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철도 대구 도심 통과구간이 지상화로 확정되면서 기찻길 주변에 녹아 있는 유·무형의 추억이 함께 사라지고 있다며 주민들의 반발이 크다. 주민들은 공사가 밀어붙이기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항의하고 있다.
국토해양부와 한국철도시설공단(이하 시설공단), 대구시는 2006년 8월 고속철도 대구 도심 통과구간을 지상화하기로 결정, 서구 상리동에서 수성구 만촌동(11.5㎞)에 이르는 구간 철도변에 6천629억원을 투입해 녹지와 도로를 각각 10m씩 만들기로 했다. 이에 따라 철도변 주위 일정 구간 안에 있는 건물 등은 모두 헐린다.
16일 정오쯤 대구 중구 태평로 고속철도변 공사 구간. 굉음을 내는 굴삭기와 전기톱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전기톱을 든 인부들이 지날 때마다 빗물이 흠뻑 밴 지름 40㎝ 히말라야시더가 밑동을 드러낸 채 쓰러졌다. 이미 200m 이르는 철도 옆에는 50여 그루가 잘린 채 재어져 있었다. 이 나무들은 철길 방음, 분진 방지용으로 심어진 것으로 도심 철도 정비구간(11㎞) 90%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이다. 한 인부는 "도로를 내고 녹지를 만들기 위해선 철길 나무들을 모조리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근처 주민들은 고속철 지상화 공사를 이유로 추억이 서려 있는 나무들을 무작정 베어 낸다며 안타까워했다.
주재호(69) 씨는 "아침부터 전기톱 소리가 요란하게 나더니 멀쩡한 나무들이 차례로 잘려나갔다. 수십 년간이나 주민들과 함께해 온 나무들인데 옮겨 심는 것도 아니고 무차별적으로 벨 수 없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박하현(57) 씨는 "공들여서 키운 나무를 자기들 편하자고 마구잡이로 베서 되겠냐"며 "대구시는 '환경보호'를 시민에게 외치면서 정작 자신들은 환경을 파괴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서구 비산동 철도 구간 주민 김모(77) 씨는 "전쟁 때부터 기찻길 옆에는 피란촌이 형성됐고 오래된 이발소며 목욕탕이 많았던 곳"이라며 "대책 없이 오래된 주택과 건물들이 모두 헐리는 것을 보면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설공단은 측은 "나무를 옮겨 심는 비용이 벌목에 비해 5배나 비싸다"며 "히말라야시더는 관상목이 아닌 잡목류로 달리 이용할 곳도 마땅치 않아 벌목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노경석 인턴기자 nks@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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