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우강에 대한 미련을 접고 벤츠와 포르쉐의 고장 슈투트가르트로 향한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주도인 슈투트가르트는 수돗물을 도시에서 직접 생산하지 않는다. 100km 이상 떨어진 랑엔아우의 수돗물과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에 걸쳐 있는 보덴호(독일은 보덴제호라 부름)의 물로 식수를 해결한다. 네카어강(Necker R.)이 도시 외곽을 흐르고 지하수 또한 풍부한 도시라는데 다른 곳에서 물을 끌어오다니 그 이유가 궁금하다.
◆신비한 물=벤츠 전세버스 속. 도나우에 대한 미련은 떨쳤지만 "물 속에 2천여 종이 넘는 미지(未知)의 물질이 녹아 있다"는 볼프강 슐츠 박사의 말은 계속 귓가에 맴돈다. '대구에 동네우물을 만들기 위한 지혜를 얻으러 찾은 유럽. 물을 배우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욕심이 아닐까. 지구에 고체 액체 기체 상태로 존재하는 물질인 물. 섭씨 3.98도에 가장 무거운 물. 그래서 희귀금속인 비스무드와 함께 액체일 때가 고체일 때 보다 더 무거운 유이(唯二)한 물질. 물은 모든 생명체의 구성 물질이자 생명의 근원으로 '신비하다'는 말로 밖에는 표현하지 못할 기적의 물질이지 않은가. 물을 알겠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오만이 아닐까. 물을 모르면서 물이 생명체에게 기능하는 비밀을 파악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 아닐까...'
◆독일의 대구=슈투트가르트는 독일 제3의 공업도시로 인구는 60만명 정도다. 주변 지역에 거주하는 140만명을 감안하면 200만명의 사람이 어울려 산다. 슈투트가르트는 분지다. 높은 곳과 낮은 곳의 차이가 350m밖에 되지 않는 구릉에 도시가 형성됐다. 지반은 대부분 퇴적암으로 이뤄져 있다. 지하수에 미네랄이 풍부하다. 여러가지로 대구와 흡사하다. 독일의 대구라고나 할까.
언덕에서 내려다 본 슈투트가르트는 평화롭다. 넓은 포도밭과 숲, 공원이 많은 '녹색 도시'다. 저런 슈투트가르트도 시련을 겪었다. 2차 세계대전 때 완전 파괴되다시피 했다. 벤츠와 포르쉐 제조공장이 무기까지 생산해 연합군으로서는 반드시 파괴해야 할 도시였다. 1천200대에 이르는 연합군 전투기가 맹폭격을 했다. 그러나 독일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완전히 파괴하지는 못했다. 도심 스타우펜베르크 광장 일대의 오래된 건물과 조각품 등에 총'포탄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광장 잔디밭에서 일광욕하는 사람들, 거리 악사의 연주를 들으며 느긋하게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노랑 빨강으로 단장한 저상버스, 화려한 지하철... 생경한 거리 풍물에 눈 둘 곳 몰라하는 우리 일행을 슈투트가르트시 지하 건설 담당자인 미하엘 일크씨가 맞았다. 시내 곳곳에 있는 동네우물과 분수대 등지를 안내하며 물을 자랑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지하수 담당자가 따로 있지 않고 건설 담당자가 지상과 지하로 나눠 맡는다고 한다.
◆물의 도시=일크씨는 슈투트가르트가 물이 풍부한 도시라고 소개했다.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다음으로 큰 미네랄워터 수원지가 외곽인 바트 칸슈타트(Bad Canns tatt)에 있다며 안내했다. 칸슈타트는 가을에 열리는 민속제로 유명한 온천 휴양지다.
칸슈타트 지하철역 쿠어잘 인근에는 라우텐슐뢰거 우물이 있다. 악기를 연주하는 벌거벗은 어린이가 앉아 있는 라우텐슐뢰거는 1934년에 만들어져 80여년간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천연미네랄워터 우물로 물 맛이 제법 좋다. 길 가던 할머니 할아버지는 물론 어린이들도 주변에서 놀다 목이 마르면 우물로 달려와 입을 들이대고 갈증을 해소한다.
