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원태의 시와 함께(56)] 두고 온 집

#두고 온 집 / 박상봉

나는 두고 온 집을 생각한다. 오랫동안 그 집을 생각해왔다. 지금 그 집은 너무 먼 곳에 있다. 그 원래의 모습을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까마득해졌다. 그러나, 나는 애쓴다.

칫솔과 금연담배, 파스 하이드라지드병, 궁둥이에 종일 붙어앉은 의자와 단 하루도 건너 뛸 수 없었던 긴 고통, 짧은 세월… 애

쓴다… 잊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러나 지금 그 집은 너무 먼 곳에 있다. 밤낮으로 필요불가결하게 사용되어왔던 모든 것이 부재하고 그 집과 나는 더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또한 둔중(鈍重)한 것이 되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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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있을 테지만, 내게도 두고 온 집이 있다. 나도 가끔씩 그 집을 생각한다. 거길 떠나온 지 30년이 훌쩍 넘게 흘렀으니, 꽤 오랫동안 그 집을 생각해 온 셈이다. 마당에 수돗가와 장독대, 석류나무 화단과 닭장이 나란히 있던 골목 안 파란색 철 대문 집. 말 없는 소년으로 성장하던 어두운 골방의 사춘기와, 수세미 덩굴 사이로 쏟아지던 햇살을 기억한다. 그 집에서 아버지를 잃고 남은 가족은 새끼거미들처럼 흩어지며 거길 떠나왔다.

두고 온 집은 두고 온 사람과도 겹친다. 돌이켜보면, 생의 가장 치열했던 한 시절을 함께했던 인연을 우리는 불가피하게 두고 오거나, 떠나보내곤 했다. 그것들은 이제 "더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또한 둔중(鈍重)한 것이 되어" 영혼 깊은 곳에 덩어리처럼 존재한다. 고통과 상처의 자리는 오롯이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 자의 몫이다. 다만 그 애씀으로 인하여 우리는 '존재의 깊이'라는 또 하나의 심연(深淵)을 맞닥뜨리곤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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