고 있다.
지금 일본의 휴대전화 광고에 이색적인 가족이 모델이 되어 있다. 가족 가운데 아버지가 개(犬)로 등장을 한다. 처음 이 광고가 나갔을 때 일본 전체가 "왜 아버지가 개인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개 주제에 고풍스러운 일본 정신을 가지고 잘난 척하는 캐릭터가 인기를 끌면서 광고도 휴대전화도 대박을 낳았다. 아버지 하면 이 개를 떠올리는 사람도 적지 않게 되었다. 현대의 아버지 역할은 개도 할 수 있다는 풍자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은 것이다.
요즘 일본에서는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에게 경어를 사용하는 어린이는 거의 없다. 국립국어연구소가 실시한 조사에서도 가족 간의 경어 사용이 줄었다고 한다. 전통적인 규범이 약해지고 핵가족화와 같은 사회 변화 때문이다. 경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상하가 아닌 수평으로 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1990년대 이후 친구 같은 부모와 자식이 늘어났다. 부모가 아이에게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눈높이를 맞추려 한 결과이다.
한국은 일본과 비교하면, 가정에서 아버지를 존경하는 의식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것을 느꼈다. 특히 군대에서 돌아온 남자는 아버지에게 경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한국 친구 집에 갔을 때이다. 늦게 귀가하는 아버지를 온가족이 현관에서 맞이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아버지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태도에서도 엄격한 부자 관계를 엿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아버지의 권력이 너무 강해 자식의 자아가 억압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도 인정받지 못하는 갈등 속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이 일본보다 많은 것 같다.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아들은 엄마와의 관계를 심화시킨다. 이것이 한국에서 마마보이가 많아지는 이유가 아닐까.
일본과 마찬가지로 최근 한국 가정에서도 아버지의 위엄이 점점 사라져가는 것처럼 보인다. 기러기 아빠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 멋진 비유에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하지만 기러기 아빠의 실상을 알고는 웃을 수 없게 되었다. 가족을 위한 아버지의 필사적인 모습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정년 퇴직 때까지 일을 해야 주택 담보 대출을 갚을 수 있는 가정이 많다. 아버지들은 가족의 생활비와 교육, 그리고 빚을 갚기 위해 일을 할 수 없는 나이까지 평생 일을 계속한다. 아버지들은 매일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까.
내가 한국 생활에 지쳐 울면서 집에 전화를 했을 때, 아버지도 울고 있었다.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전화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더 슬퍼졌다.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아버지의 눈물이 아니었을까. 회사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울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들이 집에서 '난민'이 되어 가고 있는 지금, 가족들은 아버지를 구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선은 피곤에 찌들어 돌아오는 아버지를 오늘 따뜻하게 맞이하자. 가족들의 삶을 위해 바깥에서 전투를 하고 돌아온 전사에게 텔레비전 리모컨이라도 건네주자.
요코야마 유카·일본 도호쿠대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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