이런 공공 우물은 슈투트가르트에 250여 개가 흩어져 있다. 천연미네랄워터와 수돗물로 만든 공공 우물은 분수로 쓰이기도 한다. 독일어로 우물은 분수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격조 높은 우물=250개 우물과 분수는 디자인이 모두 다르다. 사랑하는 남녀, 아기를 안은 어머니, 황금돼지를 탄 소년, 어린이, 왕, 여인, 예수와 그의 제자, 벌거벗은 천사 등 조형물이 설치된 우물과 분수대는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다.
천연미네랄워터 우물은 14개다. 벤츠사 인근 공장 지대에 있는 바이엘(Veiel) 우물은 로마시대 때부터 저절로 솟아나는 우물이다. 2차 세계대전 때 파괴돼 1953년 36m 깊이로 새로 팟다.
물 맛은 청송 달기약수 맛보다 훨씬 강했다. 물 1l 속에 황산이온 889mg, 나트륨 663mg, 칼슘 563mg, 염소 945mg, 마그네슘 91mg, 중탄산 1190mg이 녹아 있다고 표지판에 소개돼 있다. 특히 황산이온이 많이 함유돼 있어 어린이가 마시면 설사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도 적혀 있다. 비단 어린이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이렇게 미네랄이 엄청나게 많은 물을 상용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한다. 이 때문인지 바이엘을 찾는 주민은 대부분 노인이었다. 15km 떨어진 동네에서 물을 마시러 왔다는 디터 자인씨는 "바이엘 물이 뼈와 소화기 심장 등에 좋다고 해서 왔다"고 했다.
◆주민 쉼터 미네랄워터 수영장= 쿠어잘 지하철역 바로 옆에 있는 칸슈타트 미네랄워터수영장은 주민들의 자랑거리다. '느끼고 살고 누리자'란 표어가 붙어 있는 수영장은 수질이 좋을 뿐 아니라 카페 레스토랑 등 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있어 남녀노소 불문하고 즐겨 찾는다.
레스토랑에는 멋있는 음수대가 있는데 꼭지가 2개다. 왼쪽 꼭지에서는 수돗물, 오른쪽 꼭지에서는 천연미네랄워터가 나온다. 천연미네랄워터에는 철분이 많은 탄산수여서 마시기 편치 않다. 인근의 라우텐슐뢰거의 상큼한 물 맛과 다르다.
우리 일행이 방문했을 땐 낮이어서 수영장과 레스토랑에는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식사를 하고 넓은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거나 체조를 하는 모습에서 여유로움이 묻어 났다.
◆물을 아낀다=슈투트가르트 시민들은 물을 무척 아낀다고 한다. 지하수 지표수 할 것 없이 풍부해 마구 사용해도 무방하지만 질 좋은 물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하다보니 물을 아끼는 습관이 자연스레 배었다는 설명이다. 일크씨는 "슈투트가르트 사람들은 물 때문에 건강하다"며 "물 없이 슈투트가르트, 특히 칸슈타트를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네카어강이 흐르고 지하수가 풍부하면서도 100km나 떨어진 농촌과 150km 가까운 거리에 있는 국경 호수에서 물을 끌어다 식수를 해결하는 것도 슈투트가르트의 물을 아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아니라면 공업도시여서 지표수가 오염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해 네카어강 물은 공업용수로 쓰고, 깨끗한 호숫물과 지하수를 식수로 선택했을 수도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성익환 박사는 "독일에서 도심을 흐르는 강물을 식수로 사용하는 곳은 많지 않다"고 했다.
지하수가 풍부하면서도 구미 공단 등지에서 나온 폐수로 오염된 낙동강 물을 수돗물로 사용하는 대구는 이런 슈투트가르트를 어떻게 봐야할까. 비교적 깨끗한 운문댐물과 천연암반수를 개발해 식수로 사용하고, 낙동강물은 공업용수와 생활용수로 사용하면 대구가 슈투트가르트와 비슷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동네우물되살리기팀은 슈투트가르트를 끝으로 독일 방문을 끝내고 비텔 등 프랑스의 물 도시를 찾아 나선다.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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