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 앞도 안 보입니다" "혹시 언제쯤 대박이 터지나요?" "앞으로 뭔 일 없겠죠?" "됩니까 안됩니까"
불안한 현대인들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 가득하다. 나에게 닥칠 행운이나 불행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민감하게 반응한다. 남녀노소 가릴 게 없다. 여중생조차 점집을 찾아 "어떤 남자가 언제 찾아올까요"라고 묻는 시대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돈줄이 급해 망하기 일보직전에도 점을 보고 그 판단에 따라 마지막 운명을 결정하기도 한다.
독일의 점쟁이 문어 '파울'에 전 세계가 열광한 현상도 흥미롭다. 독일의 여섯 경기에 대한 승패를 모두 정확히 맞춰 흠결 없는 예지력을 보여줬다. '파울'은 승률을 맞히는 장면이 유튜브 등을 통해 확산되면서 2010 남아공 월드컵 최고의 인기스타로 떠올랐다. '파울'의 예지력에 승부를 걸었던 사람들은 큰 돈을 거머쥐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앞으로 지구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국가나 사회가 어떻게 변해갈 지, 개인의 길흉이 언제 다가올 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상황이다. 인류의 정신건강 측면에서 보면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대구경북에 사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반월당, 관덕정 뒤편 점집 성행
14일 대구에서 달성공원 앞과 함께 점집이나 철학관이 가장 많다는 남산동 관덕정 뒤편 점집들을 찾아갔다. 삼정그린코아 주상복합상가 뒤로 두 세 집 건너 점집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몰려 있었다. 언뜻 둘러봐도 20곳 가까이 되는 듯했다. 이곳에 점집이 많은 이유를 물으니 과거 천주교 순교자들이 죽임을 당했고 보현사(불교)와 남산교회(기독교) 등 종교적 기운이 강해 기(氣)가 많이 흐르고 있고 터가 센 곳이라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유성철학관이라는 간판을 내건 집으로 들어갔다. 김지언(56) 원장이 반갑게 맞아줬다. 의외로 차분한 역술인이었다. 음양오행, 천간, 지지, 육침법 등 역술에 대한 기본 지식에 대해 30분 가량 설명한 뒤 인터뷰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김 원장은 "사주풀이는 통계수리학적인 입장에서 보면 대체로 딱 들어맞는 과학과 확률의 원리가 들어 있다"며 "마음의 위로를 받기 위해 찾아오는 고객들에게 그 속에서 좋은 방향으로 안내해주는 카운셀러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손님들 중에는 아무래도 사업적인 부분으로 찾아오는 이들이 많으며 자식이나 남편의 진로, 생활적인 면에서의 문제 등으로 찾아오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고 덧붙였다. 불경기 속에 점집을 찾아 고가의 점을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참고로 사회단체인 한중역술인협회의 공정 거래금액은 간단한 신수 2만원, 특별감정 5만원이고, 사주의 경우 소평은 5만원, 중평은 10만원, 평생을 상세하게 보고 풀어주는 경우는 500만원을 받는다. 성명은 30만원, 아호는 50만원, 택일의 경우에는 이사 3만원, 결혼 5만원이 표준가다.
◆여중생까지 운을 묻는 오리무중의 시대
간판이 화려해 보이는 점집 앞으로 가니 문이 닫혀 있었다. 바로 앞에서 차를 타려던 아저씨가 물었다. "뭣 때문에 오셨습니까?" "아, 네, 취재를 좀 하러 왔는데…" 기자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더니 "내가 바로 이 점집 주인인데 출장을 미루고 이야기를 좀 나눠 봅시다"라며 문을 열어줬다.
30년 동안 이 업에 종사한 일명 '반고개 도사' 김상우(49) 원장은 대뜸 요즘 예언이나 예측 열풍이 대단하다고 했다. 여중생이나 여고생들이 연애운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경우까지 흔해졌다는 것. 김 원장은 "남자 친구는 언제 생기며, 그 남자 집안에 돈은 많냐, 잘 생겼냐, 직업은 뭐냐 등을 상세하게 물어본다"고 했다.
그의 유창한 설명이 이어졌다.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신(神)이 난무하는 시대입니다. 단물주의(옛 것을 찾는 복고주의)로 되돌아가려는 성향도 강하구요. 약육강식이 냉엄한 현실은 현대인들을 더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연예인이나 탤런트 등 예전에는 천한 직업이 지금은 얼마나 각광을 받습니까? 그야말로 오리무중의 시대입니다."
반고개 도사를 보필하고 있는 구정미(36·여) 씨는 "미래를 내다보고 예언하고 정확하게 맞추는 일이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나는 일인지 모른다"며 "배우면 배울수록 빠져드는 오묘한 세계가 있다"고 말했다.
◆동성로에만 타로카드 점집 100개 넘어
대구 동성로에는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타로카드 점집이 100개가 넘는다. 장소에 따라 보증금 3천만원, 월세 170만원 정도의 목 좋은 곳부터 보증금 1천만원, 월세 50만원의 변두리까지 타로카드 점이 성행하고 있다. 특히 특별한 일거리가 없는 주부들이 3개월 가량 속성으로 타로카드를 배워 부업 삼아 하고 있기 때문에 더 늘어난 탓도 있다.
타로카드 점집은 3천~1만원 정도의 비교적 싼 가격으로 자신의 운명을 예측해볼 수 있기 때문에 주로 10~30대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다. 예언·예측에 흥미를 느끼고 열광하는 젊은이들의 임시 고민상담소가 되고 있는 셈. 이성문제나 친구관계, 가족문제, 경제적 어려움, 말 못할 고민 등 학교 상담교사나 부모에게도 하지 못할 고민들이 여기서는 술술 나온다.
재미있는 것은 경기도, 전라도 등 타 지역의 경우에는 타로카드 점집을 찾는 고객의 남녀 비율이 비슷한 반면 경상도 남자들의 경우에는 보수적이라 그런지 점집을 거의 찾지 않고, 고객의 90% 이상이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원조 타로카드 권도달 사장은 "젊은이들이 많이 불안해하는 것 같으며, 그 고민을 들어주며 조언을 해주는 것이 타로카드 마스터들이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맹신보다 스스로 삶 개척해야
본래 점이나 예언·예측은 나쁜 일이 일어나기 전에 예방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 불운을 막도록 스스로 삼가고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일 터. 도사나 점쟁이, 타로점을 맹신하며 넋 놓고 있는 것은 불행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전문가들은 점술은 정확한 원인 진단이나 과학적 근거보다는 심리적인 안정 효과를 줄 뿐이라고 조언한다. 경북대 심리학과 조현춘 교수는 긍정적인 생각을 특별히 강조했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은 똑똑한 데다 맑고 밝고 깨끗합니다. 수영의 박태환 선수가 세계를 제패하고, 피겨의 김연아 선수가 세계를 홀리듯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습니다."
이어 조 교수는 "인간의 본질적인 측면에서 보면 정신적으로 나약해진 측면도 있다"며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다보니 참고 인내하는 힘이 어렵게 성장한 기성세대에 비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계명대 심리학과 손영화 교수는 "삶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고민들을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분명히 존재한다"며 "자아가 약해서 예언에 쉽게 영향을 받고, 점쟁이들의 능력을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예언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바넘 효과'(Barnum effect)에 대해서도 경계했다. '바넘 효과'란 최면 척도가 높은 사람의 경우 점술이 제공하는 정보가 정확하다기 보다는 이미 점술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점술이 정확하다고 받아들이려는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져 있는 것을 말한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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