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름다운 삶] 이상경 공간울림 대표

"제게 음악은 영성을 위한 기도이자 울림"

이상경(51) 씨의 말씨는 듣는 이를 편안하게 하는 빠르기에 톤이 맑았다. '단아'하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이런 첫인상은 그가 평생 간직해온 신앙심 때문인지 지독한(?) 음악애호가여서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가 음악과 인연을 맺은 것은 6세 때 어머니 손에 끌려 여동생과 함께 찾은 피아노 교습소에서였다. 이후 대학까지 피아노를 전공했다. 굳이 이유를 묻자면 '미련해서' 그랬단다.

대구시 수성구 상동 소방도로가에 자리한 아담한 주택은 이상경의 살림집이자 전문예술단체'공간울림'의 대표터전이다. 이곳에서 8년째 공연기획과 연주를 펼치고 있다. 주택을 사들여 외관을 유럽풍 카페처럼 리모델링을 했다. 음악관련 자료와 포스터가 비치된 1층은 사무실로, 지하는 연주홀(약 100여 명 수용)로, 2층은 살림집이다.

이곳에서 그는 지난해만 187회의 클래식 음악과 국악 공연, 세미나를 가졌다. 공간울림의 연중 프로그램을 대충 훑어만 봐도 '교회음악 특강' '풍류방 연주회' '재즈가 있는 화요일' '21세기 신예초청 연주회' 등 다양한 주제의 연주회와 매주 화·목요일마다 열리는 정기연주회가 있다.

현재의 공간울림이 있기까지 두 번의 전신 공간이 있었다. 이상경이 대신대, 계명대, 창신대 등에서 오르가니스트와 강사로 활동하던 1994년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살던 아파트(북구 관음동)에서 이웃을 초청해 연 '하우스 콘서트'가 첫 출발점. 관객은 동료음악가, 동네 아줌마, 가족이 고작이었다.

처음엔 프로그램에 대한 아이디어도 없었다. 그러나 모임을 거듭할수록 노래, 피아노, 기타 등 프로그램이 늘어갔고 주위 음악가들의 도움도 받았다. 콘서트가 열리는 저녁이면 장난꾸러기였던 어린 두 아들은 콘서트에 방해가 될까봐 이웃집으로 옮겨가야 했다. 그러기를 몇 년. 다시 중구 대봉동 주택으로 옮겨 본격적인 하우스 콘서트를 했고 8년 전 현재의 공간울림에서 이상경은 본격적인 클래식 공연기획자로 5명의 직원과 함께 두 팔을 걷어붙였다.

그가 이렇듯 관객과 함께하는 음악에 몰입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주어진 숙제이자 과제 때문. 오르가니스트인 그는 항상 관객과 등을 지고 연주할 수밖에 없다. 음악은 사람들과 소통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도무지 인정할 수 없는 무대관계 설정이었다. 그에게 소통하는 관객이 없는 음악은 더 이상 음악이 아니었다.

그러던 참에 우연히 읽은 한 시집의 후기에 '쓰레기처럼 쏟아져 나오는 인쇄물의 봇물, 내 글도 쓰레기가 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시인의 고백에서 이상경은 죽비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관객이 음악을 통해 한순간이라도 마음의 울림을 갖고 돌아가기를 바라는 이상경의 음악적 바람이 불었던 것이다. 그가 사는 집의 또 다른 이름 '공간울림'은 이런 바람의 소산이었다.

영남대 음대서 피아노를 전공한 이상경은 "대학시절 대구시내 녹향과 하이마트 등서 클래식음악을 들을 때면 무작정 좋았다"고 회상했다. 정경화 정명훈 같은 유명 음악가가 될 꿈은 꾸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냥 음악을 듣고 연주하는 일상이 행복했다"고 했다. 그 꿈은 현재 그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

그저 음악이 좋아서 결혼한 몸으로 어린 아들 둘을 키우며 이화여대 대학원(음악교육 전공)과 연세대 대학원(오르간 전공)을 다녔고 네덜란드에서 오르간을 서른 중반까지 공부했다. 사실 이상경은 음대를 지원하면서 서울지역 대학에 한 번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그는 10여 년 동안 젊은이와 경쟁하고 또 삶을 돌이켜 보며 "아! 내가 이렇게 사는 건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는 생각이 들면서 현실과 화해를 하게 됐다.

공연기획자가 아닌 오르간 연주자로서 이상경은 1982년 당시 한강 이남에서 최초로 파이프 오르간을 들여온 남산교회에서 첫 오르간 은사로 조명자(연세대 명예교수) 씨를 만나 30년째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 그가 대학에서 오르간을 강의할 때만 해도 지역에 파이프 오르간은 한 대도 없어 전자 오르간으로 연주를 해야만 했다.

놀라운 건 이상경이 이제껏 한 모든 연주회 경비는 사비로 해왔다는 것. 현재 대학 강의는 그만뒀지만 만나는 제자들이 농처럼 던지는 말이 "선생님, 아직 안 망하셨어요"라는 인사말이다. 그럼에도 이상경이 지난해 처음 기획한 서머 페스티벌 '내가 사랑한 모차르트'는 큰 히트를 쳤다. 올해는 '유쾌한 바흐'를 이달 7일부터 10일까지 공연했다.

'유쾌한 바흐'를 진행하면서 그는 "바흐와 관련한 10개의 프로그램을 통해 참가자들이 티켓팅과 시간을 투자해 가면서까지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고 느끼며 충분히 즐거워할 수 있었다는 점이 보람"이라고 했다.

덧붙여 그는 특히 "서머 페스티벌이 대구 문화의 품격을 올리기 위한 작은 시도였지만 대중 전체의 호응을 이끌어내기엔 아직 부족함이 있고 아울러 사회적 설득을 얻어내기가 어렵다는 느낌도 받았지만 그 가능성은 보였기에 앞으로도 계속할 작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공간울림을 하면서 연주회 티켓비를 5천~1만원으로 유료화했다. 전체 비용에선 턱없이 모자라는 액수지만 이를 이상경은 오랜 기간 알게 된 음악가, 공연봉사자 등 맨 파워를 활용해 이끌어가고 있다.

이상경은 "젊을 때의 내 꿈이 현재의 삶과 너무나 닮아 있다.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는 그의 바흐 연주를 일컬어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였다'고 했다. 공간울림에서 모두가 공유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그게 나의 행복과 즐거움"이라고 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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